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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74)
박찬기 옮김
민음사 2010

젊은베르테르의슬픔(세계문학전집25)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음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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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는 한때 S의 닉네임이었다. 젊은 베르테르가 마지막에 자살을 했다는 것쯤이야 워낙 유명하니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얼마나 그를 좋아했던지 굳이 책을 사서 읽어보려고 했으나 별로 재밌지가 않아서 안 읽고 있다가, 그와 헤어지고 나서야 읽게 되었다.

대문호 괴테와 이 책을 밤새워 읽었을 수많은 청춘들(울엄마 포함)에게는 죄송하지만 정말 재미 없었다. 게다가 읽을 때 자꾸 그가 떠올라서 진저리를 치며 읽었다. 그냥 닉네임이 그랬기 때문에 떠오른 게 아니라 정확히는 자꾸 '겹쳐졌다.' 읽고나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심정이 되어 독문학과 후배한테 대체 이 작품이 뭐가 대단하냐고 묻기까지 했다. 근데 걔 답변이 매우 마음에 들었으므로 하이라이트를 여기 옮겨놓는다. "[...]주변에 그런놈 있으면 피하는게 답이거든요[...]" 아하.



  어린아이들이란 스스로 무엇인가 원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원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 그러나 어른들도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상을 저처없이 비틀거리고 돌아다니며, 자기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이렇다 할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과자나 흰자작나무 회초리에게 지배당하는 실정이다. (21쪽)

나도 그런 젊은이라면 어떤 영주에게나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애인으로서의 그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만일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도 마지막이지. 아아, 나의 벗들이여, 무엇 때문에, 천재의 물결이 둑을 뚫고 터져나와 큰 홍수를 이루며 콸콸 쏟아져 내려와서, 그대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는 일이 이렇게도 드물단 말인가! (26쪽)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로테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꼴을 하는지, 그것을 자네에게도 한번 보여주고 싶다! 더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로테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기라도 한다면 —— 난 그 마음에 든다는 말이 죽도록 싫다. 로테를 좋아하면서 모든 감각과 감정이 그녀로 가득 차고 넘쳐흐르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마음에 든다구! (61쪽)

  나를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된 이후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얼마나——자네는 그것을 이해해 줄 만한 사람이니까, 이런 말을 해도 상관없겠지——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존경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64쪽)
: 사랑하기 이전에도 '나'는 있어야 한다.

  나는 벌써 로테의 초상화를 세 번이나 시작해 보았지만, 다 실패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도 제법 일이 잘되어 나갔던 만큼, 더욱 울화가 치솟는다. 그래서 나는 로테의 실루엣을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68쪽)
: 초상화로 완전히 옮길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는 게 당연하다.

이 세상에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소위 양자택일의 방식으로 처리되는 일은 아주 드물다. 매부리코와 납작코 사이에도 수많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도 가지가지 음영이 있는 법이다. (73쪽)

「아아, 당신들 이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란!」 하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격정! 주정! 미치광이! 당신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태연자약하게 시치미를 떼고 서 있으니, 정말 도덕군자라고 해야 되겠군요! 술주정뱅이를 나무라고 욕하며, 미친놈을 업신여기고 싫어하며, 마치 제사장처럼 그 옆을 지나가고, 자기를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주지 않는 것을 바리새 사람처럼 신에게 감사하지요. 나는 술에 취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어요. 내 격정은 항상 미치광이에 가까웠지요.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 모두 후회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옛부터 사람들은, 어떤 위대한 일이나 불가능한 일을 해낸 비범한 인물을 술주정뱅이나 미치광이라고 부르지 않고는 못 배겼던 사실을, 나는 나름대로 이해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도 어떤 사람이 자유스럽고 고상하고 훌륭한 일, 예상을 뒤엎는 거창한 사업에 착수하는 경우에는 거의 예외없이, 그 사업이 진행되는 도중인데도 그 사람을 <저 친구는 술에 취했어, 저 작자는 천치란 말야> 등 비난하기가 일쑤니, 정말 참을 수가 없단 말이오! 올바른 정신을 가진 냉철한 당신네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돼요! 당신네들은 참으로 똑똑하고 현명하지만 염치를 좀 알란 말이오!」(79쪽)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85쪽)
: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뿌리가 같다.

불행한 일이다! 빌헬름! 나의 활동력은 방향을 바꾸어 불안한 게으름으로 변하고 말았다. 멍청하니 하릴없이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내게는 공상도 없어졌고 자연을 감상하는 정서도 사라졌으니, 이제 책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일어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89쪽)

확실히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와, 그리고 우리를 모든 것과 비교해 보도록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래서 행불행은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대상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독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문학의 환상적인 이미지에 영향받은 우리의 상상력에는 본질적으로 더 높은 것을 추구하려는 충동이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피조물을 한층 고양시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이게 되어 우리 이외의 것은 모두 우리보다 훌륭하고 누구 할 것 없이 우리보다는 완전해 보인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는 모자라는 것이 여러가지 있다고 우리는 느낀다. 그런데 우리에게 부족한 바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모조리 그 사람에게 주어버리고,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이상적인 삶의 즐거움마저도 부여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행복한 사람이 한 명 완성되는 것인데, 이처럼 완벽하게 이룩된 사람이란 사실은 우리 스스로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104쪽)

더구나 내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일은 공작이란 분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은 데 지나지 않는 일을 곧잘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한테 들은 그대로 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분은 그뿐 아니라, 내 마음보다는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마음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오직 그것만이 모든 것의 원천, 즉 모든 힘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129쪽)
: 그 마음이란 걸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 감동도 연마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이야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무엇 때문에 자기를 불안하게 하고 한없이 괴롭히는 일을, 꾹 참고 가슴속에 간직해 두지 않는 것일까? 왜 자네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항상 나를 불쌍히 여기고 책망할 수 있는 기회를 자네에게 주는 것일까? 좋다, 이것도 아마 내 운명에 속하는 것일 테지! (134쪽)
: 이야기해봤자 크게 소용없는 건 맞다. 하지만 이건 니 잘난 운명이고 뭐고 그런 거라기보단 그냥 친구를 잘 둔 거야. (하는 식으로 무지 삐딱하게 책을 한 권 읽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사실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도 있는데, 꼭 너무 나가주시니 이런 식으로 답할 수밖에 없어진다...)

  즉, 이런 사랑, 이런 성실, 이런 정열은 결코 문학적인 창작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교양이 없다든가 야만적이라고 부르는 계급의 사람들 속에서, 최대의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있다. 그런데 우리들 소위 교양 있는 사람이란…… 아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신적 불구자가 아닐까? (137쪽)
: 트리스트럼 섄디가 떠오르는 대목.

  나는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만다. 나는 이렇게도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146쪽)
: 심정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나 이렇게 살지 마시라고요.

「베르테르 씨, 당신은 우리와 만나실 수 있고 또 만나주셔야만 해요. 다만 그 정도를 적당히 해주시라는 거예요. 아아, 어째서 당신은 무엇이든 한번 손댄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그 정열과 격렬한 성격을 지니고 태어나신 건가요! 제발 부탁이에요」(175쪽)

  이처럼 깊은 생각에 잠기는 동안, 그녀는 또렷하게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베르테르를 자기 곁에 머무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자기 마음속의 은근한 소원임을 지금 처음으로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그를 자기 곁에 붙잡아두는 일이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고 또 허용될 수도 없음을 스스로에게 타일렀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늘 쾌활하고 거리낌없었던 그녀가 이제는 행복에 대한 희망을 잃고 우수와 비애에 짓눌려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가슴은 무겁게 조여들었으며 먹구름의 기운이 그녀의 눈 위에 어른거렸습니다. (182쪽)
: 로테에게 거의 200프로 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 상황을 봤을 땐 그저 신경증 환자에게 굴복해 우울의 늪에 빠져드는 한 불쌍한 여자로 보인다.



  물론 베르테르가 그저 미친놈이기만 한 건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그 옛날 A와 만날 때 그리고 헤어졌을 때의 심정을 잘 묘사하는 대목들을 몇번이나 마주쳤고, 격렬하고 과감한 감정 표현들은 충분히 매료될 만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 눈에 베르테르는 그저 미치광이 똘추 찐따(...)일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다, 언젠가 썸머처럼 운명을 믿는 로맨티스트로 변모한 내가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전혀 다르게 읽힐지도. 근데 아마 내가 그 운명의 남자 집에 가서 그를 재워준 뒤 (늘 그래줘야만 하는 토끼, 아니 유리같은 남자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늘 강인할 수만은 없다는 점은 인정하니까) 그의 책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도저히 읽을 책이라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밖에 없는지라 맥주 한 캔을 곁들여 책을 읽기 시작하지 않는 한, 다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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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  2012. 1. 29.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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