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수키 김 (2004)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2005
집에서 책 정리를 하다가 책등이 분홍빛으로 바랜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잡았다.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일 것이다, 신간으로 나온 걸 사 읽었던 것 같으니까. 책 곳곳에 접어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가 접어놓은 페이지를 꼼꼼히 읽어보면 꼭 아, 이 부분 때문이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곳이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종이를 펴기만 할 뿐 어떠한 표시도 남기지 않는다. 대신 이번에 줄을 그은 곳은 이런 부분들.
데미안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뉴욕 사람들은 바쁜 게 아니야. 자기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을 뿐이지.” (32)
보기에 예쁘기는 하지만 원래 있던 곳, 그러니까 네덜란드의 만년 들판이나 노스캘리포니아의 비탈진 계곡에서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걸까 싶었다. 밸런타인데이나 생일이나 기념일에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위안을 얻으려고 꼭 푸들처럼 단정하게 다듬어 유리 꽃병에 눌러 담아야 하는 걸까 싶었다. 꽃다발을 보면 수지는 길모퉁이 문방구에서 파는 홀마크 카드가 생각났다. 가격이 미리 찍혀 있고 오래 전부터 용도가 정해진 카드. 꽃이 제구실을 한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 장례식장에서 보았을 때뿐이었다. (49)
리버사이드파크 벤치에서 첫 데이트를 했을 때 데미안은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게서 대답을 찾지 마. 그래 봐야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지지는 않을 테니까.”
수지는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알 수가 없었다. (62)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은 도피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격렬했던 이유는 흥분 때문이 아니라 거세게 밀려드는 슬픔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끝에서 외톨이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77)
: 다시 읽는다면 여긴 종이를 펼친 채 뒤돌아보지 않을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한밤중에 일어나 담배를 찾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하지만 세상이 까마득한 새벽 4시에는 구원을 청할 데가 없다. (…) [마이클]도 외로움을 느낄지, 외로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110)
: 최근에 담배 한 갑을 사긴 했지만 나는 거기에서 딱 한 개피만 꺼내 불을 붙여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담배에 대해 얘기하는 수지의 말투에는 왠지 낯익은 구석이 있다. 그보다도 새벽 4시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매일같이 새벽 4시를 살아내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없는데 잠은 오지 않는 그런 시간, 연락할 곳도 할 수 있는 곳도 없고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을 것만 같은 진공 같은 어둠. 왜 잠들어야 하는지, 그 의미마저 흐릿해진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는 새벽 4시는 정말로 까마득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새벽 4시의 이야기는-
하지만 지금 그녀는 얼어붙은 듯이 앉아서 이 시간이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라디에이터 소리,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열차의 엔진 소리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똑똑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곳에서 오 년을 지내는 동안 어느덧 익숙해진 라디에이터 소리는 겨울밤이면 그녀의 마음을 달래준다. 쉭쉭대는 소음이야말로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신호, 집과 가장 잘 어울리는 평화다. 집 안으로 천천히 온기가 퍼지고 수지는 그녀가 탐하는 게 마이클인지, 몸으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인지, 양손으로 팔을 감고 안아주는 포옹인지, 그녀의 목을 간질이는 숨결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녀는 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몸 속 깊숙이 들어와 집요하게 흔들며 그녀의 모든 기억을 지워 주는 사람의 품에 안겨 곯아떨어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마이클은 그녀를 그런 식으로 대한 적이 없다. 아침이면 그는 항상 회의장으로, 공항으로, 가족 곁으로 서둘러 달려 나간다. 아주 가끔은 그녀 옆에 누울 때도 있지만 최후의 통첩처럼 입을 맞추고 벽을 향해 돌아눕는다. 두 사람은 잔잔한 애정이 흐르는 사이가 아니다. 서로에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다. 마이클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그녀가 오히려 떠나 버릴 것이다. 그녀는 마이클 옆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꼭 잡아 주던 다른 남자의 손을 떠올린다. 눈은 감고 있는지, 입술은 좀 전에 환희를 느꼈을 때처럼 웃고 있는지, 손가락은 아쉽다는 듯 그를 붙잡고 있는지, 몇 번씩이나 떠나려 해도, 죽어 가는 담배를 들고 외로이 앉아 다른 남자의 기억을 떨쳐 버리려는 듯 마이클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새벽 4시의 이 아파트만큼이나 멀리 달아나려 해도 놓아주지 않을 사람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지, 일어나고 또 일어나 확인할 때까지 편히 쉬기에 알맞은 각도와 자리를 찾았는지 확인하려는 듯 그녀를 절대 놓지 않았던 다른 남자의 손을 떠올린다.
새벽 4시는 기억 속의 시각이다. (118)
정적은 모든 것을 감추어 준다. 라디에이터는 쉭쉭대는 소리를 멈추었다. 완벽하게 고요한 밤이다. 조금 있으면 동이 틀 것이다. 시커먼 하늘 위로 벌써 희미한 빛이 번지고 있다. 내일이 벌써 다가오고 있다. 귀를 찢는 듯한 전화벨 소리가, 필사적으로 울리는 네 번의 벨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어쩌면 그녀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를 맞으며 바다와 동행하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탐하는, 어둠 속에 누운 채로 살아 있는 척하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시각이니까. (122)
: -여기까지.
그녀가 욕망이라는 단어의 뜻을 깨달은 것은 그의 몸을 자신의 몸만큼이나 잘 알게 된 뒤였다. (…) 유혹한 쪽은 분명 수지였지만 침묵으로 부추긴 쪽은 데미안이었다. 그는 그녀의 제안을 듣고 웃어 넘기거나 불쑥 입을 열어 그녀의 작전을 교란시키는 법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134)
[케일럽과] 마주앉은 수지는 이 아파트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깨닫는다. 그녀와 함께 앉아 주고 그녀의 목소리와 숨결과 부엌을 돌아다니는 조용한 발걸음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 그녀의 아파트에 손님이 찾아오기는 참 오랜만의 일이다. 그녀는 혼자 지내는 데 거의 완벽하게 익숙해졌다. (160)
: 이 부분을 옮겨 적다 보니, 왜 이젠 옛날에 접어놓은 글귀들이 내게 와닿지 않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새로 줄을 그은 이유도.
수지는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케일럽이 안쓰럽다. (167)
두 사람은 학창 시절에 커피 중독자나 다름없었다. 3학년 때는 헝가리 페이스트리 전문점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더블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18세기 소설 과목의 리포트를 썼다. 수지와 젠은 둘 다 전공이 문학이었다. 그 당시였다면 무카페인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카페인이 진정한 영혼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그렇게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다. 세월이 흘러서일 것이다. 둘이 함께 나이를 먹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253)
: 왜 이 부분에 줄을 그었는지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도 또렷하게 기억하겠지. 그리고 언제든 이 글귀를 볼 때면, 마지막줄의 그녀처럼 느낄 수 있기를.
그녀는 보리차를 좋아한다고 덧붙이려다 보리차를 마지막으로 마신 지 몇 년이 지났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엄마는 보리차를 끓여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물 대신 내놓곤 했다. 하지만 보리차는 물과 맛이 전혀 달랐다. 색깔은 밝은 갈색이었다. 그리고 가을에 거둔 옥수수 냄새가 났다. 그녀는 어느 날부터인가 보리차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원피스, 날마다 바르던 장밋빛 립스틱, 없이는 못 사는 줄 알았던 보리차를 기억 저편에 묻고 지내다가 어느 날, 집과는 멀리 떨어진 황량하고 텅 빈 아파트에서 그녀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물을 마시겠소, 보리차를 마시겠소?”라고 하는 말을 들은 뒤에야 갑자기 오랫동안 보리차를 마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다니.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한때는 없으면 안 되는 줄 알았던 물건이 사라진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니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그보다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랑은 책임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381)
: 나처럼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자주 부딪치게 되는 놀라움이다. 내가 그냥 기억력이 나쁜 걸까, 대단히 멍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지독히도 자기 중심적이라 지금 당장의 나 말고는 아무 것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살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곤 한다.
수지는 드디어 누군가 그레이스의 행방을 걱정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빈자리처럼 슬픈 것은 없다. (416)
수지는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시절, 케일럽이 항상 입고 다녔던 하늘 빛 볼링 재킷을 떠올린다. 재킷의 오른쪽 주머니에는 ‘빈센트’라는 이름이 수놓여 있었다. 그런데 수지는 예전 남자 친구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한 사람을 알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하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비밀을 감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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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2008)
창비 2012
엄마가 어쩌고 하는 책은 그냥 읽기 싫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광고를 해댈 때 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읽기 시작해서는 결국 사서 후딱 다 읽어버렸다.
그들은 너의 엄마로 추정되는 한 늙은 여인이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 걸, 간혹 주저앉아 있는 걸, 에스컬레이터 앞에 하염없이 서 있는 걸 보았다고 했다. 너의 엄마인 듯한 한 늙은 여인이 오래 역에 앉아 있다가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는 걸 봤다는 이도 있었다. 너의 엄마가 어디론가 사라진 그 밤에 너는 일행들과 밤택시를 타고 북경의 휘황한 먹자거리에서 나가 붉은 불빛 아래서 오십육도쯤 되는 중국술을 맛보며 붉은 기름에 볶은 뜨거운 게요리를 먹고 있었던 거다. (19)
: 앞에서부터 주욱 이어지는 이 단호한 흐름이 마음에 들어서 체크해놨던 부분.
엄마에게 너란 존재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엄마가 네 앞에서 집을 치울 때였다. (26)
: 얼마 전 부산집에 갔을 때, 나는 부산스럽게 뒷정리를 해대는 나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생각했다. 혼자 지내는 서울집이 이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이젠 집구석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일까? 이 추측은 반쯤만 맞는 것 같았다. 그보다도, 나는 가족 앞에 철저하게 손님으로 있었다. 언제나 식탁을 공유하는 이들과 달리 나는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나의 특별한 방문을 알리고 싶어 안달했다. 나 여기 왔어요 생색을 내며 먹지 않는 밥상에 앉아 평소에는 먹지 않을 네 번째 다섯 번째 끼니를 주워먹고,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뒷정리를 했다. 마치 누군가의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았을 때처럼. 네가 이제 나이를 먹어 엄마와 말이 통하니까 참 좋구나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하지만 난 이 대화가 이 공간이 불편해요, 하는 생각을 품었다. 물론 이 묘한 거리감 또한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나는 뒷정리를 하면서 내가 있을 곳을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불편하게, 불편하게. 집을 떠나 어딘가에 묵을 때면 꼭 필요한 얼마간의 적응 시간이 있다. 나만의 동선을 만드는 그 적응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결국은 그곳에 기어이 섞여 들어가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손이 닿아야 비로소 참아줄 만해지는 그 공간,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메워진 우물 위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작은 문 안으로 들어서며 엄마! 하고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막 기울기 시작한 가을볕이 서향집 마당에 가득 차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살폈지만 거실에도 방에도 엄마는 없었다. 집 안은 어수선했다. 식탁 위 물병 뚜껑은 열려 있고 물컵은 개수대에 놓여 있었다. 거실 바닥에 깔린 돗자리엔 걸레바구니가 엎어져 있고 소파엔 아버지가 벗어놓은 듯 때묻은 셔츠가 팔을 벌리고 걸려 있었다. 서향집인 탓에 사위어가는 중인데도 강한 빛이 빈 공간에 스며 있었다. 엄마! 텅 비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는 엄마! 하고 한번 더 불러보았다. (28)
: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없지, 하는 마음으로 불러보는 큰딸과는 다르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이 있다. 언제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 빈 집을 향해 엄마! 하고 부른 적이 왕왕 있었다. 대체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차피 분명 매번 조금씩 달랐겠지만. 답이 돌아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에 매번 실망했을 리는 없다. 때로는 답이 돌아오지 않아 안도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내 방구석이 텅 비어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비어있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얘기가 재미있었다구? 너는 마음이 짠해졌다. 너의 얘기가 재미있는 게 아니라 점자도서관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네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깨달았다. 도시로 나온 뒤의 너는 어땠는가. 너는 엄마에게 늘 화를 내듯 말했다. 엄마가 뭘 아느냐고 대들듯이 말했다. 엄마가 돼서 왜 그래? 책망하듯이 말했다. 엄마가 알아서 뭐 할 건데? 무시하듯 말했다. 엄마가 너를 혼낼 힘이 없어진 걸 안 뒤의 너는, 엄마가 거긴 왜 갔느냐고 물으면 일이 있어서요, 짤막하게 대답했다. 다른 나라에서 책이 번역되었을 때나 혹은 세미나가 있어서 비행기를 타게 됐을 때도 거기 왜 가느냐? 고 물으면 그냥 일이 있어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엄마는 비행기 좀 그만 타라고 했다. 사고가 나면 이백명씩 죽는다는데 그걸 왜 타느냐고. 일이 있어서 타는 거예요 하면 너는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 게냐? 고 물었다. 그러네, 엄마, 너는 시무룩하게 대꾸하면 그만이었다.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이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런데 엄마는 점자를 보고 네가 느낀 막막함과 사백여명이나 되는 앞 못 보는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을 때의 낭패스러움에 대해 얘기하자 남아 있던 두통을 씻어낸 듯이 귀기울여 듣는 것이었다. (45)
: 나는 때로 엄마의 전화를 피했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받지 않으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누구나 느껴본 적 있을 그런 류의 죄책감에, 이 부분에서 잠시 멈추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변할 생각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았을 수많은 이들 중 누군가는, 변했을까?
– 예전엔 안 그랬는데 너는 냉정한 사람이 되었구나. 어미가 그리 전화를 끊었으면 뭐라고 다시 전화를 해야 옳지 그리 뻗댈 수가 있냐?
뻗댄 건 아니었다. 그 일을 그리 오래 생각하고 있을 만큼 너는 한가하지 않았다. 문득 노여워하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 엄마가 떠올라 전화를 해봐야지, 생각했다가도 또다른 일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뒤로 밀리곤 했다. (62)
– 이게 뭐냐?
– 지난 12월 31일에 새해를 맞이하며 글 쓰는 거만 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재미로 적어본 거야. 앞으로 십년 동안은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이거나 하고 싶은 것들. 근데 내 어떤 계획에도 엄마와 무엇을 함께 하겠다는 건 없더라. 쓸 때는 몰랐어. 엄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보니 그렇더라구.
여동생의 눈이 물기로 반짝였다. (132)
니 고모가 딸내미 저리 두다간 빨갱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도 나는 니가 하는 말과 너의 행동을 자유롭게 두었고나. 오빠들에겐 그러지 못했어. 타이르고 야단쳤고나. 네 작은 오빠가 전경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허리를 다쳤을 때 소금을 달궈 허리에 얹어주다가 계속 이런 식이면 엄마가 죽어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했고나. 그러면서도 네 오빠가 무식한 엄마라고 생각할까봐 가슴 졸이기도 했재. 젊으니까 젊은 대로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었을 텐데 나는 힘껏 가로막았재. 너한테는 안 그랬다. 니가 변화시켜놓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어도 널 막지는 않았어. (218)
내가 가끔 당신에게 책에서 읽었다며 해준 이야기들은 내가 읽어서 해준 이야기들이 아니요이. 사실은 내 딸한테 물어서 해준 것들이오. 스페인인가 하는 나라에는 산티아고라는 곳이 있다 했던 거. 당신은 그 이름을 외우는 것도 힘들어해서 거기 어디라고 했소? 자꾸 물었소이. 거기에 순례자의 길이 있는데 삼십삼일 동안 걸어가는 길이라 합디다. 내 딸아인 거길 가고 싶어했소이. 가끔 내게 그곳 얘기를 해주곤 했는데 마치 그곳을 내가 가고 싶은 것처럼 당신에게 말한 적도 있었네. 그랬더니 당신이 그랬지라오. 그리 가고 싶으면 언젠가 함께 가보자고 말이오. 어딘가를 함께 가보자고 하는 말을 당신에게서 듣고 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소이. 내가 당신을 다시 찾아가지 않은 게 그날 이후부턴가보오. 사실은 나는 그곳이 어딘 줄도 모르고 가고 싶지도 않으요. 지나간 시간에 함께한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테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테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면서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디다. 무슨 말이 그리 어려운지. 당신은 알아 듣겠소?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옛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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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1890)
이선주 옮김
황금가지 2004
“포즈를 취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야말로 포즈일 뿐이고, 내가 알기론 그것이 가장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포즈일세.” (16, 헨리)
어쩌면 그리스 시대의 이상보다 더 아름답고 풍요한 무엇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우리 중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조차도 자기 자신을 두려워해. 손발이 잘린 야수가 자기 부정의 형태로 비극적 부활을 하며 우리의 삶을 훼손하고 있어. 우리는 우리가 했던 거부 때문에 처벌받고 있는 거야. 우리가 교살하려고 했던 충동은 살아남아 우리의 정신 속에서 새끼를 치고 독을 퍼뜨린다네. 육체는 한 번 죄를 지을 뿐, 그 죄는 사라지지. 왜냐하면 행동은 정화의 한 형태니까. 남는 것은 쾌락의 기억, 또는 회한이라는 사치뿐이야. 유혹을 사라지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유혹에 지는 것. 저항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그것이 스스로에게 금지한 것들을 향한 갈망으로 병들 것이며, 영혼의 괴물 같은 법칙이 끔찍하고 불법적이라고 규정한 것들을 향한 욕망으로 병들 거야. (35, 헨리)
“영혼은 관능으로만 치유될 수 있으니까. 관능이 영혼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 것처럼.” (38, 헨리)
한 주제에 대해 말하면서 그 주제를 모두 소진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그는 청중이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63, 토머스 버든 경에 대해)
“젊은 시절에 저지른 큰 실수 중에 기억하는 것이 있나요, 공작부인?” (...) “그렇다면 그 실수들을 다시 저지르세요.” 그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젊음을 다시 찾고 싶다면, 젊었을 때의 바보짓들을 다시 저지르기만 하면 됩니다.” (...) “그것이 인생의 위대한 비밀 중 하나예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비굴한 상식 때문에 죽어 가고, 우리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실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한참 늦은 다음이지요.” (66-7, 헨리)
“친구여, 삶에서 한 번만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천박한 사람들일세. 그들이 변함없는 사랑이라고, 변치 않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 나는 그것을 관습의 권태 또는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부르겠어. 감정적인 삶에서 변치 않는 마음은 말하자면 지적인 삶에서의 일관성 같은 것일세. 단순히 실패의 고백일 뿐인 것이지. 변함없는 사랑이라고! 언젠가 그걸 치밀히 분석해야 할 것이야. (...)” (78, 헨리)
헨리 경이 웃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길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두렵기 때문일세. 낙천주의의 근거는 절절한 공포감이야.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 관대하다고 믿는 건,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미덕을 소유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야. 잔액보다 큰 액수를 인출할지도 모를 때 우리는 은행 직원을 칭찬하고, 혹시 나는 털지 않겠지 하는 희망에 노상강도에게서도 좋은 면을 찾아낸다네. 내가 했던 말은 모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네. 나는 낙천주의를 그 이상 경멸할 수 없어. 파멸한 인생이라면, 성장이 멈춘 삶만큼 파멸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 본성을 훼손하고 싶다면, 그 모양을 바꾸기만 하면 되네. (...)” (114, 헨리)
우리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감정에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무엇인가가 있는 법이다. (133, 시빌 베인을 향한 그레이의 반응)
자기를 책망하는 회한에는 일종의 사치스러운 쾌락이 있다. 자신을 비난할 때, 우리는 다른 그 누구에게도 우리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느낀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는 것은 신부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죄의 고백 자체이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도리언은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느꼈다. (144)
그림 속 얼굴에는 극도의 구토와 혐오감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가 보고 있는 얼굴은 다름 아닌 도리언 그레이의 얼굴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도리언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추악하게 훼손하고 있는 그것은 아직 도리언을 완전히 삼키지 않은 상태였다. 듬성듬성한 머리칼이지만 아직 거기엔 도리언의 금발 고수머리가 남아 있었고 육감적인 입술 위에는 아직 진홍빛이 남아 있었다. 푹 꺼지고 우둔하게 변해 버린 눈이었지만 눈동자엔 아직 원래의 푸른빛이 가졌던 사랑스러움이 남아 있었고 깎은 듯 한 콧방울과 유연한 목에 귀족적인 윤곽이 아직은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 그림 속 인물은 여전히 도리언이었다. 하지만 누가 이런 짓을 했나? (224, 도리언의 초상을 본 바질의 반응; emphasis added)
다른 사람의 실수와 착오를 대신 짊어지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인간에겐 각자 살아야 하는 자기의 삶이 있고,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대가 역시 각자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 가엾은 것은, 한 번의 잘못 때문에 여러 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뿐. 진실로 우리는 거듭 대가를 치르고 또 치른다. 인간과 거래하면서 운명의 여신은 결코 장부를 덮지 않는다. (271, 할렘가 같은 곳에서 나오면서 싱글턴의 망가진 삶을 보고 진정 자기 때문인지 고민하는 도리언) -> 마치 한 번의 선택으로 읽히는 것은 지금의 나의 처지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요? 로맨스는 반복에 의해 살고, 반복은 단순한 취향을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게다가 사랑을 할 때마다 그 사랑은 유일무이한 사랑이지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사랑입니다. 대상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라는 정열의 유일성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유일성이 더욱 극대화될 뿐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기껏해야 한 번의 위대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고, 이 경험을 가능한 자주 다시 해 보는 데에 인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282) -아 진짜 궤변인데 말 잘한다.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녀의 치아는 붉디붉은 과일에 박힌 새하얀 씨앗 같았다. (295, 헨리 누이를 향한. 좋은 표현)
“그렇다고 확신하나, 도리언?”
“그래요.”
“하! 그렇다면 그건 환상일세. 사람이 전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는 것 중에 진실로 옳은 것은 없네. 그것이 ‘믿음’이란 것의 숙명이고 ‘로맨스’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일세. (...)” (307, 헨리)
늙은 사람의 비극은 늙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은 늙었음에도 여전히 젊다는 데에 있어. 때로 나는 나의 무구한 솔직함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네. (308, 헨리)
“이보게, 자네 진정 이제 설교를 하려 드는군. 좀 있으면 개종한 사람의 열정을 가지고 신앙 부흥을 외치며 돌아다니겠어. 이제 자네에겐 지겨워진 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짓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말이야. (...) 예술은 인간의 행동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아. 예술은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을 파괴할 뿐이야. 아름다운 불모성, 그게 예술의 특징이야. (...)” (311, 헨리)
그가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죄악이 그때그때 확실하고 신속한 벌을 내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정화를 가능케 했다. 가장 공정한 신에게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가 아니라 ‘우리 죄인을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 (313, 영원히 늙지 않기를 기도한 것을 후회하며, 도리언)
젊음이란 게 기껏해야 무엇이던가? 파르께하니 설익은 시간, 얕은 감정과 병적인 생각의 시간이다. 그는 왜 청춘의 제복을 걸치려 했던 것일까? 청춘은 다만 그를 망가뜨렸을 뿐이다. (314, 도리언의 후회)
허영심이라고? 호기심이라고? 위선이라고? 개심하겠다는 그의 결심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나? 그것 말고 다른 것도 있었다. 최소한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누가 알랴......? 아니다. 저 세가지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었다. 허영심 때문에 그는 그녀를 타락의 길로 끌고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위선으로 그는 선행의 가면을 썼다. 호기심으로 자기 부정을 시험해 본 것이다. 그는 이제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317, 도리언이 헤티 머튼을 생각하며)
초상은 그에게 양심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그의 양심이었다. 그 양심을 이제 그는 파괴할 작정이었다. (318)
그리스 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1942)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5)
「시장하지 않으시다…… 하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들지 않았어요?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나는 당시 육신의 쾌락은 업신여기고 있었다. 가능하면, 먹어도 부끄러운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먹어치웠다. (54)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저런 이기주의!」
내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어요, 두목, 사실이 그러니까. 내가 콩을 먹으면 콩을 말해요. 내가 조르바니까 조르바같이 말하는 거요.」 (86-87)
「왜 웃지 않소? 왜 그런 눈으로 보고 계시오? 나라는 놈은 원래가 이렇게 생겨 먹었어요. 내 속에는 소리치는 악마가 한 마리 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면 이놈이 소리칩니다. <춤춰!> 그러면 나는 춤을 춥니다. 그러면 숨통이 좀 뚫리지요. 칼키디체에서 우리 꼬마 디미트라키가 죽었을 땝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조금 전처럼 춤을 추었지요. 친척과 친구들이 시체 앞에서 춤추는 나를 말렸어요. <조르바가 돌아 버렸다! 조르바가 미쳐 버렸다.> 그 사람들이 웅성거리더군요. 하지만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정말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너무 슬퍼서죠. 그게 내 첫아들인데다, 세 살 때 죽어 나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지요. 두목, 이제 내 말 이해할 수 있겠지요? 젠장, 아니라면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건가?」 (115)
공자 가라사대,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던가. 지당한 말씀! (142)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되기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에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지난 일을 생각했다. 허공 중에서 바람을 받은 한 조각 구름처럼 내 인생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갔다.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모습을 바꾸어, 차례로 백조가 되고, 개가 되고, 악마가 되고, 전갈이 되고, 원숭이가 되었다. 구름이란 영원히 흩날리고 찢기는 존재…… 구름은 하늘의 바람과 무지개에 쫓겨다니는 존재가 아닌가. (188)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무 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새해 아침을 생각했다. 그 불쌍한 나비라도 내 앞에서 몸을 뒤척이며 내가 갈 길을 일러준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 (190)
나는 머리 위로 손을 뻗치고 서가에서 좋아서 갖고 다니던 책 한 권을 뽑아 내었다. 말라르메의 시집이었다. 천천히 마음 내키는 대로 읽었다. 읽다가 책을 닫았다가 다시 펼쳤다. 그러다 나는 결국 그 책을 놓고 말았다. 그의 시는 핏기도 없고 냄새도 없고 인간의 본질을 비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의 시가 창백한 진공 속의 공허한 언어로 보였던 것이다. 박테리아 한 마리 없는 완벽한 증류수였지만 영양분 역시 하나 없는 물 같은 것, 요컨대 생명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창조의 섬광을 상실한 종교에서 제신은 결국 인간의 고독과 벽면을 치장하는 시적 모티프나 예배 용품으로 전락했다. 말라르메의 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지와 씨앗을 품은 심장의 열화 같은 호흡이 완벽한 지적 놀음, 교묘하면서도 덧없는 구조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209)
사면을 내려가면서 조르바가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에서 가벼운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
「두목, 봤어요?」
「……」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212)
윗주머니에 넣은 또 한 통의 편지가 피부로 느껴져 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견딜 수 없이 달콤한, 뜸들이기는 그것으로 넉넉했다. (218)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344)
「……우리가 꼭 비둘기 한 쌍처럼, 여기 죽치고 앉아 어쩌자는 겁니까. 가서 춥시다. 먹어 치운 양에게 미안하지도 않소? 그럭저럭 방귀로 빠지게 할 셈이오? 갑시다, 가요. 가서 방귀가 아닌 노래나 춤이 되게 합시다. 조르바는 다시 태어났도다!」(362)
내 존재의 심연에서 전날 밤에 느낀 즐거움이 솟아올라 필경은 흙으로 빚어졌을 내 육체라는 대지에 물을 대어 주는 것 같았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노라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 다소 변화무쌍하고 투명하고 더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소 과장되어 있고 긴 여행으로 지치고 물려받은 짐에 짓눌려 있기는 하나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368)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 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얼마 후 그는 말을 계속했다.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뼈다귀에 가죽을 입힌 이 조르바 말입니다)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늙은것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후략)」(420-421)
(이 사람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한다. 잘 보아 두어야지,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조르바에게 시선을 돌리지 말아야지!)
나는 그의 가슴에 뛰어들어 울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웃어서 내 감정을 숨기고 싶었으나 그렇게도 안 되었다. 목구멍에 응어리가 걸려 있었다.
나는 먹이를 채는 새처럼 목을 뽑고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만났다가는 헤어지면서도 우리의 눈은 하릴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 모습, 몸매와 몸짓을 기억하려고 하니…… 부질없어라, 몇 년만 흘러도 그 눈이 검었던지 푸르렀던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을.) (460-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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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산문집 (2005-2008)
전은경 옮김
푸른숲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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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CD를 사서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새로이)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한 곡이 있어 링크한다.
The Beatles - Nowhere Man
어쩌라고! 읽다보면 어쩌라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현대사회(는 좀 거창한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간에 '지금 현재')를 비꼬지만 그러면서도 신기하게도 그의 태도 자체는 별로 과하지 않다. 아주 특별한 이야기 아주 대단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를 다양한 방식으로 적인데 그 성실한 관찰(본인은 아니랬지만)과 재치있는 언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다림을 기다리며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다리기를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릴까?
아마 기다림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한 밤만 더 자면 오는 생일 기다리기, 크리스마스 기다리기, 그리고 드디어 12월 24일 당일이 되면, 이제 선물을 뜯어도 된다는 허락을 기다리는 그 긴 시간. 유치원 입학 기다리기, 학교 입학 기다리기, 잉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 기다리기, 열두 살이 되기를, 열여섯 살, 열여덟 살, 스무 살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그리고 마침내 아흔다섯 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기다림. (15쪽)
우리는 왜 기다리는 걸까? 왜 기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복도에 서서 기다릴까? 아마 우리가 기다림만큼 고통스럽게 배운 건 없기 때문일 테지. 유치원과 학교 입학 기다리기, 졸업 기다리기, 은퇴 기다리기, 그리고 어쩌면 기다림조차 기다리기. 병원에 약간 일찍 도착해서 그 앞을 오가며 기다리기, 이 기다림이 끝나면 대기실에서 또 기다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림의 기다림을 기다리기. (18쪽)
기다림으로 채워도 좋을 시간을 너무도 빽빽하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많이 부여받았기 때문에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나는 국민학생 언니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럼 도시락을 싸가서 친구들과 노나먹을 수 있을 것이라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급식세대가 되었으므로 그런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실에 많이 서운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기다림만이 회자될 뿐이다. 나는 여섯살 때부터 월간 만화잡지를 읽었다. 소녀만화 잡지 중에 '밍크'는 간간이 보는 정도였고 '나나'를 애독했는데 지금은 폐간되고 없다. 나는 매 월 다음 달이 오기를 기다려 '나나'를 샀다. 여덟살 때 반여동으로 이사 온 다음에는 도서대여점이라는 신세계를 만나 동네 책방 주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으며 단행본들을 섭렵했는데 그때도 매일같이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책방에 언제쯤 새책이 들어오는지를 꿰고 있을 뿐더러 아주머니께서 날 위해 책을 빼 놔 줄 수도 있는 뭐 그런 단골 손님이었다. 일곱살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보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의 안경을 동경하여 안경을 쓸 날을 기다렸다.
지난 학기 사진 수업을 하면서 Anna를 모델로 포토스토리 촬영을 했다. 그때 알게 된 재밌는 (국적 불명의) 크리스마스 풍습이 생각났다. 일단 영국에서 축하하는 건 확실하니 영국에서는, 으로 문장을 시작해도 괜찮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Advent Calender라고 부르는 초콜릿 든 장난감(?)을 판다고 한다. Anna가 Waitrose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쌓아놓는데 금방 동이 나 버린다고. 간단히 말하면 12월 달력이 찍혀 있는 초콜릿 통인데 달력에 찍힌 날이 되면 그 칸을 열어서 안에 있는 초콜릿을 먹는 것이다. Anna도 집에서 보내준 걸 들고서 12월이 다가오니 이제 이걸 시작할 수 있다며 마구 들떠 있었다. 영국에서 보낸 건데 그걸 먹으려고 며칠씩이나 기다리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일찍부터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나보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니 며칠 앞으로 다가온 발렌타인 데이 생각이 난다. 스케줄러에 발렌타인데이 하트뿅뿅 이런 거 표시해놓을 생각이 전혀 안 드는 올해의 발렌타인 데이. 그날이 발렌타인 데이인지 어떤지도 모르고 미리 풀코스 데이트 약속을 잡아놓았으니 초콜릿을 사긴 할테지만 참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데이트는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내가 진짜로 선물하고 싶은 건 Pedro Javier Gonzalez의 비틀즈 노래 기타연주 음반인데 눈에 보이는 음반점마다 확인해봐도 모조리 장기품절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2010년 화이트데이에 B가 준 '손수 만든 초콜릿' 선물 상자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적당한 크기 무난한 색상의 정사각형 통이어서 약상자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그때 받은 초콜릿은 고맙다며 기쁘다며 다 먹긴 했지만 참으로 뜨악스러웠다. 정말 미안하다. 그걸 만들고 있었을 정성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지만 나는 애인에게 손수 만든 초콜릿을 선물하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친구한테 받는 것은 또 괜찮다. 모르겠다 인간이 왜 이리 꼬였는지. 어쨌거나, 내게도 기다려지는 몇번의 발렌타인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발렌타인 데이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때 정사각형 선물 상자를 썼었더랬는데.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하늘색 정사각형 상자에 복슬복슬한 포장재를 채우고 개별포장된 동그란 초콜릿들을 넣었던 것 같다. 발렌타인 데이까지 포장을 고민하며 기다리고, 또 당일에는 그 초콜릿을 건네줄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 하루종일 기다린 끝에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초콜릿을 그 아이가 입고 있던 외투 주머니에 넣어 주었는데 멋들어진 말 한마디 못 했던 것 같다. 그 후 몇번의 (대충 세어본 결과 적어도 대여섯번) 발렌타인 데이들을 기다려본 것 같은데 제일 처음이랍시고 이것만 이렇게 강렬하다니 다른 날들이 섭하겠다.
우리가 아직 기다릴 수 있던 시절에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면 기차에서 글을 쓰기가 불가능해진다. 이때의 기차는 나에게도 조바심치는 장소가 되고, 기다림 자체가 힘겨워진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예를 들면 베를린—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언제 도착하는지 —17시 24분, 베를린 도착—상당히 정확하게 예고되는데도, 아니 사실은 그래서 더 끔찍하다. 예고는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예고는 기다림을 방해하니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42쪽)
글쎄,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지 않고 조바심내는 그 순간이 사실은 더 '기다림을 기다리는' 상태에 근접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타고 한 바퀴 돈다고 한들, 그 지하철의 풍경을 볼 수는 없을테니까. 공간이 아니라 나의 일로 시간이 귀속되면 그건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니기도 하다. 알고서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태도가 문제일 뿐. 그러고보면 정시 출발 정시 도착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이지젯은 참으로 순수한 기다림을 내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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