토막 토막 


시간이 없다, 고 하지만 그건 덩어리로 존재하는 시간의 이야기고 그 시간을 분과 초로 갈기갈기 갈라놓으면 그 속에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 만큼 푹신한 모질을 자랑하는 붓처럼 될 것이다. 한 가닥 한 가닥 세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많은 분과 초를 엮어 하루의 붓을 만들고 붓들을 또 엮고 엮은 꾸러미를 또 서로 엮고. 멍하니 털꾸러미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아주 가끔 나의 외양을 의식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게 떠오르는 표정은 아주 건조하고, 나른하고, 눈은 무심하게 처져 있어서 그야말로 담배만 딱 물면 될 것 같은 모습이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불일치다. 너는 어떠하니까 어떠할 거라고 단정짓는 대상이 되고, 그 기대와 실제가 불일치 하는 상황. 사회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대체로 그 기대에 맞추고 상대방을 놀래키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미쳐버릴 지경이 되어 폭발하고 만다.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 어딘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 또라이가 그래서 좋다. 그 사람들은 나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


책을 왜 읽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누군가는 내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했다는 것을 확인 받고, 그 생각을 어떤 식으로 말로 옮겨 놓았는지를 음미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여러 번 같은 생각을 마주하더라도 다 다른 식으로 표현되어 있을 것이므로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은 그 생각의 권위를 드높여줄 뿐.  


나는 발전이 없는 사람이다. 참으로 여전하다. 

스승의 날이 이미 지났지만 아직 대학원 교수님들에게는 단 한 분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여전히 속마음을 말할 때면 눈물이 난다. 

무심한 척하고 있지만 어떤 것에도 마음을 쏟지 않는 것이 없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처럼 마음껏 남용했고 때로는 변용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쯤이면 미련 없이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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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 

캐런, 루이즈, 진 지음 (2013)

안진희 옮김 (2014)

심플라이프 


공부를 끝내고 '사회에 나와' 돈을 벌면서 '한 사람 몫'을 하기 전까지는 생활을 하면서도 생활의 무게를 느낄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가끔 돈이 떨어져도 집에 알리지 않고 며칠 정도 허리띠를 졸라맬 때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 손을 안 벌렸다 뿐이지 애초에 수중에 있는 돈의 대부분은 집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가 돈을 벌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더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부가적인 수입이었고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월세와 기초 생활비는 꾸준히 '집'에서 나왔다. 혼자 나와 살고 있긴 했지만 내게 '집'은 부산에 있는 부모님댁이었고 서울의 거처는 '방'에 불과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 1년 2개월, 내가 월세와 생활비를 온전히 감당하기 시작한 순간 내 방은 매우 신속하게 내 집이 되었다. 물론 그 상황을 심정적으로 소화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리고 있다.

사회부적응자 마냥 도망치듯 거제도에 내려온 이후, 혼자 생각할 시간이 예전보다 조금 많아졌다. 

캐런은 출장을 자주 다니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계기로 나는 내가 얼마나 가족들과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위한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충분히 행복하지만, 그 세계에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주는 따뜻함과 즉흥성이 결여돼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44)

사람에 질려서 거제에 내려와 혼자 있는 안락함을 대체로 되찾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바와 일치한다. 

섀도론으로 이사를 들어오는 과정에서 발견한 내용을 서술한 부분에도 줄을 그었다. 

익숙함과 주관적인 시선 때문에 불필요한 집착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알고 나니 정말 놀라웠다. 넘쳐나는 물건들을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물건들 대부분을 공유하고 나니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나는 나의 물건이 아니다. (109) 

그리고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된 의외의 발견도. 

서로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게 서로를 가장 짜증나게 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결과적으로, 우리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나 상대가 도움을 요청할 때만 돕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다소 어려운 문제는 누군가 어떤 일을 하는데 돕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게으름을 피우거나 자기 몫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집단으로 생활할 때 생기는 흔한 문제 중 하나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이렇게 말하면 된다. “도와주지 말아줘, 부탁이야. 고마워.” (114)

이들이 서로가 어떤 관계이며, 어떤 관계가 아닌지 선을 긋는 내용에서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 

> 항상 의견을 일치시킬 수는 없다. 

> 우리 각자는 어떤 일이 닥치든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사람들이다. (135)

그리고 이런 지적도 있었다. 

모든 건강한 인간관계는 건강한 경계를 필요로 한다. (137)

물건이 파손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을 서술한 부분에서도, 이런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불편한 마음을 꾹 참고 힘을 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최선을 다해 파손된 물건을 고친다. (143) 

불편한 마음을 꾹 참고, 그리고 힘을 내서. 

Note: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 The Bostonians 

서로의 차이가 부각될 때마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려 노력했다. (159)

협동주택에서 사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캐런은 1:1로 “유용한” 점심식사를 했다. 자신을 잘 알면서도 개인적 이익은 관련되지 않은 적절한 조언자와 2시간 가량 점심식사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공감하기보다는 personalized advice를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단순히 하소연만 하고 심정적 지지만을 얻어가는 자리가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청취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좋은 팁이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고잉 솔로 

싱글턴 혼자 사는 싱글 

Co-housing communities

Homesharing 

Communal housing 

Cooperative householding

루이즈 

가족에게 기대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처음부터 이 파트너십이 영구적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떠한 일이나 어떠한 사람도 당연시하지 않는다. (253)


정리된 글로 쓰지는 못 했지만, 읽은 책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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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기록

바닷가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서울의 나태와 환락에서 멀어지면 책을 읽을 시간, 글을 끼적일 시간이 좀 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난 한 주 간 책을 펼치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다. 환락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나태였던 건가. 일단 첫 주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주는 좀 부지런을 떨어 봐야겠다. 


둘째 주, 수요일

바닷가에 내려오고 싶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인간이 귀찮아서였다. 서울 생활 9년차, 대학 사람들, 대학원 사람들, 땅고 사람들, 이런저런 인연이 닿아 내 인간관계망에 걸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지긋지긋해졌다. 하루의 9-10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쪼개는 게 너무 싫었다. 사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만나기 싫은 사람을 최소한으로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았고, 아무리 줄였다고 해도 여전히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사람을 과하게 만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내 시간을 겨우 빼보아도 대부분은 맥주를 마시러 가서 신은 나지만 정신은 더 혼미해진 상태가 됐다. 술을 많이 마셨을 때 거칠어진 숨소리가 싫었고 숨에 섞여 나오는 취기도 싫었다. 웃기는 많이 웃는데 내가 사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하루를 쳐내는 심정으로 살았다.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셋째 주

그럴수록 런던에서의 생활이 자주 떠올랐다. 그곳에 있을 때는 모두가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었다. 무책임한 회피일지라도 그때가 그리웠다. 되돌아갈 수 없는 그곳에서의 시간 자체도 그리웠지만 그보다 그런 자유가 더 간절하게 그리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망가진 관계 같은 건 없었다. 떠나고 싶었다. 잠시만 이 일상의 자리를 비울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고 모두에게서 잠시만 거리를 둘 수만 있다면. 런던에서, 나를 옭아매는 사회 생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나는 내 생활에 대한 통제를 거머쥐고서도 충분히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억지로 자유를 찾거나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런 감각이 필요했다. 나는 심심해지고 싶었다. 너무 심심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활은 정반대였다. 너무 얽혀있는 관계들이 많고 움직여야만 하는 때가 많아서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이 나면 반드시 가만히 있고 싶어졌다. 그렇게 일상이 엉망인데, 일마저도 재미가 없었다. 일조차 나에게서 에너지를 빼앗아주지 않았다.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술을 정말 즐기긴 했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남자를 좋아했고, 중독에 몸을 내맡기고도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일상에 크게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 없었고, 중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내 전문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에 대한 중독이었지만 나중에는 공간에 대한, 시간에 대한, 생각하지 않아도 됨에 대한, 술에 대한 중독으로 번졌다. 술을 마실 때면 마음이 편했다. 술을 마시고 있으면 좀 더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편하게 눈웃음을 칠 수 있었다. 나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혼자 앉아 술을 마시면서 어떤 질문을 해도 솔직하게 답해주겠다는 태도로 앉아 있는 젊은 여자에게 굳이 적대적일 이유가 있는 남자는 없었다. 나는 가능한 한 피상적이고 돌발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질 준비만 하면 됐다. 그러면 분위기는 끝 간 데 없이 떠올랐고 나는 다음날이면 내가 어떤 질문을 했고 어떤 답을 들었는지 거의 모든 것을 잊었다. 아주 약간만 신경을 써서 핵심적인 몇 가지 내용만 기억하면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또 손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모든 것이 간편하고, 일시적이고, 뒤죽박죽이었다.




...보다시피 첫 주의 기대만큼 쓰지는 않고 있지만 길이는 길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쭉 회상식 일기를 쓸 예정이다. 천천히 허물어지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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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8

이번 주에 방이 업그레이드 돼서 욕조가 있었는데 목욕탕 말고 그런 개인 욕조에 몸을 담근 건 정말 간만이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머리를 기대는 순간 하 이게 행복이구나 싶은 것이, 그 순간 섹스와 욕조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진심 이걸 골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참방거리다가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었는데 베이스가 웅웅거리는 느낌이 욕실에서 들으니 좀 거슬려서 선곡을 바꿨다. 그리고 기억했다. 이 스피커를 처음 뜯은 것도 호텔이었고 그 때도 욕조에서 음악을 들었다는 것을. 좋은 시절이었지. 


Apr 5

바닷가 생활 3주차에 접어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적응을 빨리 하는지 느끼고 있는 요즘. 안전교육 때문에 통역을 못 나가서 불안해하던 (했더니 못 해서 쫓겨날까봐) 첫 주와 부산에서의 주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서 정신 없었던 둘째 주와 서울에서의 주말을 지나고 또 벌써 화요일이라니. 외롭고 심심하기를 원해서 여기 내려왔지만 일요일과 어제는 그게 너무 싫더니, 오늘은 또 괜찮다. 호텔 방에 물건을 놓는 순서가 생겼고, 아침에도 루틴이 생겼다. 특기할 만한 점은 아침에... 국민체조를 한다는 것...ㅋㅋㅋ 초딩 때 듣던 그 익숙한 아저씨 구령에 맞춰서 5분 간 국민체조로 아침을 연다...ㅋㅋㅋ 현장 나가는 게 고된 일이라 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가볍게라도 움직이니 좋다. 이번 주 목표는 수영장 나가는 걸로. 


Apr 4

아 강렬한 몸살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 정글 한복판에서... ㄷㄷ 안돼..,


Mar 30

므ㅑ!!!! 여기 와서 처음 칭찬 받았다아~ 전 직장에서도 첫 칭찬을 피드에 기록했었는데 이번에도 첫 칭찬은 각별히 소중하구나. 물론 유저가 여러 명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의견이 전체를 대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첫 칭찬이 중요한 이유는 외부인으로 들어온 통역사로서 내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존재가 아니라 내 서비스가 add value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정확한 거지만. (아 이런 기업형 언어 ㅋㅋ) / 지금 계약 기간이 매우 짧은데 아 이 직장 이제 질렸다! 서울 돌아가고 싶다! 고 외치고 싶을 때까지 있고 싶다! ...라고 적어놓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기 때문에(...) 일단 적어놓는 걸로... 그리고 모은 돈(과연?)을 기반으로 프리랜서 하고 싶다!! 

일단 업무 시간 빌 때 피드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플러스다. 피드가 중요해서라기보다는, 전 직장의 인터넷 환경이 너무나 말도 안 됐기 때문에...-_-; 아니 2016년에 사전도 못 찾아보면서 번역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보안을 강화한다며 인터넷을 다 막아놔서 시간이 좀 떠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덕분에 책은 잘 읽었지만 업무할 때 화딱지가 나서 원. 번역하다가 단어나 모르는 개념 찾아보려면 폰으로 찾아봐야 돼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자꾸 핸드폰 만지게 되니까 폰으로 딴짓도 많이 하고 그러면서 능률 떨어지는 게 나 스스로 불쾌하고 =ㅅ=


Mar 29

몇 개월 전 이직 욕구가 고공행진 중일 때 여러 사람에게 왜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안 드는지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말하고 다니곤 했다. 번역보다 통역 비중이 높았으면 좋겠고, 한영 비중이 높았으면 좋겠고, 외국인 팀원이 많은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고, 콜보다는 대면 통역이 많았으면 좋겠고, 업무 강도는 좀 세도 되니까 많이 구르면서 소위 '내공'을 쌓고 싶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그 때 하고 있던 일과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일이었지. 첫 직장의 계약 만료일을 딱 보름 앞두고 내게 정확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제의가 들어왔고, 확정되었고, 나는 일주일 만에 짐을 쌌다. 지난 주는 트레이닝이다 뭐다 해서 금방 지나가고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통역을 했는데 일단 지금까지의 소감으로는 어쩜 이렇게 내가 원하던 일과 딱 맞는 델 오게 됐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업무도 업무고 여러 조건도 만족스럽다. 물론 기간 한정이라는 전제가 있는 덕이지만. 아무튼 일 간다. 바쁘니까 좋네.


Mar 25

일 때문에 바닷가에 와서 호텔 생활 중인데 호텔 일주일 소감은... 아 좋다. 방도 남이 치워줘 밥도 남이 가져다줘, 이렇게 편할 수가. 그런 와중에 침대 시트는 세탁하지 말라고 부탁해서 수요일 쯤 되니까 말랑말랑 몸에 감기고 말이지. 남은 기간 호사를 잘 누려야지! 


Mar 21

멋모르고 안전교육 들어와서 멍때리고 있는데 쉬는 시간에 누군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서 감독관 교육 받는 중이냐고 묻는다.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기초 안전교육 듣는 중일 뿐이라고 했더니 내 옷을 가리키며 감독관 복장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강사들만 이 옷을 입고 있다. 가만히 섞여 앉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옷만으로 이미 뭔가 말하고 있었구나.


Mar 18

내일이 첫 직장 마지막 근무일인데 너무 피곤해서 슬프지도 않을 것 같다... 아 피곤해으어어어


Mar 14 

동생이랑 같이 사는 거 가지고 지랄지랄할 때만 해도 내가 서울을 떠나서 지내게 될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다. 물론 그때 지랄지랄한 다양한 이유 중에 걔랑 같이 살면 이직 결정할 때 운신의 폭이 줄어든단 게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강남 정도 생각했지 다른 지역이 될 줄은. 동생이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나보다 고생을 덜 할 거 같아서 그렇게 얄미웠는데 결국 한 번 톡톡히 겪어보라는 듯이 버리고 떠나는 언니년...ㅋㅋㅋ 결국 내비두고 떠날 거면 지랄이나 하지 말 걸. 미안하다 동생아. 참 사람 일 모르는 거구나~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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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데이&인스타  |  2016. 4. 10. 10:55




변화가 금방 다가올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때는 변화를 간절히 원했다. 

변화의 기회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때는 낙담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도 갑작스럽게 변화의 물결이 나를 휩쓸 때 나는 한 마디 얄팍한 조언에 매달려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결국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 그 조언에 간단히 배반당했다.

변화 앞에 아무리 두려움이 인다 해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고

나는 또 다시 시간의 무심함 앞에 납작 엎드렸다. 지금도 그렇게 엎드린 채 그 무심함이 나를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계약 연장이 어려울 것 같다는 선의의 전언을 들은 1월의 어느날 이후로 나의 업무 일상은 쭉 내가 얼마나 괜찮은 자원인지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내가 들어오기도 훨씬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아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은 많은 다른 직원들을 생각했다. 퇴사를 이야기했던 청소부 아주머니도 생각했다. 보안요원을 앞에 두고 보안 관련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그 무신경함에 놀랐던 순간을 기억했고 나도 그런 비용의 일부임을 되새겼다. 육아휴직 후 복귀하지 말라는 연락을 들었다는 어떤 얼굴도 모르는 동료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나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불안했고 나태했다. 증명의 기회는 그렇게 자주 주어지지 않았고 그런 만큼 한 번의 기회는 무겁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 기회를 날려버리거나 망쳐버리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자존감에는 결코 좋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것이 시기의 탓인지 내 능력 부족의 탓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불안을 나보다 먼저 겪었던 그녀를 만났다. You don't have to prove yourself, 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해준 목소리가 고마웠다. 세상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네가 욕심이 많지 않아서 좋다고 그게 다 보인다고 어떻게 속에 나쁜 생각이 가득한데 말로만 좋은 척 포장하고 숨길 수 있겠느냐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아, 포장하고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아닌 게 맞는 것 같다고 설득이 됐달까.) 그리고 진심으로 오늘밤에는 너를 위해 기도하겠노라고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그녀와 나는 11월부터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의 수를 늘리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거리를 지킨다고 지켰는데도 어느새 시간이 쌓여 있었다. 시간은 무심하고도 꾸준하고, 무신경하고도 끈끈하다. 


굉장한 이별도 아닌데, 그래도 이별 앞에서 사람은 좀 더 솔직해질 용기를 얻나보다.

용기를 얻은 게 다른 사람들인지 나인지 뚜렷하게 알 수가 없다. 내가 좀 더 용기를 내서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따뜻한 눈길을 돌려받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용기를 내서 굳이 표현하지 않고 지나갔던 따뜻한 말들을 전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런 눈빛이 된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어쨌든 짧은 이별을 앞두고 달달하게 감싼 말들이 난무하고 있고, 나는 그게 싫지 않다. 

그리고 믿어보려고 한다. 내가 일부러 달달하게 꾸민 말과 진심으로 전하는 말은 분명히 다르게 들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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