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토막 


시간이 없다, 고 하지만 그건 덩어리로 존재하는 시간의 이야기고 그 시간을 분과 초로 갈기갈기 갈라놓으면 그 속에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 만큼 푹신한 모질을 자랑하는 붓처럼 될 것이다. 한 가닥 한 가닥 세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많은 분과 초를 엮어 하루의 붓을 만들고 붓들을 또 엮고 엮은 꾸러미를 또 서로 엮고. 멍하니 털꾸러미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아주 가끔 나의 외양을 의식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게 떠오르는 표정은 아주 건조하고, 나른하고, 눈은 무심하게 처져 있어서 그야말로 담배만 딱 물면 될 것 같은 모습이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불일치다. 너는 어떠하니까 어떠할 거라고 단정짓는 대상이 되고, 그 기대와 실제가 불일치 하는 상황. 사회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대체로 그 기대에 맞추고 상대방을 놀래키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미쳐버릴 지경이 되어 폭발하고 만다.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 어딘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 또라이가 그래서 좋다. 그 사람들은 나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


책을 왜 읽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누군가는 내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했다는 것을 확인 받고, 그 생각을 어떤 식으로 말로 옮겨 놓았는지를 음미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여러 번 같은 생각을 마주하더라도 다 다른 식으로 표현되어 있을 것이므로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은 그 생각의 권위를 드높여줄 뿐.  


나는 발전이 없는 사람이다. 참으로 여전하다. 

스승의 날이 이미 지났지만 아직 대학원 교수님들에게는 단 한 분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여전히 속마음을 말할 때면 눈물이 난다. 

무심한 척하고 있지만 어떤 것에도 마음을 쏟지 않는 것이 없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처럼 마음껏 남용했고 때로는 변용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쯤이면 미련 없이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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