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금방 다가올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때는 변화를 간절히 원했다.
변화의 기회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때는 낙담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도 갑작스럽게 변화의 물결이 나를 휩쓸 때 나는 한 마디 얄팍한 조언에 매달려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결국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 그 조언에 간단히 배반당했다.
변화 앞에 아무리 두려움이 인다 해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고
나는 또 다시 시간의 무심함 앞에 납작 엎드렸다. 지금도 그렇게 엎드린 채 그 무심함이 나를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계약 연장이 어려울 것 같다는 선의의 전언을 들은 1월의 어느날 이후로 나의 업무 일상은 쭉 내가 얼마나 괜찮은 자원인지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내가 들어오기도 훨씬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아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은 많은 다른 직원들을 생각했다. 퇴사를 이야기했던 청소부 아주머니도 생각했다. 보안요원을 앞에 두고 보안 관련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그 무신경함에 놀랐던 순간을 기억했고 나도 그런 비용의 일부임을 되새겼다. 육아휴직 후 복귀하지 말라는 연락을 들었다는 어떤 얼굴도 모르는 동료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나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불안했고 나태했다. 증명의 기회는 그렇게 자주 주어지지 않았고 그런 만큼 한 번의 기회는 무겁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 기회를 날려버리거나 망쳐버리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자존감에는 결코 좋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것이 시기의 탓인지 내 능력 부족의 탓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불안을 나보다 먼저 겪었던 그녀를 만났다. You don't have to prove yourself, 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해준 목소리가 고마웠다. 세상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네가 욕심이 많지 않아서 좋다고 그게 다 보인다고 어떻게 속에 나쁜 생각이 가득한데 말로만 좋은 척 포장하고 숨길 수 있겠느냐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아, 포장하고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아닌 게 맞는 것 같다고 설득이 됐달까.) 그리고 진심으로 오늘밤에는 너를 위해 기도하겠노라고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그녀와 나는 11월부터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의 수를 늘리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거리를 지킨다고 지켰는데도 어느새 시간이 쌓여 있었다. 시간은 무심하고도 꾸준하고, 무신경하고도 끈끈하다.
굉장한 이별도 아닌데, 그래도 이별 앞에서 사람은 좀 더 솔직해질 용기를 얻나보다.
용기를 얻은 게 다른 사람들인지 나인지 뚜렷하게 알 수가 없다. 내가 좀 더 용기를 내서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따뜻한 눈길을 돌려받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용기를 내서 굳이 표현하지 않고 지나갔던 따뜻한 말들을 전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런 눈빛이 된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어쨌든 짧은 이별을 앞두고 달달하게 감싼 말들이 난무하고 있고, 나는 그게 싫지 않다.
그리고 믿어보려고 한다. 내가 일부러 달달하게 꾸민 말과 진심으로 전하는 말은 분명히 다르게 들릴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