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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사

 
깎깨인과김깪굴님,

  우선 고백을 하나 하고 싶어요. 헌사라는 걸 써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책을 읽으면서 헌사를 눈여겨 읽어본 기억도 없는지라 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할까 멍해졌어요. 매일 샤워할 때마다 무슨 말을 쓸까 구상하고는 물기랑 같이 훔쳐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마음만 무거워져갔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오늘 오래 내버려두었던 책장을 정리하다가, 내가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책들이 너무 많이 있는 걸 발견했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도 하고 있는 생각도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워졌어요.

  그래서 뭐라도 쓰자,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런 태도가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아 염려는 됩니다만, 마침 잘 됐어요- 여기가 잘난 글을 쓰려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께 그리고 나 자신에게 다시 밝혀놓고 싶습니다. 기대 이상의 날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기대 이상의 글들만 있을 필요도 없겠지요.
  지금 저는 마음을 만져주는 노래를 귀에 꽂고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써내려가는 글-소리에 너무 귀기울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약간은 취한 것처럼 욕심을 내려놓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목적성이 없는 글을 쓸 생각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이 공간만이 목적성 없는 것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사실, 애정하는 두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제게 지금은 그 이상의 힘이랄 게 없습니다.
  
주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일기같은 글을 쓸 것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기억 속에 울고 웃었는지 
때로는 꿈 얘기도 쓰고 
찍은 사진도 올려두고 
그냥 그렇게 정리 안 된 상자같은 공간이라도 좋으니까 

다만 그런 공간을 채워가고 싶은 매일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분의 도움을 받아 이 공간을 엽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인 다음 얼굴을 붉히며 고치기도 하고, 내 생각은 확고하다는 듯이 적어 놓았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별 볼 일 없는 글이겠지만, 때로 들어와 읽고 싶어 해 준다면 행복하게 여기겠습니다. 

두 분 덕에, 이 공간이 내버려진 섬처럼 시작되지 않아서 마음이 따뜻합니다.
지금 제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고마운 두 사람에게
부움 혹은 우붐 드림
      헌사  |  2012. 1. 22.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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