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이프 오브 워터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푸쉬알림을 받고 깜짝 놀랐다. 몇몇 영화 좋아하는 친구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보고 며칠 전에 충동적으로 보고 온 영환데, 딱히 아카데미 소식을 주시하지 않아서 노미네이트 된 것도 몰랐던 터다. 나는 보고서 실망스러워하며 왓챠에 별을 2개반인가 주고 말았는데, 작품상을 받았구만. 음악이 매우 좋고 샐리 호킨스도 호연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동화적인 분위기만 연출한 게 아니라 플롯도 진짜 동화처럼 단선적이었는데. 냉전시대 경쟁 구도에 너무 잘 어울려서 판에 박혔다고 생각될 만한 출세 지향형 악역 남성 캐릭터, 자기 연구 대상에 대한 애착과 소련 스파이로서의 정체성 사이에 어떠한 케미도 없는 과학자, 수다스럽고 의리파인 것을 빼면 어떤 특징도 없는 주인공의 조력자 1, 주인공의 미친 계획에 (제정신인 사람답게) 반대하다가 파이집 청년에게 추파 던지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물론 이걸 호모포비아에 직면하여 자신 또한 이 사회의 outcast임을 통감한 뒤, 라고 바꾸면 좀 더 있어보이게 되긴 한다만) 이를 결정적 계기로 마음을 바꾸어먹는 주인공의 조력자 2... 이렇게 주변 인물만 나열해도 너무 심심할 지경이다. 그런 인물들을 데리고, 어디서 몇 번은 들어본 것 같은 수준의 사건사고로 엮어낸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사랑의 본질이다. 그와 내가 다를 게 뭐가 있죠? 라고 강변하는 주인공 일라이자의 말에서 유추...할 필요도 없이 너무 쉽게 알 수 있듯, 사랑은 (그게 인간이든 양서류 모습을 한 유사신이든) 타인에게서 나와 닮은 구석을 발견했을 때 싹트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런데 거기서 깊은 울림을 얻으려면 상대방이 주인공과 (또는 인류와) 아주 극적으로 달라야 할 거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꽤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섹스도 가능하며 물 속에서 교감하는 방식 또한 물 때문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될 뿐이지 그냥 인간 둘이 살을 부비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둘 중 하나가 반 양서류 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빼고는 구태의연한 여느 로맨스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소리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다라면 대체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Creature가 인간이 아니라는 포인트 말고는 딱히 봐줄 것 없는 영화인데 그것마저 별볼일없이 처리하면 어쩌잔 말인가! 라고 여기까지 쓰다가 문득 깨달은 사실인데, 사실 이건 사랑이 아니고 fascination에 대한 영화였구나. That initial blooming of irresistible affection. 그런 거라면 정말 아름답게 그리긴 했지...만 그걸로 됐다고 하기엔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는 플롯이었고 고작 그걸로 생을 내놓게 된 설정은 좀 오버가 아니었나 싶다. 

* 그래도 마지막에 나온 이 구절은 정말이지, 최고로 아름다웠다. 마지막에 나온 이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거의 영화에 감동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뻔했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는 시가 한참 아깝다고 생각했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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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  2018. 3. 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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