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해당되는 글 3건

* 잠들기 전 침대에서 잠시 노트북을 들고 앉았다. 뭔가를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시작을 해야지. 스마트폰을 거실에 두는 건 아무래도 ASMR이 듣고 싶어서 못했지만. 

*나는 중독에 취약한 인간이다. 정말. 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잠시 잊는 거 말고는 아직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딱히 중독을 잊기 위해 다른 중독을 굳이 찾는 건 아니지만, 하나의 중독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좀 벗어난 것 같으면 어김없이 다른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더라. 그래도 나 스스로에게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지점은 중독이 나를 통째로 좀먹게 두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꽤 위태로운 선까지는 갈지 몰라도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전에 나를 관찰하고 스스로를 구렁텅이에서 꺼내기 위한 작은 계획들을 짠다. 스마트폰 중독은 덩치가 거대하고 접근성과 접근 필요성이 너무 높아서 알콜 중독보다도 벗어나기 힘들 것 같지만... 스마트폰 중독 자체를 피할 수 없다면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서비스 중에서 관계적 성격이 강하고 새 글이 자주 올라오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내 일상의 침투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서비스의 사용을 절제하고, 블로그처럼 그나마 호흡이 길고 관계망이 성긴 서비스 이용분을 늘리는 것으로 조율해보려고 한다. 

* 오늘 이직 전 휴가를 즐기는 J를 만났다. J는 왠지 여러 번 반복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이 정돈된 어조로, 오래 고민한 결론과 다짐에 대해 내게 설명해주었다. 정말이지 낡은 클리셰지만, 그에게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는, 내가 그라면 이러할 것이라고 으레 예상하는 모습과 꼭 같이, 존재만으로 당당했고 더욱 다부져져 있었다. 지금 이 선택을 내린 이유는 지난 5년의 시간이 지금 자신 앞에 몇몇 선택지를 열어주었듯 그렇게 해야 5년 후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더 많은, 더 나은 선택지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확고하게 말하는 그는, 존재만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 단단함에는 시간을 쪼개어 했던 깊은 고민과, 여러 사람의 의견을 고루 듣는 시간과, 일단 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노력과, 그렇게 쌓아간 자신에 대한 신뢰가 녹아 있었다. 참 좋은 점심이었다. 나도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런 태도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올해 단기적이나마 그런 태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목표를 세워서 다행이다. 

* 2010년부터 쭉 폰에서 폰으로 백업해가며 쌓아온 모든 데이터를 극적으로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꽤 많이 찾았다. 다행히도 일주일 정도 분의 사진 말고는 모든 사진이 일단 컴퓨터에는 백업되어 있었고, 잃어버리면 치명적이었을 연락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백업이 되어 있었는지 새 폰에 그냥 들어와 있었고 (신이든 엔지니어든 누구든 감사합니다),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다 날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지니 앱은 "자주 들은 음악" 목록에서 전부 구제할 수 있었으며 애플뮤직 앱은 그냥 내가 로그인을 안 해서 안 떴을 뿐이었다. 구입한 앱 목록도 살아 있어서 그대로 다운만 받으면 되었고 팟캐스트도 괜찮은 것들은 다 그냥 기억이 났다. 결국 잃어버린 것은 1) 앨범에 쌓여있던 방대한 양의 사진 (...이게 없어질 줄 알았더라면 256기가 안 사는 건데 말이다...), 2) Notes앱에 기록하던 온갖 자잘한 정보들 (읽고 싶은 책, 가고 싶은 음식점, 주소록, 계좌번호, 기억하고 싶은 표현, 일기 찌끄래기 등), 3)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반 대화방은 주기적으로 비워주기 때문에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거 말고... 필요할 때 검색해서 쓰던 정보들이 잔뜩!), 4) 과거의 문자메시지들 (런던 시절의 문자,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온 긴 문자들, 마라톤 기록 등), 이 정도가 전부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잃은 걸 어쩌겠는가. 모두 없어져서 아쉽긴 하지만, 사실 뻔히 다 알고 있는 내용이면서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다시 열어서 들여다보곤 하느라 시간을 많이 낭비했던 주범들이기도 하다. 이 기회에 좀 더 옛날 같은 방식으로 살아 보려 하고 있다. 정말 의미 있지 않은 사진은 굳이 찍지 않고,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면 좋겠는데 아직 유투브를 하고 있...긴하다... 뭐 한번에 중독이 한번에 고쳐지면 그게 중독이냐며...


* 오늘 넋두리의 배경음악은 아래 세 곡. 

James Bay - Hold Back the River: 뭔가 굉장히 그리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느낌인데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나...? 잘 모르겠네... 어렴-풋이 미카가 생각남. 

Russian Red - The Sun the Trees: 이건 뭔가... Angus & Julia Stone을 연상시키는... 

Death Cab for Cutie - The Ice Is Getting Thinner: 이건 Arco... 'ㅅ' 

소리 중독자처럼 음악을 주구장창 듣기는 하는데 스트리밍 앱으로 듣다보니 제목도 가수도 기억이 안 나고 그랬더니 결국 취향이 확실히 있긴 하면서 그걸 설명할 길을 꾸준히 잃어가는 것 같아서 이젠 좀 생각하면서 들어볼란다. 그럼 이만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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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 돌아온 지 2주가 다 되어 간다. 2주 밖에 안 되었다니, 라고 생각할 만큼 파리 생활이 멀게 느껴진다. 그 2주 간은 고급 백수 생활을 마음껏 즐겼다.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고, 깨어 있는 동안에도 별달리 가치 있는 일은 하지 않은 채 청소에 매진하는 생활. 마치 이곳 공덕집을 떠난 적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리는 커녕 거제에도 간 적이 없고, 매일 종각으로 출근한 적도 없고, 안암에도 산 적이 없으며 부산에서 자란 적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이렇게 적고 보니 그건 어딘가 넋이 나가거나 뿌리를 잊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파리 생활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니, 생활을 유지하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 그 사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를 염려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Y와의 짧은 점심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Y는 내게 “감정을 셧다운 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쏟았다. 역시 만나는 사람에게 “잘 조율되어 있는” 그녀는 나 자신도 느끼지 못한 어떤 경직을 감지하고, 그걸 지적해 주었다. 그렇게 눈물을 쏟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내 목소리에 활기가 돌아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고 그녀도 지나가는 말로 이제야 좀 내가 나다워졌다고 했다. Y는 참으로 소중한 친구로구나.

*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끊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폰 고장으로 스마트폰이 아예 없이 살았던 일주일의 상쾌함 때문이다. 눈을 뜨면 방에서 나가서 시계를 보기 전까지 몇 시인지 알지 못할 수 있고, 시계를 확인하고 처음으로 하는 일이 내가 잠든 사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보는 것이 아닌 오렌지주스를 따르는 것인 생활. 스마트폰을 없애는 건 아무래도 여건 상 불가능하지만 몇 가지 제한은 둘 수 있다.
1) 고파스는 완전히 끊는다. 로그인도 하지 않는다. (라고 다짐해놓고 몇 번 들어갔다. 한 달 지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아이디 없앨 예정.)
2) 인스타그램은 업로드 하지 않고, 앱 깔지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확인하는 빈도를 줄인다. 지금 성영태커피하우스에서 코스타리카를 마시고 있는데, 인스타에 올리고 지금 쓰고 있는 넋두리의 일부를 적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사진을 찍지 않고, 나의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인스타는 확실히 혼자 하는 모든 일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줬던 것 같다. 맛있는 걸 혼자 먹을 때, 좋은 영화를 혼자 볼 때, 내가 이런 걸 하고 있어요 여러분! 하고 올리고 라이크와 ​댓글을 받으면 완전히 혼자 한 건 아니게 되니까. 하지만 앞으로 혼자 한 일은 혼자 아는 것을 기본으로 하자. 정 알리고 싶은 소식이 있으면 페이스북으로, 적정한 길이의 글과 함께 알리자.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사진을 보는 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조금 지나면) 지금까지 업로드한 내용을 블로그 등으로 백업하고 순차적으로 사진을 지우자.
3) 유투브 앱은 레드 사용 기간이 끝나는 2/18 까지만 사용하고 해지 후 지운다. 킬링타임에 직빵이지만 인생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
4) 알람시계를 하나 더 사고 스마트폰을 거실에 두고 잔다. 잠들기 직전에 카톡을 하고 싶을 때는 노트북으로 한다.
스마트폰 의존증에서 벗어나자. 불쌍한 손목과 불행한 정신을 지켜주자.

* 파리에서 돌아오고 첫 한 주 간은 10시-12시에 고꾸라지듯 잠들었다가 4시 정도까지 잠을 못 자서 생체시계가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난 그게 시차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도 나는 여전히 3시 정도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망할. 어제 문득 이건 시차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경미한 불면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 있으면 온갖 생각이 든다. 직업적으로 미래가 불안하고, 허비한 오늘이 아쉽고, 내일부터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지만 결기가 부족한 스스로가 한심하고, 아침에 못 일어날 것이 두렵고, 만나고 싶은 얼굴들이 생각나고, 그 얼굴들이 정말 소중하지만 내가 그 얼굴들을 아주 가끔 떠올리듯 나 또한 그 얼굴들에게 가끔 떠오르는 존재일 텐데 대체 연락을 하고 만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고, 애인과 함께한 시간이 생각나서 너무 아프고, 내가 내려야만 했던 결정이 너무 잔인해서 화가 난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뻗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잡히던 손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울 수 있는 상태로 몇 분, 몇 시간을 보낸다. 매일 밤 어둠 속에 눈을 뜰 때면 보이는, 익숙하게 마련해놓은 내 방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

* 회복 중이라고 제목에 쓰기가 망설여졌다. 회복이라는 것을 말하기에 나는 아직 많이 아프고, 그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집에서건 길에서건 어디에서건 울먹일 수 있는 상태로 살고 있다.

* 어제 G를 만나서 간만에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왠지 깔끔했다.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한국어 자아 말고 영어 자아로 살면 도움이 좀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는 감정을 극대화 시키는 면이 있는데 이건 단지 한국어가 내 모국어라서만은 아닌 것 같다.

* 동생이 부산에서 TV에 열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나는 이해가 잘 안 됐다. 대체 거기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거지. 하지만 나도 사실 미디어에 중독되어 있다. TV가 아닐 뿐이지. 집에 있으면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늘 팟캐스트를 듣거나 음악을 듣고 있다. 요즘 가장 열심히 듣는 팟캐스트는 “요조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김생민의 영수증”, “JTBC 뉴스룸”, “WSJ Tech News Briefing”, “BBC Global News”, “MSNBC Rachel Maddow Show”, “CNN Amanpour”. 레이첼 매도우 쇼를 정말 열심히 듣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이 뉴스쇼에서 내게 유의미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져서 (미국 대선 시즌부터 상당히... 너무 미국 국내 정치 상황에 편중된 뉴스가 주류가 되어서 내게 효용이 떨어짐) 아만푸어를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조만간 둘의 청취 빈도 순서가 뒤바뀔 것 같다.

* 어제 간만에 소맥을 좀 거하게 마셨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휘청이며 집에 걸어들어오다가 라면을 사들고 와서 끓여먹은 것 (아 이 빌어먹을 습관!), 그렇게 티비를 보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티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중간에 깬 것, 목이 말라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러고 자려고 누웠더니 속이 불편해서 전부 토한 것, 그런 상태에서 한참 못 잔 것, 자려다가 한참 영국남자 영상이나 보며 시간을 보낸 것, 그렇게 자서는 1시반에야 일어난 것, 일어났더니 다행히 머리는 안 아팠지만 허리가 이상하게 뭉친 듯 여전히 아픈 것, 집이 다시 어지러워진 느낌, 저어어어언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라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밥은 제대로 먹자며 겨우 머리를 말리고 콩나물국밥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커피를 마시러 왔다. 그리고 마음 먹었던 블로그 일기를 한 시간 넘게 쓰고 앉아 있다. 두 잔째의 리필 커피는 과테말라. 역시 이 카페 좋구나. 일기를 쓰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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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7/25 

주말 동안 다양한 꿈을 꿨다. 

트럭 안에서 나체로 잠든 우리를 찍고 있던 비디오 카메라와 세 여자 무리, 돌로 된 좁다란 징검다리를, 몸을 겹쳐 기댄 채 날듯이 뛰어 건너던 너와 나, 그리고 점점 더 넓어지고 푹신해지던 바닥, 빵빵하게 바람이 든 풍선 같은 징검다리 위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은 우리에게 거기서 그러면 안 된다며 훈계를 하던 세 남자. 버스에서 만난 힐러리와 인사한 일, 불안의 감각, 벽을 타고 떨어지는 거대한 흰비둘기떼의 깃털과, 그 난리통을 뚫고 들어간 카페에서 주문한 초콜릿 음료, 어딘가 미심쩍어 보이는 음료의 모양새와 그래서 제기한 의문에 결국 동료 통역사와 내 목숨을 구한 꿈. 현실의 어딘가에 기대어 있기는 하지만 꿈인 게 분명하고 엉성하기 그지없는 이 구조 속에도 뭔가 나의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을까. 

이번에 브렌다의 꿈작업 워크샵 통역을 하면서, 내용만 놓고 보면 의미하는 바가 꽤나 명확해 보이는 꿈이라도 꿈에 드러난 상징을 읽으며 의미를 찾아 나서면 전혀 다른 메시지가 담겨있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 지대넓얕에서 예스맨 운동 이야기를 듣고 나도 조금 시도해봤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 운동을 해보면 내 생활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열리고 감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넘쳐나는 사건에 허덕이면서 문제 해결 능력도 향상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런던에 있을 때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를 상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너무나 완벽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내키는대로 통제의 고삐를 놓아도 그만인 시간이었다.


* 심심해지고 싶었다.  


* 여러 가면을 쓰고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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