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산문집 (2005-2008)
전은경 옮김
푸른숲 2009

나는시간이아주많은어른이되고싶었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피터 빅셀 (푸른숲, 2009년)
상세보기

  비틀즈 CD를 사서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새로이)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한 곡이 있어 링크한다.

The Beatles - Nowhere Man


  어쩌라고! 읽다보면 어쩌라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현대사회(는 좀 거창한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간에 '지금 현재')를 비꼬지만 그러면서도 신기하게도 그의 태도 자체는 별로 과하지 않다.  아주 특별한 이야기 아주 대단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를 다양한 방식으로 적인데 그 성실한 관찰(본인은 아니랬지만)과 재치있는 언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다림을 기다리며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다리기를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릴까?
  아마 기다림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한 밤만 더 자면 오는 생일 기다리기, 크리스마스 기다리기, 그리고 드디어 12월 24일 당일이 되면, 이제 선물을 뜯어도 된다는 허락을 기다리는 그 긴 시간. 유치원 입학 기다리기, 학교 입학 기다리기, 잉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 기다리기, 열두 살이 되기를, 열여섯 살, 열여덟 살, 스무 살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그리고 마침내 아흔다섯 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기다림. (15쪽)

  우리는 왜 기다리는 걸까? 왜 기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복도에 서서 기다릴까? 아마 우리가 기다림만큼 고통스럽게 배운 건 없기 때문일 테지. 유치원과 학교 입학 기다리기, 졸업 기다리기, 은퇴 기다리기, 그리고 어쩌면 기다림조차 기다리기. 병원에 약간 일찍 도착해서 그 앞을 오가며 기다리기, 이 기다림이 끝나면 대기실에서 또 기다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림의 기다림을 기다리기. (18쪽)

  기다림으로 채워도 좋을 시간을 너무도 빽빽하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많이 부여받았기 때문에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나는 국민학생 언니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럼 도시락을 싸가서 친구들과 노나먹을 수 있을 것이라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급식세대가 되었으므로 그런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실에 많이 서운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기다림만이 회자될 뿐이다. 나는 여섯살 때부터 월간 만화잡지를 읽었다. 소녀만화 잡지 중에 '밍크'는 간간이 보는 정도였고 '나나'를 애독했는데 지금은 폐간되고 없다. 나는 매 월 다음 달이 오기를 기다려 '나나'를 샀다. 여덟살 때 반여동으로 이사 온 다음에는 도서대여점이라는 신세계를 만나 동네 책방 주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으며 단행본들을 섭렵했는데 그때도 매일같이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책방에 언제쯤 새책이 들어오는지를 꿰고 있을 뿐더러 아주머니께서 날 위해 책을 빼 놔 줄 수도 있는 뭐 그런 단골 손님이었다. 일곱살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보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의 안경을 동경하여 안경을 쓸 날을 기다렸다.
  지난 학기 사진 수업을 하면서 Anna를 모델로 포토스토리 촬영을 했다. 그때 알게 된 재밌는 (국적 불명의) 크리스마스 풍습이 생각났다. 일단 영국에서 축하하는 건 확실하니 영국에서는, 으로 문장을 시작해도 괜찮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Advent Calender라고 부르는 초콜릿 든 장난감(?)을 판다고 한다. Anna가 Waitrose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쌓아놓는데 금방 동이 나 버린다고. 간단히 말하면 12월 달력이 찍혀 있는 초콜릿 통인데 달력에 찍힌 날이 되면 그 칸을 열어서 안에 있는 초콜릿을 먹는 것이다. Anna도 집에서 보내준 걸 들고서 12월이 다가오니 이제 이걸 시작할 수 있다며 마구 들떠 있었다. 영국에서 보낸 건데 그걸 먹으려고 며칠씩이나 기다리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일찍부터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나보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니 며칠 앞으로 다가온 발렌타인 데이 생각이 난다. 스케줄러에 발렌타인데이 하트뿅뿅 이런 거 표시해놓을 생각이 전혀 안 드는 올해의 발렌타인 데이. 그날이 발렌타인 데이인지 어떤지도 모르고 미리 풀코스 데이트 약속을 잡아놓았으니 초콜릿을 사긴 할테지만 참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데이트는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내가 진짜로 선물하고 싶은 건 Pedro Javier Gonzalez의 비틀즈 노래 기타연주 음반인데 눈에 보이는 음반점마다 확인해봐도 모조리 장기품절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2010년 화이트데이에 B가 준 '손수 만든 초콜릿' 선물 상자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적당한 크기 무난한 색상의 정사각형 통이어서 약상자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그때 받은 초콜릿은 고맙다며 기쁘다며 다 먹긴 했지만 참으로 뜨악스러웠다. 정말 미안하다. 그걸 만들고 있었을 정성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지만 나는 애인에게 손수 만든 초콜릿을 선물하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친구한테 받는 것은 또 괜찮다. 모르겠다 인간이 왜 이리 꼬였는지. 어쨌거나, 내게도 기다려지는 몇번의 발렌타인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발렌타인 데이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때 정사각형 선물 상자를 썼었더랬는데.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하늘색 정사각형 상자에 복슬복슬한 포장재를 채우고 개별포장된 동그란 초콜릿들을 넣었던 것 같다. 발렌타인 데이까지 포장을 고민하며 기다리고, 또 당일에는 그 초콜릿을 건네줄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 하루종일 기다린 끝에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초콜릿을 그 아이가 입고 있던 외투 주머니에 넣어 주었는데 멋들어진 말 한마디 못 했던 것 같다. 그 후 몇번의 (대충 세어본 결과 적어도 대여섯번) 발렌타인 데이들을 기다려본 것 같은데 제일 처음이랍시고 이것만 이렇게 강렬하다니 다른 날들이 섭하겠다.

우리가 아직 기다릴 수 있던 시절에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면 기차에서 글을 쓰기가 불가능해진다. 이때의 기차는 나에게도 조바심치는 장소가 되고, 기다림 자체가 힘겨워진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예를 들면 베를린—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언제 도착하는지 —17시 24분, 베를린 도착—상당히 정확하게 예고되는데도, 아니 사실은 그래서 더 끔찍하다. 예고는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예고는 기다림을 방해하니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42쪽)

  글쎄,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지 않고 조바심내는 그 순간이 사실은 더 '기다림을 기다리는' 상태에 근접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타고 한 바퀴 돈다고 한들, 그 지하철의 풍경을 볼 수는 없을테니까. 공간이 아니라 나의 일로 시간이 귀속되면 그건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니기도 하다. 알고서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태도가 문제일 뿐. 그러고보면 정시 출발 정시 도착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이지젯은 참으로 순수한 기다림을 내게 안겨주었다.



오늘은 일요일
  일요일의 산책. 그렇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들 때문에 일요일에 산책을 하는 게 아닌지 늘 의심스러웠다. 교양 있는 가족은 산책을 하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요일의 산책.
  그렇다, 나는 산책을 가지 않을 것이다. 일요일 의복을 사지 않고, 예전에 입던 일요일 정장을 평일에 입어 닳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의례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 의례를 치르지 않게 되자 나는 해방됐다고 느꼈다. 이제 자유를 누리긴 하는데, 일요일은 더 이상 일요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왠지 모르게 일주일 내내 일요일을 기다린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는 일요일을 기대하며 장을 본다.
  그러고는 스튜 앞에 앉아, 평일에 먹는 구운 소시지를 갈망한다. 구운 소시지가 외로움을 덜어주리라고 상상하며. (22쪽)

  어제의 해도 오늘의 해도 쭉 그냥 해일 뿐인데 무슨 호들갑을 떨며 1월 1일이라는 이유로 일출을 보러나가냐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야 그 생각이 진심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일출을 보러 나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해가 그 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1월 1일의 해가 특별한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를 보러 몰려나가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가? 나는 이제 그런 의례가 아주 반갑다. 단지 그 존재 만으로. 몇번이고 읽으면서 애써 분석해낼 필요가 없는, 강렬한 일상의 상징이다.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의례'
진짜 열정에는 반복이 필수적인데 지금은 최신 시사성만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최신 시사성은 기존의 시사성을 영원히 대체한다. (50쪽)
아니다, 나는 영화나 재즈를 향한 열정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의례를 잃었다. 열정이 깊이 간직되어 있는 의례를……. (52쪽)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
  고향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언제나 냄새를, 특히 양배추와 파 또는 탄 음식과 같은 부엌 냄새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것들도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 뢰스티(스위스식 감자전)가 갈색이 되면 안 되고, 가장자리가 검게 타면 더더욱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타지 않고 노릇노릇하게만 구운 뢰스티도 아마 좋을 테고 어쩌면 더 훌륭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것은 더 이상 뢰스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억나게 하지 않는다면 품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26쪽)

  맛이나 냄새같은 감각이 기억을 완성하는 일은 흔하고, 그런 기억은 다른 기억들보다 농도 짙게 느껴진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나서 컵라면을 먹지 않으면 그건 놀이의 완성이 아니라고, 가게가 도로가에 있더라도 친구랑 학원 쉬는 시간에 떡볶이니 꼬지니 하는 걸 호호 불며 사먹지 않으면 무슨 재미냐고, 건강에 도움될 것 하나 없는 불량식품이라도 하굣길에 꾀돌이 아폴로 맥주사탕을 쥐고 오지 않으면 얼마나 아쉬우냐고. 반쯤은 결벽증이 되어가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의 기쁨.



과거가 없는 자그마한 술집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과거를 소유하는 일은 이렇게도 일찍 시작된다!
과거, 그러니까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이유는 지금보다 뭔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것. 여기에는 모든 것이 지금과 아주 달랐을 때 자기도 그걸 경험헀다는 기억도 포함된다. (29쪽)

  이 부분을 읽을 때 W가 해줬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생각났다. W네가 새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 집을 착각해서 옆동인지 아무튼 다른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잠시 둘러보고 집 구조(와 크기)가 예정된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어른들이 제대로 된 집을 찾아갔을 때 어린 W는 진짜 자기 집을 보며 여기 우리집 아냐 우리집은 훨씬 넓단 말이야 하며 펑펑 울었단다. 어린 아이는 잘못 찾아들어간 집을 순식간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아이는 그 집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그 집의 기억을 소유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집에서 오래 살았을 진짜 집주인도 그런 기억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추억은 언제까지나 내 것이고,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 그 소중한 '내 것'을 나누고 싶어한다.

선불 버스표와 선술집
음식은 맛있었다. 그녀가 요리를 조금 못했다고 하더라도——그런데 요리를 못했으리라는 상상은 되지 않는다——사람들은 아마 린다에게 갔을 것이다. 린다는 사실 주인이 아니라 음식점 그 자체였다. 미식 평론가들의 '가격 대비 만족'이라는 궁색한 평가가 맞지 않는 음식점. 그녀가 곧 음식점이었다. 바로 이 점이 '손님이 왕'이 아닌 그곳의 큰 매력이었다. 그녀는 여왕이었다. 권력은 그녀과 쥐고 있었고, 호의도 그녀가 베풀었다. 그녀에게 오는 사람들은 여왕을 알현하는 것이었고, 여왕의 손님이 됐다는 감격적인 느낌을 즐겼다. 이런 우아함에 비하면 "손님은 왕이다"라는 진부한 문구는 얼마나 초라한가.
  왕이 되어 신하들을 찾아가는 데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아마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 자신이 위인인 사람들, 자기 의견을 지녔으며 이를 뚜렷하게 밝히는 사람들, 자기 기분과 고집을 지닌 사람들을 방문하는 게 더 좋다. 나는 술집에서 손님일 뿐 아니라 방문객도 되고 싶다. (36쪽)



편안하고 질서 있는 무질서
  아니, 나는 무질서 속에서도 편안하지 않다. 내 뮐서는 제화공 해프리거의 무질서와 같지 않다. 내일이나 모레 또는 주말에 다시 한 번 청소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혹시 평생 잘못된 것을 추구한 건 아닐까? 정리하는 데 늘 실패한 게 아니라, 무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게 아닐까? (58쪽)

  재미있는 접근이로세. 내가 늘 강조하는 바를 적어두고 가야겠다. 책상 위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책상 청소를 할 필요가 없다! 참으로 편안하고 질서 있는 무질서다.



'이해하기'보다 '듣기'
그들[지적장애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이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곳에서 청중에게 이해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듣기'란 '이해하기'보다 훨씬 단계가 높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대단찮은 청중일 것이다. 언제나 성급하게 이해하려고 하니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들을 수 있다. (103쪽)

  읽기는 듣기의 형태 가운데 하나다. 그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약간 교육을 더 받고 조금 더 숙달된 지금은 읽으면서 성급하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순진무구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장 파울을 읽으며, '이해하기'를 거부하려고 약간 노력한다. 그에게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다. 귀 기울여 듣기에는 관용이 필요하고 선입견이 없어야 하는데, 이른바 경험이라는 게 많아질수록 그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105쪽)
:다른 이의 경험을 섣불리 나의 것으로 치환하지 않기.



작은, 아주 작은 소속감
나는 이 년 동안 그에게 인사했지만, 그는 인사에 답하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 둘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고, 우리는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때ㅜ터 그는 싹싹하게 인사한다. 그가 자기 손을 가슴에 얹고 몸을 약간 굽히며 인사를 하면 나는 항상 기분이 좋다. 예전에 그가 인사에 대답하지 않을 때, 나는 거의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제 드디어 같은 버스를 타는 셈이다. 나는 사실 그를 모른다. 그의 이름도, 그가 간직한 이야기들도. 그도 나를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그는 이제 여기 있고, 나도 여기 있다. (127쪽)

  흔들리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옆자리 사람에게 스르륵 기댈 때가 있다. 누군가 내게 기대어 올 때도 있다. 그 고단한 머리를 쳐내지 않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함께 이곳에 있었던 우연을 소중히 여기는 최소한의 행위 (또는 비행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긴 개콘 '불편한 진실'에서는 미모 출중한 자가 기대어오면 어깨를 들이대고 반대의 경우 머리를 튕겨 낸다고 하긴 하더라마는...



단어가 없어도 나눌 수 있는 대화
  "그 여자[발리 여자]에게 어떻게 그런 고통을 줄 수 있어요? 흥정을 했어야죠. 그 책은 그녀의 것이었어요. 그런데 돈이 필요해서 자기 소유물과 헤어져야 한 거예요. 그 여자에게는 작별을 끌고 늦출 권리가 있었다고요. 그렇게 빨리 흥정을 끝내다니, 당신은 그녀를 모욕한 거예요."
  그녀가 요구했던 가격보다 더 주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꽤 훌륭한 줄 알았다. 흥정이 가격뿐 아니라 생동감, 교제 및 대화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스위스 사람인 내가 어찌 알았으랴. 그때부터 나는 되도록 길게 흥정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원래 가격보다 더 주었다. (163쪽)

  요즘 외국인들과의 융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외국인들이 이제 좀 우리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언어를 배워서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누가 시간을 내서 그들과 친근하게 이야기한단 말인가? 현금 인출기와 차표 자동 발매기가? 어쩄든 융화란 이런 것과는 다르다. 우리 언어를 잘하며너도 융화를 동경하는 외국인들도 많고, 융화를 원하는 내국인들도 점점 많아진다. 융화는 외국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만을 목표로 삼는 사회의 문제다. 효율은 결국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 되므로. (164쪽)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0) 2012.07.31
그리스 인 조르바  (0) 2012.07.31
애니 홀  (0) 2012.02.2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0) 2012.01.29
상실의 시대  (0) 2012.01.29
      기록  |  2012. 2. 12. 17:5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74)
박찬기 옮김
민음사 2010

젊은베르테르의슬픔(세계문학전집25)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음사, 1999년)
상세보기

베르테르는 한때 S의 닉네임이었다. 젊은 베르테르가 마지막에 자살을 했다는 것쯤이야 워낙 유명하니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얼마나 그를 좋아했던지 굳이 책을 사서 읽어보려고 했으나 별로 재밌지가 않아서 안 읽고 있다가, 그와 헤어지고 나서야 읽게 되었다.

대문호 괴테와 이 책을 밤새워 읽었을 수많은 청춘들(울엄마 포함)에게는 죄송하지만 정말 재미 없었다. 게다가 읽을 때 자꾸 그가 떠올라서 진저리를 치며 읽었다. 그냥 닉네임이 그랬기 때문에 떠오른 게 아니라 정확히는 자꾸 '겹쳐졌다.' 읽고나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심정이 되어 독문학과 후배한테 대체 이 작품이 뭐가 대단하냐고 묻기까지 했다. 근데 걔 답변이 매우 마음에 들었으므로 하이라이트를 여기 옮겨놓는다. "[...]주변에 그런놈 있으면 피하는게 답이거든요[...]" 아하.



  어린아이들이란 스스로 무엇인가 원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원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 그러나 어른들도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상을 저처없이 비틀거리고 돌아다니며, 자기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이렇다 할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과자나 흰자작나무 회초리에게 지배당하는 실정이다. (21쪽)

나도 그런 젊은이라면 어떤 영주에게나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애인으로서의 그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만일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도 마지막이지. 아아, 나의 벗들이여, 무엇 때문에, 천재의 물결이 둑을 뚫고 터져나와 큰 홍수를 이루며 콸콸 쏟아져 내려와서, 그대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는 일이 이렇게도 드물단 말인가! (26쪽)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로테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꼴을 하는지, 그것을 자네에게도 한번 보여주고 싶다! 더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로테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기라도 한다면 —— 난 그 마음에 든다는 말이 죽도록 싫다. 로테를 좋아하면서 모든 감각과 감정이 그녀로 가득 차고 넘쳐흐르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마음에 든다구! (61쪽)

  나를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된 이후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얼마나——자네는 그것을 이해해 줄 만한 사람이니까, 이런 말을 해도 상관없겠지——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존경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64쪽)
: 사랑하기 이전에도 '나'는 있어야 한다.

  나는 벌써 로테의 초상화를 세 번이나 시작해 보았지만, 다 실패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도 제법 일이 잘되어 나갔던 만큼, 더욱 울화가 치솟는다. 그래서 나는 로테의 실루엣을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68쪽)
: 초상화로 완전히 옮길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는 게 당연하다.

이 세상에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소위 양자택일의 방식으로 처리되는 일은 아주 드물다. 매부리코와 납작코 사이에도 수많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도 가지가지 음영이 있는 법이다. (73쪽)

「아아, 당신들 이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란!」 하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격정! 주정! 미치광이! 당신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태연자약하게 시치미를 떼고 서 있으니, 정말 도덕군자라고 해야 되겠군요! 술주정뱅이를 나무라고 욕하며, 미친놈을 업신여기고 싫어하며, 마치 제사장처럼 그 옆을 지나가고, 자기를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주지 않는 것을 바리새 사람처럼 신에게 감사하지요. 나는 술에 취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어요. 내 격정은 항상 미치광이에 가까웠지요.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 모두 후회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옛부터 사람들은, 어떤 위대한 일이나 불가능한 일을 해낸 비범한 인물을 술주정뱅이나 미치광이라고 부르지 않고는 못 배겼던 사실을, 나는 나름대로 이해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도 어떤 사람이 자유스럽고 고상하고 훌륭한 일, 예상을 뒤엎는 거창한 사업에 착수하는 경우에는 거의 예외없이, 그 사업이 진행되는 도중인데도 그 사람을 <저 친구는 술에 취했어, 저 작자는 천치란 말야> 등 비난하기가 일쑤니, 정말 참을 수가 없단 말이오! 올바른 정신을 가진 냉철한 당신네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돼요! 당신네들은 참으로 똑똑하고 현명하지만 염치를 좀 알란 말이오!」(79쪽)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85쪽)
: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뿌리가 같다.

불행한 일이다! 빌헬름! 나의 활동력은 방향을 바꾸어 불안한 게으름으로 변하고 말았다. 멍청하니 하릴없이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내게는 공상도 없어졌고 자연을 감상하는 정서도 사라졌으니, 이제 책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일어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89쪽)

확실히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와, 그리고 우리를 모든 것과 비교해 보도록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래서 행불행은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대상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독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문학의 환상적인 이미지에 영향받은 우리의 상상력에는 본질적으로 더 높은 것을 추구하려는 충동이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피조물을 한층 고양시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이게 되어 우리 이외의 것은 모두 우리보다 훌륭하고 누구 할 것 없이 우리보다는 완전해 보인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는 모자라는 것이 여러가지 있다고 우리는 느낀다. 그런데 우리에게 부족한 바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모조리 그 사람에게 주어버리고,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이상적인 삶의 즐거움마저도 부여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행복한 사람이 한 명 완성되는 것인데, 이처럼 완벽하게 이룩된 사람이란 사실은 우리 스스로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104쪽)

더구나 내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일은 공작이란 분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은 데 지나지 않는 일을 곧잘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한테 들은 그대로 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분은 그뿐 아니라, 내 마음보다는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마음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오직 그것만이 모든 것의 원천, 즉 모든 힘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129쪽)
: 그 마음이란 걸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 감동도 연마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이야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무엇 때문에 자기를 불안하게 하고 한없이 괴롭히는 일을, 꾹 참고 가슴속에 간직해 두지 않는 것일까? 왜 자네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항상 나를 불쌍히 여기고 책망할 수 있는 기회를 자네에게 주는 것일까? 좋다, 이것도 아마 내 운명에 속하는 것일 테지! (134쪽)
: 이야기해봤자 크게 소용없는 건 맞다. 하지만 이건 니 잘난 운명이고 뭐고 그런 거라기보단 그냥 친구를 잘 둔 거야. (하는 식으로 무지 삐딱하게 책을 한 권 읽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사실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도 있는데, 꼭 너무 나가주시니 이런 식으로 답할 수밖에 없어진다...)

  즉, 이런 사랑, 이런 성실, 이런 정열은 결코 문학적인 창작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교양이 없다든가 야만적이라고 부르는 계급의 사람들 속에서, 최대의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있다. 그런데 우리들 소위 교양 있는 사람이란…… 아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신적 불구자가 아닐까? (137쪽)
: 트리스트럼 섄디가 떠오르는 대목.

  나는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만다. 나는 이렇게도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146쪽)
: 심정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나 이렇게 살지 마시라고요.

「베르테르 씨, 당신은 우리와 만나실 수 있고 또 만나주셔야만 해요. 다만 그 정도를 적당히 해주시라는 거예요. 아아, 어째서 당신은 무엇이든 한번 손댄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그 정열과 격렬한 성격을 지니고 태어나신 건가요! 제발 부탁이에요」(175쪽)

  이처럼 깊은 생각에 잠기는 동안, 그녀는 또렷하게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베르테르를 자기 곁에 머무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자기 마음속의 은근한 소원임을 지금 처음으로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그를 자기 곁에 붙잡아두는 일이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고 또 허용될 수도 없음을 스스로에게 타일렀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늘 쾌활하고 거리낌없었던 그녀가 이제는 행복에 대한 희망을 잃고 우수와 비애에 짓눌려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가슴은 무겁게 조여들었으며 먹구름의 기운이 그녀의 눈 위에 어른거렸습니다. (182쪽)
: 로테에게 거의 200프로 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 상황을 봤을 땐 그저 신경증 환자에게 굴복해 우울의 늪에 빠져드는 한 불쌍한 여자로 보인다.



  물론 베르테르가 그저 미친놈이기만 한 건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그 옛날 A와 만날 때 그리고 헤어졌을 때의 심정을 잘 묘사하는 대목들을 몇번이나 마주쳤고, 격렬하고 과감한 감정 표현들은 충분히 매료될 만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 눈에 베르테르는 그저 미치광이 똘추 찐따(...)일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다, 언젠가 썸머처럼 운명을 믿는 로맨티스트로 변모한 내가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전혀 다르게 읽힐지도. 근데 아마 내가 그 운명의 남자 집에 가서 그를 재워준 뒤 (늘 그래줘야만 하는 토끼, 아니 유리같은 남자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늘 강인할 수만은 없다는 점은 인정하니까) 그의 책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도저히 읽을 책이라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밖에 없는지라 맥주 한 캔을 곁들여 책을 읽기 시작하지 않는 한, 다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0) 2012.07.31
그리스 인 조르바  (0) 2012.07.31
애니 홀  (0) 2012.02.24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0) 2012.02.12
상실의 시대  (0) 2012.01.29
      기록  |  2012. 1. 29. 02:56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1987)
유우정 옮김
문학사상사 2001

상실의시대:원제노르웨이의숲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10년)
상세보기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는 함부르크 행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Norwegian Wood를 듣고 심한 두통을 느낀다. 그리고 18년 전에 나오코와 걷던 초원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초원의 깊은 우물. 이야기로만 들은 우물의 모습을, 그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오코와의 기억은 잊혀져간다.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젊고 그 기억이 훨씬 선명했던 무렵, 나는 그녀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그땐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첫 한 줄만 나와 준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든 술술 써지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한 줄이 아무리 애써도 나와 주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상세한 지도가, 선명함이 지나쳐 때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4쪽)



  그런 소리[플라타너스 낙엽 밟는 마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나오코가 불쌍해 보였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팔인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나의 따스함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따스함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데서 나는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55쪽)

  사실 소설의 맥락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S가 사랑한다는 그 사람이 내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너는 '그 누군가'를, 바로 '너의 사랑'을 사랑하고 있고 나는 그냥 내팽개쳐져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팔이라도 잡고 있었더라면.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바람맞고 기숙사로 돌아와 나가사와 선배를 만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야."
  "선배님은 내가 지금껏 만난 분 중에 가장 색다른 분이에요."
  "너는 내가 지금껏 만난 인간 중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술값을 전부 치렀다. (99쪽)



  "부자의 최대 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령 내가 반 친구한테 뭘 좀 하자고 하면 상대는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 하게 돼. 내가 가령 지금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니까. 비참할 뿐이지. [...]" (108쪽)



  "나 말야, 널 좀더 알고 싶어."
  "그저 보통 사람이야. 보통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으로 자랐고, 보통 얼굴을 하고 있는데다 성적도 보통이고, 극히 보통의 일만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만, 자기를 보통 사람이라고 하는 인간을 믿어선 안 된다는 글을 쓴 사람이,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스콧 피츠제럴드가 아니었나? 나 그 책, 자기한테 빌려 읽었잖아."
  나오코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180쪽)



왜 나오코가 기즈키와 자지 않았는지에 대해 대답하던 중 나오코는 발작을 일으킨다. 그녀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레이코와 산책을 하고 돌아온 와타나베에게, 나오코는 다시 기즈키를 회상하며 말하기 시작한다. 

  "늘 자신이 달라지도록, 나아지도록 노력했는데, 그게 잘 안 되면 짜증을 내거나 슬퍼했어. 몹시도 훌륭한 것, 아름다운 것을 지니고 있었는데, 결국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해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바꿔 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 생각해 보면 가엾어, 그 사람." (203쪽)

  얼마전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어색함 속에 밥을 먹고는 결국 체하고 말았다. 적게는 2년에서 많게는 4년 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 처음에는 그들과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한 줄 알았다. 서로가 변했네 변하지 않았네 재어보는 탓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이 말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괴리가 더 어색했다. 노래를 잘 하는 나(나보고 뭐 바이브레이션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되는 거라고 했대나 어쨌대나), 그림을 잘 그리는 나, 뭐든지 잘 할 것 같은 나, 일본어를 잘 하는 나... 내가 아는 나는 노래도 보통 그림도 보통 뭐든지 보통에 일본어는 못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 괴리 속에 기분이 붕 뜨면서도 여전히 참담한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너 그때랑 달라 참 많이 변했어 지금 너는 참 우아해졌구나."
  힘이 쪽 빠져버린 목소리, 자그마해진 몸뚱아리가 그런 인상을 자아내는 것 같은데 마치 너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왜 이래? 하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참 일관성있게도 나를 못나게, 그리고 가엾게 여기고 있다.



  "한 번 더 물어 보겠는데, 왜 그렇게 멍한 얼굴을 하고 있어?"
  "아마 세상에 아직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일 거야" 하고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어쩐지 이곳이 현실 세계가 아닌 것처럼 여겨져. 사람들도, 풍경도, 어쩐지 현실 세계같이 안 보인단 말이야."
  그녀는 테이블에 한쪽 팔꿈치로 턱을 괸 채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짐 모리슨의 노래에 분명히 그런 게 있었어."
  "People are strange when you are a stranger."
  "피스" 하고 그녀가 말했다.
  "피스" 하고 나도 따라했다. (266쪽) 

The Doors - People Are Strange



  "그건 노력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일 뿐이야" 하고 나가사와 선배는 간단히 말했다. "내가 말하는 노력이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 좀더 주체적이고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걸 말해." (314쪽)

나가사와 선배의 취직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 미드나이트 블루빛의 원피스를 차려입은 하쓰미와 나가사와가 언쟁을 시작한다. 나가사와는 애인이 있는데도, 마치 게임을 즐기듯 여러 여자와 자고, 와타나베도 그 덕(?)에 여자와 잠자리를 한 일이 있다. 

  "나와 와타나ㅔ는 닮은 데가 있어" 하고 나가사와 선배가 말했다. "와타나베도 나처럼 본질적으로는 자신에게만 흥미를 느끼는 인간이야. 오만하다든가 그렇지 않다든가 하는 차이는 있지만 말야.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그런 것밖에는 흥미를 못 가져. 그러니까 자기와 타인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있지. 내가 와타나베를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점이야. 다만 와타나베의 경우는 스스로 분명하게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서, 헤매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는 거야." (322쪽)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미도리를 만난 와타나베. 미도리의 집에서 그녀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준 다음의 장면.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부엌 테이블에 앉아 그 책을 내리 읽었다. 처음으로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은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였다. 그리고 8년 후, 나는 여자의 집 부엌에서 한밤중에, 그것도 여자친구의 죽은 아버지가 생전에 입었던 사이즈가 작은 파자마를 입은 채 같은 제목의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뭔가 참 기묘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만일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면, 내가 《수레바퀴 밑에서》를 다시 읽는 일이란 없었을 것이다. (356쪽)

  상황 묘사도 그렇지만 상황 자체가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미도리와 어떤 의미로든 자지 않은 와타나베가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나오코의 편지] 나도 되도록 시간을 내서 편지를 쓰려고 애는 쓰지만, 편지지를 마주하기만 하면 마음이 곧 가라앉고 말아. 이 편지도 지금 온갖 힘을 다해 쓰고 있는 거야.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고 레이코 언니에게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오해하지는 말아 줘. 난 네게 말하고 싶은 일, 전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글이 되질 않아. 그래서 나는 편지 쓰기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아. (359쪽)

  나의 게으름 때문에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지만, 이 부분이 내게 강하게 불러오는 기억이 있다. S는 내게 매일 메일을 썼다. 그리고 그 와중에 편지도 썼다. 그러면서도 내게 더 표현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그가 (나 말고) 사랑에 미쳐 있었던 게 틀림없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답장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어제의 답장을 하고 싶으면 어느새 오늘이 와 있었고 내가 답해야 할 이야기는 배로 불어났다. 또 내일이 오고, 모레가 와서 끝없이 쌓였다. 물론 그에 대한 즉각적인 답변은 매 순간 한 상태였으므로 꼭 '답장'이 아니어도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너를 얼마만큼 생각하고 있는지를 적자. 그래서 나는 가방 속에 편지지와 주소를 쓴 봉투를 줄곧 넣어 다니며 편지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편지지를 펼치고 앉으면 막막함의 벽이 나를 가로막는다는 데 있었다. 과제의 첫 줄을 적어야 하는 순간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더 슬프고 괴롭고 훨씬 더 외로웠다. 어떻게 말을 돌리고 돌려보려 해도 쓰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을 웃으며 끝마쳤다 해도 하지 못한 첨언이 남아 있었다. 하트가 박혀 있는, 내 취향이 아닌 편지지 위에 한 줄 한 줄 쥐어짜낸 편지를 다 완성한 다음에 찢어버리기도 했다. 쓰지 못한 문장이 이미 너무 많았음에도.

내가 쓰고 싶은 말은 "나는 네 덕분에, 행복하지 않다" 였다. 

 말하고 싶은 일, 전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네 덕분에, 행복하지 않았으므로.



레이코의 기타 연주 한 곡에 성냥개비 한 개를 놓으며, 포도주향과 담배 연기를 곁들여 그들은 나오코의 장례식을 다시 치른다. 쉰 곡을 다 연주한 다음, 그들은 네 번의 관계를 가진다. 다음날 아사히가와로 가는 레이코를 배웅하며, 와타나베는 편지할 것을 약속한다.

  "편지는 그저 종이일 뿐인 걸요" 하고 나는 말했다. "태워 버려도 마음에 남는 건 남고, 가지고 있어도 남지 않는 건 남지 않지요." (439쪽)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0) 2012.07.31
그리스 인 조르바  (0) 2012.07.31
애니 홀  (0) 2012.02.24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0) 2012.02.1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0) 2012.01.29
      기록  |  2012. 1. 29. 01:24





헌사

 
깎깨인과김깪굴님,

  우선 고백을 하나 하고 싶어요. 헌사라는 걸 써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책을 읽으면서 헌사를 눈여겨 읽어본 기억도 없는지라 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할까 멍해졌어요. 매일 샤워할 때마다 무슨 말을 쓸까 구상하고는 물기랑 같이 훔쳐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마음만 무거워져갔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오늘 오래 내버려두었던 책장을 정리하다가, 내가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책들이 너무 많이 있는 걸 발견했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도 하고 있는 생각도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워졌어요.

  그래서 뭐라도 쓰자,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런 태도가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아 염려는 됩니다만, 마침 잘 됐어요- 여기가 잘난 글을 쓰려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께 그리고 나 자신에게 다시 밝혀놓고 싶습니다. 기대 이상의 날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기대 이상의 글들만 있을 필요도 없겠지요.
  지금 저는 마음을 만져주는 노래를 귀에 꽂고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써내려가는 글-소리에 너무 귀기울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약간은 취한 것처럼 욕심을 내려놓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목적성이 없는 글을 쓸 생각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이 공간만이 목적성 없는 것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사실, 애정하는 두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제게 지금은 그 이상의 힘이랄 게 없습니다.
  
주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일기같은 글을 쓸 것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기억 속에 울고 웃었는지 
때로는 꿈 얘기도 쓰고 
찍은 사진도 올려두고 
그냥 그렇게 정리 안 된 상자같은 공간이라도 좋으니까 

다만 그런 공간을 채워가고 싶은 매일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분의 도움을 받아 이 공간을 엽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인 다음 얼굴을 붉히며 고치기도 하고, 내 생각은 확고하다는 듯이 적어 놓았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별 볼 일 없는 글이겠지만, 때로 들어와 읽고 싶어 해 준다면 행복하게 여기겠습니다. 

두 분 덕에, 이 공간이 내버려진 섬처럼 시작되지 않아서 마음이 따뜻합니다.
지금 제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고마운 두 사람에게
부움 혹은 우붐 드림
      헌사  |  2012. 1. 22. 01:47



부움'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