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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 간 푹 쉬었다. 일이 조금도 없었다. 월요일에는 점심 약속이 있어서 통역사 친구들과 수다를 잔뜩 떨고, 운동을 하고, 바로 또 다른 통역사 친구와 급 만남을 가져서는 술을 진탕 마셨다. 다음 날인 화요일에는 전날의 숙취에서 회복하는 데 하루를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차피 일도 없었으므로 하루종일 드러누워서 검블유를 정주행하다가 저녁에는 동생과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급 저녁을 같이 먹었다. 이렇게 쉬었다고는 하지만 꽤나 바빴는데 오늘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짓고 마지막 남은 드라마 한 화를 보면서 밥을 먹은 뒤, 카톡으로 낄낄거리기나 하고 집 정리나 좀 하다가 휘적휘적 카페에 나와 반 년만에 블로그에 일기를 좀 써보려고 앉았다. 다이어리를 펼쳐서 확인해보니, 이렇게 주중에 사흘이나 아무 일이 없었던 건 거의 1월 말-2월 초, 구정 즈음이 마지막이었다. 노는 일수를 이틀 정도로 줄여봐도, 부담되는 다음 일이 없는 상태라는 단서를 붙이면 거의... 상반기 중 휴가를 떠난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 날이 없었던 수준이다. 특히 지난 2개월은 거의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매일 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다녔다. 이렇게나 바빴으니, 지치는 건 너무 당연하지. 

일기를 써두지 않아서 언제쯤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프리랜서로 전향한 1년차인 작년에는 일이 좀 많을라치면 금방 버거워졌다. 친한 언니들과 대화를 하면서 테트리스를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여러 번 서로 공감한 적이 있는데, 정말 딱 그런 느낌이 꽤나 자주 찾아왔다. 테트리스 타일들이 80% 선 언저리에서 계속 쌓이고 터지고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이번 판을 연명하는 그런 느낌. 그게 아마 한 주에 일이 서너 건 잡혀있거나 하면 중간 어디쯤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테트리스 공간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100% 지점을 잘못 설정해둬서, 이 정도 워크로드에도 이미 80% 정도를 허덕이는 기분이 드는구나, 하고. 그래서 마음 속으로 100% 선을 새로 그었다. 100%는, 다른 직장인들처럼, 주중 5일을 연속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판을 새로 깔고 나니 신기하게도 허덕이는 느낌은 거의 없어졌다. 일이 없으면 쉴 수 있어 기쁘고, 있으면 당연하고 감사한 상태로 올 상반기를 났다. 

그런데 아무리 테트리스의 판을 넓혀도, 프리랜서로 매일 일하는 건 몸에도 정신에도 무리가 되는 일이다. 일은 기본적으로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매번 새로운 부담과 불안을 안고 일터로 뛰어드느라 잠을 설치거나 악몽을 꾸는 건 예사였다. 그렇다고 덜 부담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좀 사정이 나은가하면, 오히려 그런 때는 내가 일부러 스스로를 몰아세워야 해서 어떤 면에서는 더 힘들었다. 부담과 불안에서 나오는 특유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면 일을 망치기는 너무 쉽기 때문에, 일에서 불안하지 않으면 내가 불안하지 않아서 일을 망칠까봐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런 불안이라도 느껴야 안심이 됐다. (적고 보니 정말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다.) 일을 하면서 분명 설레고 뿌듯한 순간도 많았지만 매일같이 불안에 떠는 생활은 나를 아주 지치게 했다. 매번 고비를 넘기는 심정으로 일을 하니 그럴 수밖에. 불안이 너무 버거울 때면 나는 생각하곤 했다. 어떤 일을 할 때 부담이 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으면, 내 능력에 비해 너무 편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거라고. 지금 느끼는 이 불안은 내가 제자리에 와있다는 증거라고. 여전히 저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그런 판단과 심정적 피로는 다른 문제다. 

일기를 쓰다보니 내가 왜 지쳤는지 두 갈래로 이해가 된다. 우선은 내 능력의 한계와, 내 능력이 충분치 않다는 불신 때문에 지쳤다. 능력을 기준으로 내가 적당한 위치에 와있는지 가늠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능력에 대한 현실 진단과 끊임없는 갈증이 있을 수밖에. 이건 공부를 해서 채우면 조금은 나아질 부분일 거다. 다음은 내가 만들어낸 불안 때문에 더 지친 거였구나. 앞선 잣대를 들이대서 내 능력에 조금 안락하게 맞아들어가는 일을 할 때도 온갖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을 생각하면서 불안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혔으니. 이 부분은 어떻게 하면 건강한 긴장감은 유지하면서도 나를 지치게 하는 거짓 불안은 최소화할 수 있을지 조금 고민을 해봐야겠다.

갑자기 깨달은 내용만 대충 휘갈겨놓고, 일단은 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2019년 상반기에 대한 단정한 소회를 남기고 갔더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간만에 글을 써서 그런지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된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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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9. 6. 26. 18:41




* 프리랜서로 나온 뒤로는 늘 퀘스트 깨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1월에는 지난 2년 간 같이 일했던 컨설팅펌으로부터 처음으로 프리랜서로서 일을 받아 출장을 다녀왔다. 2월에는 그 컨설팅펌으로부터 첫 번역을 받았고, 첫 서울일을 했다. 4월에는 처음으로 다른 클라이언트의 순차통역일을 했다. 5월에는 처음으로 통역 부스에서 동기와 동시통역을 했고, 이것은 처음으로 에이전시를 통해 일을 해본 것이기도 했다. 첫 해외출장도 다녀왔고, 이것은 처음으로 후배와 일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컨설팅펌 일에서 선배와 함께 일을 했다. 8월에는 처음으로 들어온 일을 거절했다. 9월에는 처음으로 컨설팅펌이 아닌 다른 클라이언트의 일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10월에는 처음으로 직접 요율 협상을 했다. (그전까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을 받거나 제시하면 바로 수락이 되는 식이었다.) 세밀하게 보면 더 많은 처음이 있었다. 거의 매번 처음 접하는 분야, 처음 만나는 주제, 처음 만나는 기업 (혹은 심지어 처음 들어보는^^ 기업), 처음 만나는 동료, 처음 겪어보는 어려움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12월, 그래도 웬만한 처음은 다 겪은 것 같으니 이제는 그 위에 조금씩 경험을 덮어가며 익숙해지는 일만 남았나 했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처음이 왔다. 컨설팅펌 외의 일은 모두 동기들과 한 것이었는데, 처음으로 선배와, 그것도... 까마득한 대선배와 부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처음 해보는 분야에서. 그리고 처음으로 통역사 세 명이 들어가는 세팅으로. (이 일을 제안받을 때 들은 정보 중에 클라이언트가 누구인지 말고는 하나도 맞는 내용이 없었다는 것을 적어둔다...^^) 아, 리허설도 처음 해봤지, 참. 리허설이 필요할 만큼 중대한 일도 처음이고. '처음'을 다루는 데 익숙해진 것 같다고? 그럼 어디 처음들을 똘똘 뭉쳐서 던질테니 받아봐! 라고 하는 것마냥, 뭉텅이가 날아왔다. 그것도 천 장짜리 자료랑 같이. 하하하. 

어제의 리허설은... 정말 힘들었다. 아니, 뭐, 그래도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거나 그런 류의 고통은 다행히 아니었지만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힘들었다. 도움을 계속 받으면서 내가 도울 일은 거의 없었다. 적확한 단어만이 서있을 자리에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두루뭉술하고, 듬성듬성하고,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치명적으로 틀렸다. 최선을 다해 통역을 하고 있지만 필요한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노력을 하면서도 결과는 게을렀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끝나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면서 뭐라고 뭐라고 지껄였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거기에 선배는 "좋은 통역사라면 이런 상황에서 투지가 생겨야죠"라고 담담하게 답을 해주었다. 작별인사를 하며 연신 사과의 말을 내뱉고 있던 내게 "I think you passed the test"라고 말해주고는 유유히 걸어가셨다. 대선배와의 첫경험. 정말 고통스러웠고 아마 앞으로 더 고통스러울 테지만 정말로 이번 퀘스트를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살아서 통과한다면 분명히 담력 하나는 제대로 길러질 거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그저 하루 일한 것만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자료를 제본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나, 당일에 하드카피 몇 부를 출력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어떤 식으로 통역 자리를 세팅하는지("라이트"), 어떤 식으로 통역을 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체크해야 하는지("비")... 실력이 최상이고, 모든 면에서 노련하고, 그러면서도 근면한 프로. 같이 부스에 들어가 앉아있는 것만으로 영광이었다. 단지 대선배라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정말 이런 걸 내가 지금 해야만 했을까? 이런 난이도의 일을 훌륭하게 해낼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것도 한 다스로. 나는 뱁샌데. 어느 모로 보나 이 일은 내 일이 아닌데, 어쩌다가 이게 나한테 와서는. 내심 기쁘고, 내심 기대되고, 내심 긴장되고 걱정되고 (그래서 밥도 못 먹고 소화도 안 되고 잠도 못 자고 온갖 난리는 다 피우고), 내심 우쭐하고, 내심 절망적인. 모든 퀘스트에 앞서 느꼈던 감정들이 잔뜩 증폭된 형태로 비처럼 내렸다. 나는 장대빗속에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있다. 

그러니까, 어제 리허설이 끝나고 받은 느낌은 비에 푹 젖어버린 느낌이었던 거다. 눈물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그건 슬퍼서도 분해서도 부끄러워서도 아니었다. 나를 적신 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빗방울마다 다른 감정, 느낌, 생각, 맥락이 녹아있었다. 나는 그 부스에 오기까지, 그리고 그 한나절 내내 부스 내에서 내린 비에 overwhelmed된 것이었다. 

오늘 설거지를 하면서 계속 왜 하필 내게, 왜 하필 내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대사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내게... 왔냐고 묻지 말라. 그건 분명히 이집트왕자였어. 설거지를 하다말고 허겁지겁 음악을 틀었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이 안 나서 Through Heaven's Eyes를 틀고 다시 설거지를 하는데 울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찾던 그 노래는 아니었지만 결국 생각은 맞닿아있었다. 그리고 몇 소절 더 듣자 기억이 났다. "When the gods send you a blessing, you don't ask why it was sent." 이집트왕자의 다른 노래에 나온 가사였던 거다. 마치 해독제를 찾은 듯이, 두 번 연속으로 이 노래를 들으며 찔찔 울면서 설거지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몇 번이고 가사를 보고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엉엉 울었다.

버겁기는 하지만 이건 확실히 축복이다.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왜 하필 내게 왔는지 물으면서 내 자신에게 재앙을 만들지 않겠다.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 퀘스트를 깰 때마다 게임처럼 어디서 축하의 팡파레라도 울리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어려운 퀘스트를 잘 뚫고 지나와도, 과거의 것에 비추어 현재의 것이 얼마나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였는지 아무도 제대로 알고 싶어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며 알 수도 없다는 사실, 그걸 꾸준히 관찰해주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에.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타인에게 나의 퀘스트를 설명하고 가끔은 타인으로부터 박수를 받아야만 한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율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 마음의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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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8. 12. 10. 02:55




* 지금 나는 왠지 딴짓의 정상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토요일에 큰 건 리허설이 있는데 자료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종일 집에 처박혀있어 놓고는 딱히 한 건 없고, 지금 막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봤다. 이 스탠드업 코미디 쇼는 정말 보기 드문 수작이다. 별점 6개 주고 싶은 그런 마음. 내가 재밌게 본 코미디쇼는 이거 외에는 앨리웡, 하산 미나즈, 트레버 노아 (그런데 트레버 노아는 데일리쇼나 팟캐스트에서 얘기 들을 때는 꽤나 브릴리언트한 반면 넷플릭스에 올라온 쇼 두 개 봤는데 둘 다 갸우뚱하긴 했다)의 쇼가 있는데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소수자 정체성에서 나오는 펀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적으로 자극도 되어야 하고. 반복이나 남을 깎아내리기를 통해 그저 웃기기만 하려는 건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아무튼. "나의 이야기"는 다시 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아예 트랜스크립트를 받아서 읽고 싶다. 그리고 엄마에게 잘 번역해서 소개해주고 싶다. 오늘 한 딴짓은 일단 청소, 빨래, 장보기, 요리, 다이어리 정리 등이 있는데 이 쇼를 굳이 다시 본 게 정상이고 이제 내일부터는 후다닥 산을 달려내려와 공부를 할 수 있길. 

* 주말에 본 영화 "툴리"도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다. 보고 나오면서 첫 인상은 좋은 영화인 것 같긴 하지만 너무 후다닥 끝난 거 아냐? 였지만 곱씹을수록 아름답다. 물에서 숨이 막히지 않는 인어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도. 툴리와 마를로의 투샷이 지니는 의미도. 툴리가 하는 말들이 마를로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도. 미디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엄마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라고 해봤자 현실은 따라오지 못할 것이지만). 나무되기 놀이를 가르쳐주는 장면도 전체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의미가 있고. 다시 보고 싶다. 엄마랑. 

* 바쁘다고 어쩌고 저쩌고 나불나불거리긴 하는데 사실 그렇게 바쁘진 않은 건지도. 

* H언니와 S언니를 만나서 맥주 마시다가 뭔가 이야기를 했는데 제대로 전달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그 이후에 든 생각을 조금 적어놓는다. 툴리와도 연결되는 얘기다. 여자다움이라는 건 대체 뭔가? 나는 여자다움을 생각하면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엄마는 거의 수퍼우먼이다. 열정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랑했고, 열정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절박함으로 그림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 와중에 나와 동생도 깊은 사랑으로, 정신적 회복탄력성이 높고 건강한 수준의 자존감을 지닌 성인으로 키워냈다. 그러면서도 딸과 며느리로서의 역할도 매우 모범적으로 해냈다. 꽤나 흠이 많은 남편과도 상당히 원만한 수준의 관계를 지켜왔다. 그런 모든 일을 다 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정신을 돌볼 줄 알았고 사유할 줄 알았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내고 애정을 표현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떻게 저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었는지, 나는 상상이 잘 안 될 지경이지만 아무튼 다 해냈다. 현명하고 진실된 사람. 엄마는 그런 사람이지만, 유독 여성성의 영역에서는 자신이 없다. 아빠가 좋아하는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지도 못하고 꾸미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두 아이를 낳고 저 모든 일을 하느라 만들어진 자신의 "못난" 육체에 컴플렉스가 심하다. 엄마의 존경할 만한 점이 저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엄마를 만나 대화를 하면서 화를 낼 일이 생긴다면 그건 십중팔구 여자다움과 연관이 있다. 자기 몸무게가 얼마인데 그래서 옷을 입으면 예쁘지 않은 몸무게가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없다느니, 무엇을 입을 수 없다느니, 무엇을 살 수 없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오른다. 대체 그 여자다움이 무엇이라고 이런 훌륭한 것들을 이뤄낸 사람이 그 부분에서만큼은 자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면서 고작 1, 2 킬로그램에 매일 같이 정신적 에너지를 쓰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왜 그 부분에서만큼은 마치 자신이 남편에게 매력적인 여자로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모종의 미안함을 안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 가정이 거의 전적으로 엄마의 공으로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데도? 고작 그딴 몇 키로의 몸무게와, 소위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 자신의 취향 때문에? 이런 생각은 내 안의 울분으로 남았다. 

그날 언니들에게 내가 메이크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얘기를 했는데 굉장한 메타 인지를 하고 있구나, 하는 평을 들었다. 메이크업에 대한 내 태도란 이런 것이었다. 일하러 갈 날이 연이어 있어서 며칠 간 계속 메이크업을 하고 나면 어느새 나도 그 얼굴이 익숙해져서 메이크업을 지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일이 없는 날도 거울을 보면 메이크업을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럴 때, 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면 또 얼굴이 볼만해진다. 다시 익숙해지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게 피부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말한다. 이날도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내가 주로 메이크업을 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메이크업을 한 얼굴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내 얼굴은 그게 디폴트라고 인지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똑같은 피부 상태라도 내가 늘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메이크업을 지운 순간 내 피부를 보고 여전히 정말 좋다고 말할 사람은 지금에 비해서는 훨씬 적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도 여느 여자들처럼 거울을 보면 내 잡티나 모공이 보인다는 거다. 그런 것들을 다 가리고 싶고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분명 있다. 나도 남의 피부를 보고 부러워하곤 한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으면 아니다 내 피부는 아주 엉망진창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때로는 나도 모르게 휘말려 있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그 게임에서 비껴서 있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고 메타 인지를 하고 있다는 평을 들은 것인데,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메타 인지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 내가 거창한 뭔가를 하고 있는 건 없지만, 내가 하는 생각들은 가급적 같은 선상에 있도록 하고 싶다. 내 주변의 많은 여자들은 외국에 나가면 한국의 억압적인 미의 기준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자유로운 느낌을 받고 그래서 좋았다면, 그걸 한국에서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느 정도는 물론 양보를 하게 된다. 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그 수준을 반드시 맞춰야만 하는 때가 아닌 순간들도, 삶에는 얼마든지 있다. 거부할 수 없다고 느끼는 선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면 좋겠다. 그래서 적어도 내 주변에서만큼은 내가 그런 자유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얼굴에 칠을 도무지 별로 하지 않는 내가 못 버리는 한 가지는 바로 립스틱이다. 눈썹을 안 그리고 맨얼굴로 나가는 날에도 입술만큼은 뭔가를 바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래부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입술에는 색이 있어야 한다는 걸 배운 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배우기에는 상당히 늦은 때였다. 이십 대 중후반 무렵이었을 테니까. 어느날 부산에서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한 순간이 기억이 나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안 하더라도 입술 만큼은 뭘 발라야지!"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입술에 립스틱을 칠했다. 확실히 얼굴에 생기가 확 살아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립스틱을 바르지 않은 내 얼굴은 역시 생기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건 확실히 학습이다.

* 아... 이런 일기까지 써버리다니. 확실히 딴짓의 정상에 있는 게 맞구만. 더 쓰다가는 잠을 못 잘 것 같고 내일은 꼭 아침 일찍부터 공부를 해야 하니 일단은 그만 접어두고 와야겠다. 사실 지난 몇 달 간 일을 하면서 느꼈던 공허감과 뿌듯함에 대해서도 꼭 기록해놓고 싶은데. 바쁨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런 영향의 많은 부분은 사실 내가 바쁨에 대해 조금 잘못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는지, 그런 깨달음 뒤에 나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기록해두고 싶은데, 일단은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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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8. 12. 4. 02:41




* 고요하지만 무료하고 평화롭지만 한심한 일상.

* 나라는 인간 정말 징한 인간... 주로 기업 대상으로 통역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재무제표 읽을 줄도 모르는 똥멍청이인데 이번에 주식 스터디 그룹에 들어간 걸 계기로 드디어!!! 결심한 지 무려!!! 1년 가까이 되어서!!! 재무제표 읽는 법을 공부하고 있다. 오늘 하루 그거 책 좀 읽었다고 이해가 안 되고 미추어버리겠어서 지금 블로그로 도망옴. 그렇게 어려울 이유도 없는데 왜 이렇게 안 와닿고 어려운지 정말 꼴도 보기 싫고 이해도 잘 안 됨. 그냥 멍청해서인가? ^^ 라고 하기에는 나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을 텐데...? (제발.) 이게 소위 말하는 "영어울렁증"을 겪는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할 때 느끼는 증상이라면, 그거 과장이 아니라 정말 울렁거리는 거였구나. 하하. 정말 재무제표 for dummies 수준인데 나에겐 dummy도 아깝다...^^

* 인스타 중독이 또 심각한 수준이 되어서 한 주 간 업로드를 끊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후, 내가 의지박약의 아이콘이다. 

* 지난 목요일에 은행 자산관리 관련 통역 들어갔다가 매우 고통 받고 나왔는데 금융지식도 너무 미천한 와중에 통역실력도 미천해서 그 꼴이 난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괴롭다.

* 전 애인 Y에게서 9월에 편지가 왔는데 답장 쓰기를 회피하고 있다. 답장이 숙제로 여겨지면서 원래도 별로 달갑지 않았던 그의 연락이 더더욱 싫어지고 있다. 그와 만날 때 정말 행복하고 안락했고, 지금 잘 살고 있는 게 그때 배운 안정감에 크게 기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고맙기까지 한 인연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에게 뭔가 빚지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게 그와 연애하던 시기는 그것으로 충만하게 완결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전적으로 감정의 게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결심의 산물임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관계였다. 그리고 어쩌면 잔인하게도 나는 그 깨달음에 따라 그와의 연애를 정리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심들로 하루 하루를 채워왔다. 그 시간이 이제 1년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아직도 내가 떠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떠나기 전 몇 가지 구체적인 당부도 해두고 왔고, 연락이 올 때마다 그 당부를 일깨워주고 있는데도 그렇다. 아마도 그는 아직도 매일,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 있기로 결심하고 있는 것일 테다. 처음 편지를 받고서 이런 편지에는 답장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꼭 답장으로 이런 내용을 다시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답장 쓰기를 미루는 동안 점점 더 헷갈린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할 때 분명 이런 설명을 몇 번이고 여러 형태로 했는데 그가 듣지 않았다면, 왜 지금에 와서 또 해줘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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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8. 10. 14. 17:39




* 7월 첫 주 싱가폴 행에서 시작해서 지난 주까지 장장 10주에 걸쳐 이어진 여름 여행 퍼레이드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소명언니의 결혼식이 있었던 싱가폴, 가족과 함께한 원주-평창-강릉, 폭차와 함께한 부산, 운돌투어로 간 발리, 운도리랑 민이랑 같이 또 한 번 찾은 강릉, 엄마와 할머니의 생신 축하를 위한 부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시현 언니들과 재회한 홍콩까지. 정말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모든 여행이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차 있는데 딱히 무엇이 그리 행복했는지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든다. 다만 가장 행복했던 점은 이렇게 며칠을 한 공간에서 잠들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잔뜩 있구나 하는 발견이었다. 

* 요즘 내게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는 건 앞으로 기억하거나 대화의 소재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순간 마음을 고요하게 하거나 흥이 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발생하는 변수들에 관대한 것 같다. 여행 중에 뭔가를 꼭 해야겠다는 열망은 앞으로 이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남들에게 오래 자랑하고, 훗날 그 추억을 되밟아 그 자리에 돌아오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러면 특정 행위나 장소가 목표, 즉 기준점이 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쉽게 마이너스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게 기준점이 되면 뭘 해도 쉽게 플러스가 된다. 유별나게 고생을 하거나 특별히 맛없는 음식을 먹지만 않는다면. 쉽사리 마이너스가 되지 않고, 손쉽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로 많은 여행을 다녀오고 일상을 살고 있다. 

* 여행의 끝과 딱 맞물려 3주 간 풀타임으로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오늘로 5일째, 첫 주의 마지막날인데 매일 9시에서 6시까지 사무실에 있는 건 그 자체로 힘들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매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봐야 늘 하고 있는 일이니 이해를 못 하겠지만 반년 넘게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나는 이제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떠서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 흑... 체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잠자리에 들 때 내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다는 게 정신적으로 지친다. 7시에 알람을 맞추면서 이때 눈을 뜨지 못하면 큰일이야! 라고 매일 생각하는 건 정말이지... 흑흑... (그러고보니 이렇게 매일 아침 기상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혼자 져야 하는 상황은 꽤나 간만이기도 하다. 거제에 있을 때는 호텔 프론트에 모닝콜을 부탁했기 때문에 내 알람 소리를 못 들어도 믿을 구석이 있었달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2년반만이고.) 빨리 9월이 지나서 프로젝트가 끝났으면 좋겠구만. 아, 그래도 역시나 같은 곳에서 연속성 있게 일하는 게 정신적으로 덜 지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내가 큰 문제 없이 일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주고 난 뒤에 생기는 신뢰에 올라타고 일할 수 있고, 내용도 점점 익숙해지니 확실히 준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덜하다. 일이 많은 날이든 적은 날이든 오늘 하루치로 얼마만큼의 돈이 배정되어 있다는 게 안심되기도 하고. 8월에 너무 밖으로 나돌아서 감이 떨어진 것 같아 걱정이 됐는데 적당한 버퍼를 딛고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게 다행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고루 보면서,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일하는 중에는 퇴근이 간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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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8. 9. 14. 11:34




*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기분이 나빠지고 있다. 여름에 그토록 즐겁고 바쁘게 놀고 일할 때 분명 이런 순간이 올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날이 생각보다 빨리 선선해지고 있고, 기분도 생각보다 빨리 가라앉고 있다. 원인을 잘 진단해서 잘 헤쳐나가고 싶다.

* 야식을 그다지 찾지 않는 편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면 특정 술은 마시고 싶어져도 특정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달까. 그래서 정식 식사 외에 뭘 배달시켜 먹는 일도 없고 집에 이유 없는 주전부리가 구비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자주 입이 심심해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우리 엄마 같은 사람. 그런데 요며칠 갑자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식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덤으로 사오는 것을 시작으로 과자도 한 봉지 사오고, 젤리도 하나 사 오고... 그리고 어제는 그렇게 사놓은 과자가 동이 나고 밖에는 장대비가 내리는데 너무너무 입이 심심해서 무려 두부를 먹었다. 두부를 반 모만 먹으려다가... 심지어 한 모를 다 먹었다! 김치랑 참기름 탄 간장이랑 두부만으로 구성된 그 심심한 야식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고작 두부일 뿐인데 먹고 나니 속이 더부룩할 지경으로 빨리 먹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어디가 허해도 단단히 허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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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랜서 전향한 지도 반 년. 3.5년 중에 0.5년이니 꽤 지분이 늘었다. 그래서일까, 약간은 해이해지는 여름이다. 

* 올여름 노느라 매우 바쁘다. 마치 지난 2년 간 거제에서 연애하느라 못 했던 걸 다 몰아서 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런데 하나도 무리하는 느낌은 안 들고 그저 계속 신난다. 지금 7월 첫주부터 9월 첫주까지 매주말마다 여행이나 페스티벌이나 모임 따위가 촘촘히 잡혀 있는데...ㅋㅋ 덕분에 이 더워 빠진 여름에 기분이 좋다. 

* 그렇게 많이 놀다보니 요즘은 에너지가 밖으로 향해 있는 느낌이다.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럴 여력은 별로 없는데 그건 그거대로 꽤나 상쾌하다. (그래서 일기도 별로 쓸 생각이 안 든다. 별 생각 없이 살고 있다!) 내적 성찰은 봄 가을 겨울에 많이 하니까, 낮이 긴 여름에는 그저 이 상태를 즐겨도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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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8. 7. 25. 18:07




* 적정 수면의 기준을 6시간으로 잡고 있었는데 이제 인정해야겠다. 나의 적정 수면 시간은 8시간이다.

* 이걸 인정한 게 오늘 아침이었는데 오늘 바-로 그 적정 수면 시간을 채울래야 채울 수 없도록 일이 생겨 주시는 것. 이런 건 거의 필연 같다. 

* 자료 90장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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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8. 7. 19. 00:36




* 지난 번에 블로그에 일기를 올린 이후로 정말... 열심히 놀았다. 벼르고 벼르던 바코드 방문을 시작으로 오션월드 갔지, 영화도 봤지, 싱가폴 다녀왔지, 퀴어문화축제도 있었지! 사람도 꽤 많이 만났고 일도 매주 했고 그 일도 혼자 한 게 아니라 파트너 선생님이랑 많이 하고 매주 운동도 빠지지 않고, 아무튼 꽤나 알차게 시간을 보냈는데 (신나서 인스타도 겁나 했다. 반성...^^ 다시 한동안 디톡스 들어가야 할 듯.), 그렇게 잘 놀고 나니... 계속 놀고 싶다!!! 노는 건 왜 안 질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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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8. 7. 17. 23:33




* 금요일 밤부터 부산했다. 지금은 수요일 낮. 금요일 밤에 부산에 내려가 엄마, 민이와 계획하지 않은 양질의 수다 타임을 새벽 5시반까지(...) 보내고, 토요일에는 와인 숙취를 떨치고 나가 페디큐어를 받고 할머니댁에 방문해서 저녁까지 먹은 뒤 면세점 쇼핑을 짧고 굵게 마치고 가족 여행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경연이 결혼식에 갔다가 집에서 짐을 부랴부랴 챙겨 서울행. 조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주말이었다. 그리고 헬게이트가 열렸다. ^^^^ 월요일 낮부터 통역이 잡혀 있었는데 그 자료를 일요일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열어 본 것인데... 아... 너무... 어려웠다... 세상에 이렇게 어려울 수가 ^^^^ 그렇게 어려운 와중에 자료 보는 시스템도 보안 적용이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시간이 배로 걸렸다. 새벽 늦게 눈꺼풀이 절로 내려올 때까지 자료를 보다가 월요일에 초죽음 상태로 가서 통역을 겨우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마시고 그냥 기절해버렸다. 다음 날도 통역이 있는데 말이다. ^^^^ 밤이 무르익었을 때야 눈을 떠서 다음 날 자료를 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전날 내용(에너지 & 자동차)보다는 내가 아는 내용(통신)이어서 좀 나았지만 그래도 워낙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또 늦게서야 잘 수 있었고 다음날 일정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이었다. 간만에 비가 쭐쭐 오는 날,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달려서, 회의실에 가서, 전날보다는 나았던 통역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기절했다. 오늘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것도 안 보고 그냥 쉰다, 다짐하면서. 2시간을 자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운동을 하고 나니 그래도 몸이 훨씬 가뿐해졌다. 그 후에는 집 근처에서 저녁 약속으로 친구를 만나고, 집에 와서 벼러오던 청소를 했다. 바닥을 닦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이제야 집이 사람 사는 집 같아졌다. (금요일에 부산에 가기 전에도 수원에 출장 다녀오고 바로 이어서 컨퍼런스 준비하느라 집이 아주 가관이었음.) 이 과정을 거치면서 어제 느낀 것이, 소리로 일을 하다보니 일로 지치니까 정보값이 있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어지더라는 것이다. 보통 집에서 잡일을 할 때 웬만하면 구독하는 뉴스형 팟캐스트들을 훑고 나서야 음악으로 넘어가고, 일하러 가기 전 아침에 준비할 때는 그걸로 쉐도잉을 하거나 속으로 통역을 해보거나 최소한 귀기울여 듣기라도 하면서 워밍업을 하는 편인데... 일요일부터 어젯밤까지는 도-저히 아-무 말도 듣기가 싫었다. 그렇게 세상 모든 말소리로부터 셧다운하고 싶어지는 때가 아주 간혹 찾아오는데 요며칠이 그랬다. 그래도 어제 좀 쉬고 잠도 충분히 푹 잤더니 오늘 아침부터는 다시 조금씩 뉴스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휴.

*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을 때면 퇴근하고 싶다고 수십 번 생각하지만 통역 없는 날 9시에 일어나 단호박 쪄먹으면서 이메일 정리하고 다음날 통역 공부를 슬슬 하려고 시동 거는 순간에는... 참 행복하다. 퇴근이 없어 때로 괴롭지만 출근이 없어 행복해요!

* 이제 공부를 해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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