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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2008)

창비 2012 


엄마를 부탁해

저자
신경숙 지음
출판사
창비 | 2008-1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우리 ...
가격비교



  엄마가 어쩌고 하는 책은 그냥 읽기 싫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광고를 해댈 때 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읽기 시작해서는 결국 사서 후딱 다 읽어버렸다.

 

그들은 너의 엄마로 추정되는 한 늙은 여인이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 걸, 간혹 주저앉아 있는 걸, 에스컬레이터 앞에 하염없이 서 있는 걸 보았다고 했다. 너의 엄마인 듯한 한 늙은 여인이 오래 역에 앉아 있다가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는 걸 봤다는 이도 있었다. 너의 엄마가 어디론가 사라진 그 밤에 너는 일행들과 밤택시를 타고 북경의 휘황한 먹자거리에서 나가 붉은 불빛 아래서 오십육도쯤 되는 중국술을 맛보며 붉은 기름에 볶은 뜨거운 게요리를 먹고 있었던 거다. (19)
: 앞에서부터 주욱 이어지는 이 단호한 흐름이 마음에 들어서 체크해놨던 부분.

 

엄마에게 너란 존재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엄마가 네 앞에서 집을 치울 때였다. (26)
: 얼마 전 부산집에 갔을 때, 나는 부산스럽게 뒷정리를 해대는 나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생각했다. 혼자 지내는 서울집이 이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이젠 집구석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일까? 이 추측은 반쯤만 맞는 것 같았다. 그보다도, 나는 가족 앞에 철저하게 손님으로 있었다. 언제나 식탁을 공유하는 이들과 달리 나는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나의 특별한 방문을 알리고 싶어 안달했다. 나 여기 왔어요 생색을 내며 먹지 않는 밥상에 앉아 평소에는 먹지 않을 네 번째 다섯 번째 끼니를 주워먹고,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뒷정리를 했다. 마치 누군가의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았을 때처럼. 네가 이제 나이를 먹어 엄마와 말이 통하니까 참 좋구나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하지만 난 이 대화가 이 공간이 불편해요, 하는 생각을 품었다. 물론 이 묘한 거리감 또한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나는 뒷정리를 하면서 내가 있을 곳을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불편하게, 불편하게. 집을 떠나 어딘가에 묵을 때면 꼭 필요한 얼마간의 적응 시간이 있다. 나만의 동선을 만드는 그 적응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결국은 그곳에 기어이 섞여 들어가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손이 닿아야 비로소 참아줄 만해지는 그 공간,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메워진 우물 위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작은 문 안으로 들어서며 엄마! 하고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막 기울기 시작한 가을볕이 서향집 마당에 가득 차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살폈지만 거실에도 방에도 엄마는 없었다. 집 안은 어수선했다. 식탁 위 물병 뚜껑은 열려 있고 물컵은 개수대에 놓여 있었다. 거실 바닥에 깔린 돗자리엔 걸레바구니가 엎어져 있고 소파엔 아버지가 벗어놓은 듯 때묻은 셔츠가 팔을 벌리고 걸려 있었다. 서향집인 탓에 사위어가는 중인데도 강한 빛이 빈 공간에 스며 있었다. 엄마! 텅 비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는 엄마! 하고 한번 더 불러보았다. (28)
: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없지, 하는 마음으로 불러보는 큰딸과는 다르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이 있다. 언제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 빈 집을 향해 엄마! 하고 부른 적이 왕왕 있었다. 대체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차피 분명 매번 조금씩 달랐겠지만. 답이 돌아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에 매번 실망했을 리는 없다. 때로는 답이 돌아오지 않아 안도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내 방구석이 텅 비어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비어있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얘기가 재미있었다구? 너는 마음이 짠해졌다. 너의 얘기가 재미있는 게 아니라 점자도서관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네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깨달았다. 도시로 나온 뒤의 너는 어땠는가. 너는 엄마에게 늘 화를 내듯 말했다. 엄마가 뭘 아느냐고 대들듯이 말했다. 엄마가 돼서 왜 그래? 책망하듯이 말했다. 엄마가 알아서 뭐 할 건데? 무시하듯 말했다. 엄마가 너를 혼낼 힘이 없어진 걸 안 뒤의 너는, 엄마가 거긴 왜 갔느냐고 물으면 일이 있어서요, 짤막하게 대답했다. 다른 나라에서 책이 번역되었을 때나 혹은 세미나가 있어서 비행기를 타게 됐을 때도 거기 왜 가느냐? 고 물으면 그냥 일이 있어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엄마는 비행기 좀 그만 타라고 했다. 사고가 나면 이백명씩 죽는다는데 그걸 왜 타느냐고. 일이 있어서 타는 거예요 하면 너는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 게냐? 고 물었다. 그러네, 엄마, 너는 시무룩하게 대꾸하면 그만이었다.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이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런데 엄마는 점자를 보고 네가 느낀 막막함과 사백여명이나 되는 앞 못 보는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을 때의 낭패스러움에 대해 얘기하자 남아 있던 두통을 씻어낸 듯이 귀기울여 듣는 것이었다. (45)
: 나는 때로 엄마의 전화를 피했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받지 않으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누구나 느껴본 적 있을 그런 류의 죄책감에, 이 부분에서 잠시 멈추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변할 생각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았을 수많은 이들 중 누군가는, 변했을까?

 

  – 예전엔 안 그랬는데 너는 냉정한 사람이 되었구나. 어미가 그리 전화를 끊었으면 뭐라고 다시 전화를 해야 옳지 그리 뻗댈 수가 있냐?
  뻗댄 건 아니었다. 그 일을 그리 오래 생각하고 있을 만큼 너는 한가하지 않았다. 문득 노여워하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 엄마가 떠올라 전화를 해봐야지, 생각했다가도 또다른 일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뒤로 밀리곤 했다. (62)

 

  – 이게 뭐냐?
  – 지난 12월 31일에 새해를 맞이하며 글 쓰는 거만 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재미로 적어본 거야. 앞으로 십년 동안은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이거나 하고 싶은 것들. 근데 내 어떤 계획에도 엄마와 무엇을 함께 하겠다는 건 없더라. 쓸 때는 몰랐어. 엄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보니 그렇더라구.
  여동생의 눈이 물기로 반짝였다. (132)

 

니 고모가 딸내미 저리 두다간 빨갱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도 나는 니가 하는 말과 너의 행동을 자유롭게 두었고나. 오빠들에겐 그러지 못했어. 타이르고 야단쳤고나. 네 작은 오빠가 전경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허리를 다쳤을 때 소금을 달궈 허리에 얹어주다가 계속 이런 식이면 엄마가 죽어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했고나. 그러면서도 네 오빠가 무식한 엄마라고 생각할까봐 가슴 졸이기도 했재. 젊으니까 젊은 대로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었을 텐데 나는 힘껏 가로막았재. 너한테는 안 그랬다. 니가 변화시켜놓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어도 널 막지는 않았어. (218)

 

  내가 가끔 당신에게 책에서 읽었다며 해준 이야기들은 내가 읽어서 해준 이야기들이 아니요이. 사실은 내 딸한테 물어서 해준 것들이오. 스페인인가 하는 나라에는 산티아고라는 곳이 있다 했던 거. 당신은 그 이름을 외우는 것도 힘들어해서 거기 어디라고 했소? 자꾸 물었소이. 거기에 순례자의 길이 있는데 삼십삼일 동안 걸어가는 길이라 합디다. 내 딸아인 거길 가고 싶어했소이. 가끔 내게 그곳 얘기를 해주곤 했는데 마치 그곳을 내가 가고 싶은 것처럼 당신에게 말한 적도 있었네. 그랬더니 당신이 그랬지라오. 그리 가고 싶으면 언젠가 함께 가보자고 말이오. 어딘가를 함께 가보자고 하는 말을 당신에게서 듣고 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소이. 내가 당신을 다시 찾아가지 않은 게 그날 이후부턴가보오. 사실은 나는 그곳이 어딘 줄도 모르고 가고 싶지도 않으요. 지나간 시간에 함께한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테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테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면서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디다. 무슨 말이 그리 어려운지. 당신은 알아 듣겠소?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옛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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