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계약서에서 사인을 했다. 며칠 동안 목이 빠져라 화도 내고 답답해하기도 하면서 기다렸던 계약서가 도착한 순간 나는 JY짱과 밥을 먹고 있었고 고맙게도 지메일은 내게 알림을 보내주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그쪽 서명도 된 버전을 보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기 위해 용기를 그러모아야 했는데 상대방의 반응은 대체 그런 소리는 왜 하냐는 듯 너무도 당연하게 보내주려고 해서 완전한 초짜가 된 (사실 내가 정확히 그런 상태인 게 맞지만) 기분이 되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매번 물어봐도 좋은 것과 안 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릴 때면 내 무지가 지긋지긋해진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통역이 많은 일일 것, 대면해서 통역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외국인이 섞여 있는가능하면 더 많은근무 환경일 것, 급여수준이 지금과 비슷하거나 높을 것. 한 직장에서 이 모든 걸 바란 건 아니었고 한 가지 정도 충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넷 모두를 만족하는 기회가 왔다.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서울에서 잠시 떨어져서 지내고 싶다는 욕망에까지 부합하는 일자리라니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차 계약 기간은 못마땅할 정도로 짧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침 지금 일자리에서 일 년 계약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잃는 것도 많지 않다.

 

사측에서 삼 개월 연장 방안을 선심쓰듯 제시했을 때 나는 여기에 순응해야 할지, 기분 나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급여 협상을 해야 할지, 심지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오래 이 일자리를 떠나고 싶어했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빠지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다녔음에도 삼 개월 간 더 익숙한 자리에서 익숙하고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을 처리하면서 앉아있는 것이 아주 수동적이나마 매력적인 일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는 아직도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일이란 걸 시작한 첫 해를 채우기까지도 열흘이 넘게 남았고 (심지어 이 일 면접을 본 지 일 년 되는 날내 생일까지도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이직은 정말이지 처음 해보니까. 하지만 처음이라고 마냥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때로 운이 좋아서, 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 같은 다양한 이유로 처음을 어수룩하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때도 있지 않을까. 소위 능력 있는사람이 되려면 그런 다양한 요소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언제나 능숙하고 싶었다. 미숙한 모습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고, 나 자신도 발견하고 싶지 않았다. 줏대 있게 행동하는 것, 내 다음 행동의 기준을 세우는 것,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무엇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에 반발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런 것들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 기분을 온갖 논리로 싸워내느라 진을 빼곤 했다. 하지만 논리만으로 풀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하게 엉켜 있어서 그 엉킨 틈새를 들여다보기 위해 실 하나를 당기는 것마저도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하는 시간이 한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에 뒤덮여 있는 것은 조금도 안락하지 않았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편하지 않은 질문을 겨우 던지고 평정을 가장하며 답을 듣는 것도 그 답을 기억하는 것도 지쳤다. 내가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몇몇 남자와 잤다고 한다면 기만이겠지만 그 결정에 이런 상태가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계약서에 사인은 했지만 고용주의 얼굴은 물론이고 에이전시 측 사람 얼굴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내가 어떤 통역을 하는 사람인지도 선보인 적이 없는 채로 일 년 전의 평판만 가지고 얻은 일자리란 과하게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프로라는 허울만을 가지고 이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에 더욱, 부담을 느끼는 인간적인 면모를 최선을 다해 숨겨야 한다. 인터뷰란 부담되는 일이므로 그 부담을 피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결국은 나는 그만큼 나의 퍼포먼스에 따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부담을 등에 업고서 지금부터 꼬박 한 주를 홀로 견뎌야 할 테다. 상황적으로 어렵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마치 인터뷰에 홀로 들어가듯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괴로움을 끌어안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테다. 아마 첫 두 주 정도도 비슷한 상태로 지낼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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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  2016. 3. 15. 08:23




Feb 29

주말에 급한 번역을 부탁 받았다. 직원 사망 소식이었다. 사건사고 보고는 늘 하는 일이라 무덤덤하게 해서 보냈는데 보내고 보니 같은 층을 사용하는 다른 부서 사람이었다.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여왕벌 같다고 생각한 젊은 여자분. 사망자의 이름에 얼굴이 붙자 그제서야 기분이 가라앉았다. 


Feb 29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력서를 보냈는데 연락이 안 와서 답답하다. 이걸 붙잡고 있느라 다른 데 알아보는 것도 시큰둥하다. 현재 직장에서는 회사 사정 상 1년 연장은 무리고, 3개월 계약 연장 얘기가 나오다 말다 한다.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어서 1년 채우면 나오려고 했는데도 정작 1년 기한이 다가오니 저런 황당한 제안에도 그냥 한동안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내가 웃긴다. 하지만 월급이 특별히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그게 없어질 걸 생각하면 겁부터 난다. 정확히는 월급이 특별히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월급을 당연시하게 되었기 때문에 겁이 난다. 금요일에는 이런 생각을 계속 하면서 그리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끊임없이 흘끗거리며 끔찍하리만치 재미없는 번역을 하다보니 퇴근할 즈음에는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 되었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 죽겠는데 계속 만나야해서 돌아버릴 지경인데 또 안 만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다. 웃기가 힘들다. 그냥 다 그만하고 싶다. 늘 그런 건 아니고 분명 웃는 때도 많고 한데 아무튼 이런 느낌과 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자주 온다. 오늘 하루종일 영화와 드라마를 봤는데 그나마 마지막에 본 예스맨이 겁나 웃겼고 그러고나서 플레이리스트를 돌렸더니 Whip It! 이란 노래가 꽤 흥을 올려줘서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걸 쓰고 자야겠단 생각까진 할 수 있게 됐다. 제-발 여기서 좀 한동안 벗어나서 지낼 수 있는 그 기회가 내게 떨어지게 해주세요. 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있다.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다. 여러모로 자신감이 하락하고 있고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 통역사 일 년 간 허송세월한 것 같아."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는데 계속 생각이 난다. 그리고 반박을 못하겠다. 저런 헛소리에 반박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된 지금 내 상태가 너무 싫어서 화가 난다. 아, 화가 나는 건가보다, 지금 이 상태. 아무튼 정말이지 지금은 웃기가 싫다. 아니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웃거나.


Feb 3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내 멋대로 망가지고 싶은 순간에도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달려가볼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걱정하는 눈빛들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무게인가. 


Jan 28

사람 일이라는 게 너무나 신기한 것이 기운이란 게 있는 건지 그냥 그럴 때가 됐겠거니 해서 연락을 주는 건지 내가 이직 결심(및 완곡한 권유)을 하자마자 갑자기 일자리를 물어주려는 연락과 뜬금없는 동기의 연락이 줄을 잇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발견했을 때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 기쁘다. 다음 직장에도 평안히 안착할 수 있길.


Jan 20

7시 퇴근하고 7시 반에 집에 도착해서 한 거라고는 저녁 차려 먹고 설거지 한 것 뿐인데 벌써 9시다. 뭐 대단한 걸 해 먹은 것도 아닌데. 이러니 늘상 밥을 사먹는 거지... 어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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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데이&인스타  |  2016. 3. 12. 22:27




Dec 28

미친 악몽 같으니라고. 꿈 꾸면서 가위 눌렸다. 가벼운 수준일 때는 그냥 이 현실에서 몸을 못 움직이는 기분이 들 뿐인데 꿈 속에서 가위 눌리니 몇 겹을 더 빠져나와야 하는 기분이었다. 친구를 집에서 재워줬는데 웃고 있던 친구가 잠들려는 내 침대 옆에 다가와 이불 위로 끓는 물을 붓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숨이 막혔다. 친구가 목을 졸랐다. 움직일 수가 없어서 한참을 그러고 있다 정신을 잃었다. 한밤중에 다시 눈을 떴다. 친구는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일어나 절박한 심정으로 내일 출근할 수 있도록 짐을 싸면서 썸남에게(사슴남 아니었음) SOS를 쳤다. 무엇이 친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사용하던 내 노트북을 열어보았다. 뭔가 보려는데 잘 안 보였다. 키보드에 물이 흥건했고 스탠드도 뜯어져 있었다. 다행히도 늦은 밤이지만 썸남은 깨어있었고 내가 그리로 갈 테니 제발 좀 재워달라는 문자를 보내려는 찰나 친구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자를 보내지 못한 채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친구에게 왜 그랬냐고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다. 그래도 힘을 내서 친구의 목덜미를 누르며 계속 윽박지르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와 그랬어! 왜 그랬어!" 겨우 작은 소리가 새어나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아 기분 더럽네 진짜. 이대로 다시 자면 또 가위 눌릴 것 같아서 구조를 요청하는 심정으로 피드에 휘갈겼다. 그나저나 그 와중에 다음날 출근복이랑 화장품을 챙겨서 도망가야겠다고 그 짐을 싸고 있던 나도 참 서글픈 직장인일세...ㅋㅋㅋㅋㅋㅋ 다시 생각해보니 웃기넼ㅋㅋㅋㅋㅋ


Dec 24

"아가씨, 나 말일까지만 일해요." 화장실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미화원 아주머니께서 불쑥 말씀하셨다. 늘 간드러진 목소리로 점심 맛있게 먹었냐는 말을 건네시던 분이다. 정확히 못 알아들었지만 뭔가 사측에 사정을 봐줄 것을 부탁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해서 관두신다고 했다. 떠나는 사람이 많은 연말이다. 부서 사람들 중 다섯이 특별 퇴직으로 은행을 떠났다. 이십 년씩 근속한 분들이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더해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고, 누군가 일은 하고 있나 싶게 조용한 사무실을 매일같이 청소해오던 아주머니도 떠나시려나 보다. 하지만 아주머니에게도 쥐고 나갈 "패키지"가 있을까? 3월 말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근로 의욕이 떨어지는 만큼 이직 욕구가 높아지는 2015년의 길목에서 한 새파란 통역사는 비어가는 자리를 쓸쓸히 느끼고 있다.


Dec 23

이민 2세대인 사슴남, 내가 무심코 뱉은 한국어를 듣고 깜짝 놀란다. "너 한국어로 말하니까 훨씬 발랄(playful)하구나!" 영어로 말할 때는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더 든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싸울 때마다 선생님이 학생 꾸짖는 것 같다고 기분 나빠하던 미국인 전애인들이 떠오른다... 별 수 있나, 말을 글로 배웠는데. 하지만 나는 한국어로 말할 때도 별로 발랄한 편은 아니다. 대체로 진지한 목소리와 말투에 사용하는 문장도 말보다는 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반대로 영어로 말하면 더 활달해지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무엇이 사실에 더 가까운지와는 상관 없이, 나에 대한 인상을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Dec 22

회사를 다니는지 도서관을 다니는지 분간이 안 되는 시즌 2가 시작되었다. 


Dec 17

회사에 요즘 일이 없어서 출근하기가 싫다고 징징대는 내게 친구가 기가 막힌 공식을 선물해줬다. "일-일=일." 크흐흐흐흐흑... 맞아아... 일이 없어도 일은 일이라고오으어어... 


Dec 17

어제 회식에서 통역할 때 빼먹은 문장들이 하나둘 생각나는 밤이다. (퇴근하고 기절해서 한참 잤더니만 잠이 안 온다.) 노트 없이 메모리로 통역하는 경우 나도 인간인지라 한두 문장이나 아이디어 하나 정도를 건너뛰기도 한다. 중요한 내용이라면 기를 쓰고 기억하려 했을 테니 혹시 기억이 안 나도 공백을 느끼고 원발화자에게 물어서라도 채워넣지만 공백조차 안 느껴질 때도 있다. 절대 의도하는 바가 아니라서 대화가 두 차례 정도 오간 뒤쯤 아차 하고 생각나는 게 대부분인데 아주 가끔은 다음날 생각나기도 한다. 주로 원문을 들으면서 통역할 때 이 표현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던 표현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그런데 내가 이 표현을 어제 썼던가 의문을 가졌다가 아차 내가 그 부분을 날려먹었구나 기억이 나는 식이다. 이런 자잘한 게 다음날에 갑자기 기억나다니 정말 인간의 뇌란 오묘하다- 고 생각하는 흔한 통역사의 일상이다.


Dec 16

"명란씨, 글 재주가 그렇게 좋은줄은 미처 몰랐네요 ㅎㅎ 좋은 선물 편지 감사해요. 제가 통역사를 잘 뽑았다는 ㅎㅎ 첨엔 좀 익숙지 않아서 어색해 했지만 통번역 실력이 일취월장 했다는 칭찬이 자자합니다. 더 좋은 통역사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동안 감사했고 담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수 있을거예요. 좋은 저녁시간 되시길~~" 저장용. / 어제 부서 사람들 모두에게 쿠키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달하고 나서부터 내 주변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카드에 쓴 내용에 따라 눈을 더 자주 맞춰주는 팀장님, 일부러라도 더 편하게 말을 걸어오는 부장님, 인턴은 커피를 사주고 실없는 소리도 하기 시작했고 파티션 너머에 앉은 과장님은 꽈배기를 나눠줬다. 이런 직접적인 답장을 보낸 사람은 한 명뿐이지만 이미 많은 이들에게서 답장을 받은 기분이다.


Dec 16

커다란 온기의 덩어리와 한 침대에서 잠드는 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차갑게 식은 어깨를 손으로 감싸 데우며 내 온도를 확인하곤 한다. 새벽녘에 홀로 잠에서 깰 때면 일부러 몸을 뒤척여보는 습관이 있다. 어스름 속 흐릿한 상으로 까만 눈동자가 돌아올 때, 그 조용한 기척에 안심이 된다. 


Dec 15

사슴남과 뉴욕타임즈에 소개된 심리학 실험 - 36 questions that lead to love - 을 해보는 중이다. 개인적인 질문 36개를 주고받는 건데 한 10개쯤 하고 나면 다음을 기약하는 식으로 야매로 하고 있다. 그 중에 What is your most treasured memory? 라는 질문이 있었다. 질문을 받았는데 특별한 기억이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몇 가지가 떠올랐는데 그 특별할 것 없는 기억들에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기억은, 내가 겪은 일임에도 내겐 기억에 없는데 남은 기억하고 있는 기억들이야.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은 내 삶의 순간을 상대방이 기억해줬다는 걸 알게 될 때 사랑받는 기분이 들어. 음 사실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런 기억이 많아. Lucky me." 


Dec 15

내가 연애를 일 년 쉴 거라고 했을 때 어째 아무도 안 믿어주더라니. (난 아직도 나를 몰라서 나름 믿었다...) 이 남자를 애인이라 지칭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아무튼 사슴 같은 애가 하나 내 생활에 들어왔다. 돌직구 던지기와 로맨틱하게 굴기를 기본 스킬로 탑재한 27세 피터팬과의 연애에 시동을 거는 참이다. 살다보니 여리여리 미소년형도 다 만나보고 그러는군... 근데 오타쿠를 만나면 같이 만화방을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언어장벽이 있네... Damn


Dec 14

"But before it's too late / I want to say / I love you." 


Dec 14

아프다고 뻥치고 (아주 뻥은 아니지만 못 나갈 정도는 아님) 회사를 쨌다. 기분 좋다아... 


Dec 11

이 기회에 지난 남자들의 별자리를 생각해봤다. 밝고 개구쟁이 같은 쌍둥이자리, 예민하고 세심한 문제의 뉴욕남 양자리, 입양되면서 서류 상 9월생이었지만 알고보니 황소자리였던 단단한 심성의 남자, 그 다음은 어찌니 노관심이었던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기억이 안 나고 (다이어리를 보면 알겠지만), 가장 최근은 티없이 맑은 워커홀릭 양자리. 아는 사람은 아는 술집 사장은 물고기. 나머지 데이트남들은 생일 따위 모르거나 기억이 나지 아니함. 큰 그림으로 봤을 때 나는 밝고 단순한 사람과 좀 어둡고 복잡한 사람을 번갈아 만나는 패턴이 있는데 (그렇게 고르는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어둡고 복잡한 사람 차례로, 놀랍게도 새 남자는 그쪽의 사람인 듯하다. 어찌될지 모르지만 혹시 오래 보게 되면 정말 스스로가 못말린다고 생각하게 될 거 같다.

SAMARIA 전갈에겐 순종하면 좋죠 ^_^ 


Dec 11

헐ㅋ 내 생활에 우연히 등장한 새 남자가 오늘 갑자기 내 생시를 물어보더니 출생차트를 보내왔다. 아스트롤로지를 아는 남자라니 신기하기 그지없네... 벙

moistmoire 오 ㅎㅎ 무슨자리 남잔가요

@moistmoire 21일에서 22일 넘어가는 자정에 태어난 전갈이라 합니다 ㅎㅎ


Dec 9, 2015

간밤에 간만에 아팠다. 아침부터 목이 조금 아팠지만 곧 낫겠거니 했는데 퇴근할 때가 되니 부은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한 시간 동시를 혼자 들어가서 한참 떠들어서 그런가 했지만 잠자리에 들 때가 되니 몸살 기운도 올라오고 심지어 아파서 잠을 자기 힘든 지경이 됐다. 별로 자주 아픈 편이 아니라서 마지막으로 호되게 앓은 게 지난 1월이었는데 오랜만에 아픔이라는 감각과 재회하니 아 이새끼역시넌정말구려. -라고 이를 악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런 밤이었다... 


Dec 2

여기는 내 일기장이라 보통은 꽤 적나라한 감정을 풀어놓는 곳이지만 아빠가 "소문내지 마라"라고 아침에 툭 던진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 결국은 아무 말도 쓸 수가 없다. 당신과 나 사이에 추억이 생겼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 나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추억 조각뿐이지요. 


Nov 29

동생에게서 편지를 읽었다는 답장이 매우 짧게 왔다. 그리고 동생은 엄마 아빠도 그 편지를 읽었다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럴 줄 알았어, 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엄마 아빠가 그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조금 겁이 났다. 약간의 짜증이 술렁이기도 했다. 그런데 방금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짧은 연락이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방어했지만 연락이 끝나갈 즈음 나는 문자 속의 나와는 달리 엉엉 울고 있었다. 동생에게 마음을 전한 것과는 별개로, 그 편지가 엄마 아빠에게 읽힌 것과는 별개로, 엄마가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이 엄마에게 전달된 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진심을 말할 때 그러듯, 코가 시큰해질 때까지 울고 말았다. 언제쯤 울지 않고 진심을 말할 수 있게 될까? 언제나 진심을 말할 때는 필요 이상으로 눈물이 나고, 그건 꼭 슬퍼서는 아니다. 아. 그리고 굉장히 짧은 답을 보낸 동생이 사실은 이불이 다 젖을만큼 많이 울면서 편지를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자매가 이렇게 비슷하다.


Nov 28

옷을 다 입고 보니 스타킹이 없는데 영화 시간에 맞추러면 옷 갈아입긴 또 빠듯해서, 치마 밑단까지 덮는 기장의 두꺼운 겨울 코트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까만 워커 차림으로 지하철 편의점까지 걸어갔다. 거울을 보니 정말 영화에서처럼 허리띠를 풀고 코트를 열어젖히기만 하면 알몸이 나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여름에는 아무렇지 않은 맨다리가 겨울에는 이다지도 야하게 느껴지다니. (그리고 춥게.) 그리고 사이렌 오더 처음 나왔을 때 뭐 별 게 다 있네 했는데 써보니 뭬우 편하다. 근데 나는 지하철 안에서 주문해서 바로 받아가고 싶은데 500m 안 매장만 주문 가능하고 지하철이 빠르게 움직여서 위치 감지가 빨리 안 되는 건 좀 개선되면 좋겠음. 결국 내리고 나서야 주문이 들어갔다.


Nov 27

오늘 선배가 휴가라 없어서 매우 갑자기 핸드폰으로 하는 콜 끌려갔는데 너무 재밌었다. 페이스도 빠르고 실제로 오해가 풀리는 걸 목격했고 덤으로 아이폰 스피커폰 음질이 삼발이 콜기계 음질보다 훨씬 좋음(...)! 일하니까 재밌다아.


Nov 27

혼자 지낼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집에서 혼자 영화보고 책 읽고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물론 동생이랑 예전에 한 달 지내는 동안 맥주랑 콘초코 먹으면서 별그대 보던 재미도 있었지만 그냥 다른 재미고 다른 소중함인 거지. / 회사에서 책을 읽네 글을 쓰네 소리를 올리자마자 다음 날 번역 폭탄을 맞아서 오늘까지 열심히 번역노동을 했다. 마스터플래닝이라고, 사무실 업무환경을 설계할 때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을 번역했는데 용어가 너무 생소해서 좌절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다 끝내니 뿌듯했다. 그건 그거고, 요즘 한창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부서 절반이 퇴사 신청을 한 모양이라 회사 분위기는 영 팍팍하다. 꼭 어둡기만 한 건 아니고 묘한 설렘도 떠돌고 있지만, 아무튼 아무도 일이 손에 잡히진 않는 모양. /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다. (엌 사진을 올리면 코멘트가 본문에 바로 이어지지 않지, 참.) 당연하다는 듯 꼭 맞는 그의 손이 그리운 나날. 등 뒤에 서서 그의 이마에, 볼에 키스하고 싶은 나날. 그의 웃음이, 시선이, 올라간 입꼬리가, 옆모습이, 감은 눈이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나날. 말로 하기도 힘든 나날, 말을 해야만 하는 나날.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Nov 25

간만에 자위를 좀 격하게(?) 했기로서니 배근육이 땡겨서야 누구 꼬심직한 남자가 나타난들 좋은 섹스를 할 수 있겠냐며. 운동을 좀 해야겠다. 


Nov 24

이번 주 금주를 잘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내일 맥캘란 시음행사를 가지... 난 안 될 거야 아마... 


Nov 23

부산에 가기 전에 동생에게 긴 편지를 썼다. 부산에 있을 때 줬더라면 아마 같이 사는 것에 대해 긴 얘기를 나눴을 수도 있지만 여자저차해서 오늘에서야 편지를 부쳤으니 동생 손에는 하루이틀이 걸려야 도착할 것이다. 편지를 주지 않아서 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대신 나는 전하지 못한 말을 속에 품고 동생과 뒤엉켜 잠드는 쪽을 택했다. 누가 먼저 세수를 하러갈지 가위바위보까지 하고는 결국은 서로 미루다가 둘 다 씻지 않고 불도 못 끈 채 잠든 다음날 아침 나는 개운함을 느꼈다. 이렇게 따스한데,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거지. 생각해보면 부산에 다녀오는 건 언제나 그랬다. 가기 전에는 피곤하고 면접을 보러 가는 양 부담스럽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피곤하고 면접을 보는 것 같은 면도 있다), 그래도 도착하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그 따스함에 잘 왔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것. 돌아갈 때면 늘 아쉽고 목이 뜨끈해지도록 그리운 것. 어쩌면 당장 이사를 가지 않고 두어 달 정도 지금의 좁은 원룸에 동생이 얹혀사는 형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이젠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떠나면 떠날 때가 되어 떠나는 것일 테고 같이 살아지면 같이 사는 거고 아니면 또 때가 아닌 거겠지. 내 생활이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선을 긋고 악착같이 매달리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 동생이 무척 보고싶다.


Nov 20

ㅋㅋ... 택배 부칠 게 있어서 잠시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상무님와 딱 마주쳤다. 어디 갔다 오냐는 말에 어버버 대답했는데 내가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놀라서 어버버하는 게 분명한 말투로 어버버거려서 엄청 웃겼을 거 같다. 뭐랄까 내가 담배 피우는 나이 지긋한 부장이라면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매우 태연하게 말했을 거 같은데! 


Nov 18

한동안 퇴근하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하도 회사에서 책을 읽으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치를 내려놓으니 할 일 없는 회사만큼 딴짓 안 하고 책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없다. 하아 그래도 일 하 고 싶 다 아 아 아- 며칠 전에 시키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회사원을 비난하는 말을 들었다. 그게 나다. 그런데 일감이 없는데 통번역을 어떻게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지, 그 아이디어 따윈 내게 없다. 이 업무의 특성이 워낙 그래서 별 수 없는 건지, 포기해버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 이게 내 업무인 양. 

vecaholic 우붐도 글 써서 독립출판을!


Nov 18

내 불쌍한 간... 주인 잘못 만나 무슨 고생이냐... 


Nov 17

뭔놈의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근무 시간에만 이틀에 한 권씩 책을 읽어치울 수 있는 거냐...


Nov 17

전애인이 내려주던 커피가 생각난다. 산다 아저씨 커피콩으로 신선하게 내려주던 그 커피 정말 좋아했는데. 


Nov 16

자기는 술 아니면 여자 때문에 망할 거라는 3월 17일 생 물고기자리 집 앞 술집 사장. 여전히 얘는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거울을 보고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우리 진짜 노답이다 그쟈. 


Nov 16

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너의 머리를 동그랗게 감싸안고 너를 달래고 있었다. 너 아프면 우리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고개를 내려 네 앳된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내가 사랑하는 얼굴. 그런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왔지? 비행기를 탔던가? 환전은 했던가? 어이없게도 꿈은 디테일에 약해서 금방 꿈인 것을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Nov 13

나는 라벤더향을 별로 안 좋아한다아아아!!! -라벤더항 핸드크림 두 번 연속 선물받은 자의 외침- 


Nov 13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져서 저녁 약속을 줄였고(아, 까먹을까봐 적어놓는데, 한 달에 한 번 사촌을 만날 때 같은 책을 읽고 만나기로 하면 좋겠다. 얘기해봐야지.), 어제는 비록 몇 잔 마셨지만 대체로 금주의 기조를 이어가다보니 혼자 무언가를 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다. (술을 마시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으면 이런 느낌의 발견은 잘 안 된다.) 매일같이 머리를 감고 얼굴에 뭔가를 바르는 나. 여러 번에 나누어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나. 팟캐스트를 듣다가 혼자 웃는 걸 좋아하는 나.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흔들다가 요즘은 몸이 많이 무거워졌구나 느끼고, 이불을 가지런히 펴고 속에 파고들어서 책을 펼치는 나. 이 방 안에 나는 철저히 혼자여야 하고, 아주 작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신경이 곤두선다. 나는 이런 감각으로 수 년을 살아온 거다. 지금은 익숙해져 좋아하게 된 이 감각을 이만큼 길들이기까지 여러 방식으로 마음 고생을 했다. 동생이 서울에 오면 당연히 나와 같이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이 일그러졌다. 너는 왜 그런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런 질투가 가끔 번쩍이며 지나가곤 했다. 언제부턴가 가족은 내게 한바탕 쇼를 하고 오는 방문지가 되어 있었다.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짧은 며칠의 시간 동안은 많이 웃을 것,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일 것, 감정 과잉을 보이지 말 것. 나는 가장 어린 면접관과 함께 살게 될 터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아이의 입장에서도 나는 자기가 열 세 살 때부터 집에 없었던 가깝고도 먼 언니이자 방문자이지 않았을까? 가족들은 가끔 보는 내 앞에서 면접을 보듯 무언가를 연기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들의 삶에서 있었던 어두운 이야기를 많이 놓쳤다. 나의 방문은 언제나 특별한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사실, 나는 그쪽의 이야기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이번 동거 결정을 계기로 미루어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갔으면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큰 것을 기억할 때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서운함과 슬픔을 떠올렸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그래도 그 덕분에 할머니에게 개인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 할머니가 그저 먼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 참 고마운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이 살아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애착 말이다. 변화를 맞고 있는 순간에는 많은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결국 나중에 나는 동생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 것이 고마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사를 하는 과정이나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분명히 마찰이 많겠지만 때로는 그런 마찰이 있어야 나도 내 속을 발견할 수 있고 그래야 거기에 대해 얘기도 나눌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좀 싸우면 어떤가. 동생이 열 세 살, 내가 열 일곱 살일 때부터 우리는 싸울 기회도 별로 없었는데. 화를 내며 싸운 이후에 어떻게 화해를 하면 좋을지 상상도 잘 안 될 정도로. 생각과 감정을 좀 더 정리해서 동생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그리고 덧붙여야지. 우리가 가장 높이 날을 세울 때는, 우리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가장 약할 때라고.



Nov 12

멍청하면 일단 자기가 멍청한지조차 모르는 것이고 당연히 멍청함을 숨기거나 포장을 해야겠단 생각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멍청이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멍청이와 일하는 자의 독백- ...그걸 알면 멍청이가 아니지. 암요.


Nov 11

평행우주에서 나는 지금 당신 곁에 누워있을까요.


Nov 11

여러 통역사가 거쳐간 부서의 신입 통역사로 들어왔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지난 몇 개월 간 다른 통역사들은 어떻게 했을까를 많이 생각했다. 아무도 내게 굳이 말해주지 않았고 지적하지도 않은 내용임에도. 그런데 지나간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통역을 했을까? 콜 상대방 발언이 몇 차례 길어졌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을 길게 하면 통역이 너무 힘들지 않아요? 우리 부서에서는 거의 한 문장씩 하는데."라고 웃으며 얘기하던 다른 부서 사람과의 엘리베이터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중요한 건 남이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다. 내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내 기준이 있어야 하고, 필요할 때는 그 방식을 주장해서 기존 방식을 바꿀 수도 있는 거였다. 


Nov 10

요즘 가끔 니가 뭔데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냐고 소리지르던 네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많은 사과를 받았는데 사실 나도 사과할 일이 많다. 그리고 이어 생각한다. 나를 시들게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제외하면 너뿐이구나. 나는 낙엽과 함께 시들고 있다. 해는 너무 빨리 지고 일상은 단조롭고 가장 역동적으로 넘실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의 불안과 그리움뿐이다. 다시는 피어나지 않을 잎싹처럼 안락하게 떨어져내리고 싶다.


Nov 9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12월부터 영락없이 동생년과 동거다 앗쌀라말라이쿰... 하 욕하고 싶다 소리질러!!!!!!!!!!!!!! 


Nov 9 

목소리로 내밀한 불안을 마지막으로 고백한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목소리로 말해야 안아줄 수 있는 것일 텐데. SNS 상에 올려 하트를 기다리는 것으로는 되지 않을 텐데. 그러나 목소리로 말할 상황을 만나는 것도 만드는 것도 힘겹게 되어버렸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걸 제일 모르겠다. / 수화기 너머의 온기가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게 될까 두려워서 전화조차 하지 못하는 상대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 이번 주는 술을 좀 끊어봐야겠다. 진심으로.


Nov 9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빠져나가고 싶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변화의 전망들이 닥쳐온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나는 겁이 난다. 나는 화가 난다. 나는 겁이 나서 화가 난다. 그리고 무척 슬프다. 겁이 난다고 화를 내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철갑을 휘두르고 의연한 표정으로 버틸 수 있어야 어른인 거라고 생각도 해보고 이 심정을 멀찍이서 보고 분석한 다음 세련된 언어로 나를 슬프게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도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빗소리와 Family of the Year의 Hero가 섞여서 울리고 있는 익숙한 혼자만의 방에서 누워있자니 생각은 마비되고 아주 깊은 우울만이 내 등을 감싼다. 지금 나는 분명히 두려워하고 있다. 화가 나는 것도, 귀찮다는 말로 상황을 외면하려 드는 것도 모두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두려움 앞에 같이 떨어줄 사람, 그렇게 오래도록 같이 떨어줄 거라는 착각 속에서 잠깐의 안온함을 찾게 해주는 사람, 그러면서도 사실 내 두려움에 반드시 같이 휩쓸려갈만큼 가깝지는 않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 매달리기 위해 나는 연애를 해왔는지 모른다. 두려움을 그런 방식으로 잊어봤자 두려움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가장 어리석은 방식으로 잊혀질 뿐이지만, 그런 모르핀을 갈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번엔 제정신으로 홀로 버텨야만 할 것 같지만.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연애나 사랑을 이야기할 때 착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는 끝을 맺을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Nov 8

행복한 순간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것과는 별개로 사는 게 귀찮아 죽겠을 때가 있다. 번잡스러운 삶 같으니라고. 


Nov 6

이직의 희망을 다지기 위해 출근길에 학교 홈페이지 채용공고란에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아이디(=학번)가 아주 깔끔하게 기억이 안 난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정보, 순간, 사람이 자주 그러하듯이. 


Nov 5

몇 주 전 부산에 갔을 때 아빠가 진짜 화내시는 모습을 거의 20년 만에 봤다. 나도 덩달아 화가 났다. 나갈 채비를 하시는 아빠 등에다 대고 "여기 더 있기 싫어요. 오늘 저녁 기차로 올라갈게요!"라고 외치고 싶은 걸 겨우 참았을 만큼. 그 대신 내뱉은 말은 "난 할 말 없어요."였다. 아빠가 나가시고, 엄마가 네가 할 말이 없을 리 없다며 차분하게 얘기해보라시는데 계속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연 순간 내가 내뱉은 첫 마디에 나조차 놀랐다. "저 사람 누구야!"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화가 난 게 아니라 놀랐던 거였다. 아빠의 그런 모습이 너무 낯설고, 아빠가 늙어가는 것이 슬펐던 거였다. 화로 감추고 싶었던 슬픔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아무것도 억누를 수 없어서 엉엉 한참을 울었다. 그제서야 내게 아빠를 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 주말에 엄마에게서 연락이 와서 요즘 엄마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조금 들었다. / 오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가 오늘 서울 올라가실 텐데 좋은 일로 가시는 게 아니야. 아빠가 사실 요즘 많이 힘드시다. 아니 늘 힘드시지. 네가 힘이 되어 드리렴. 아빠에게 문자를 했더니 전화가 왔다. "괜찮다. 일하는 게 원래 그렇지." 회사에서 아빠의 목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같이 일하는 부장 아저씨들을 보며 아빠를 떠올리긴 했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과는 달랐다. 아빠는 지금의 목소리가 될 때까지 몇 년이고 이런 곳에서 일을 했구나. 아빠와 통화를 하는 내 목소리는 딸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서 한번도 쓴 적이 없는 목소리. 나는 한없이 어린 직원이 된 기분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 여행지에서 부모님께 쓴 카드에 슬쩍 내비친 어린 날의 상처 이야기에, 엄마는 "네게 그런 깊은 아픔이 되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글로 쓰고 남에게 여러 톤으로 얘기했으면서도 단 한번도 엄마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냥 뭘 좀 물어보려는 건 줄 알았는데 몇 마디 안 가서 울먹이기 시작하는 게 들렸다. 막막함 앞에서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내게 겨우 전화를 해서는 이렇게 전화해서 미안하다니. 한참을 얘기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동생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약속을 취소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나도 평생 도망만 치며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문자로 고백했다. 동생은 언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줄 몰랐다고 우리가 왜 이렇게 닮았느냐고 놀라워했다. 나도 놀랐다. 동생과 내가 정말 다르다고만 늘 생각했는데 소름끼치게 비슷한 면을 발견할 때가 있다. 사실 오늘의 전화는 마치 내 얘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반쯤 집에서 나와 살았고 대학 때 서울에 온 이후로 쭉 혼자 살고 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돈이 궁할 일도 없으니 가족이 아쉬운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그냥 가끔 본가를 방문해, 지금까지의 마음의 빚을 갚으려는 양 웃음을 뿌리는 것 정도로 내 몫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나는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가족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면서도, 마치 그렇게 생각하는 양 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만하면 행복해.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 24시간씩 꼬박꼬박 살아내는 와중에, 확신할 수 있고 안정적인 행복이란 게 가능하다고 믿는 건 대체 무슨 어리석은 마음인가. 지금까지 '가족'을 행복하기 위해 애쓰는 역할은 부모님이 도맡아 해오셨다. 그 덕분에 나는 그런 역할이 필요한지도 모르고도 안락하게 잘 살았다. 하지만 사실 앞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길 가능성이 높은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 시간을 만드는 데는 나도 힘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Nov 4

어떤 행복의 기억이 지금 나의 시간 사이를 서늘하게 가를 때, 종잇장보다도 얇아진 그 행복의 옆날이 현재의 어깨 너머로 아른거릴 때 - 바로 그런 때, 지금의 그리움도 언젠가 서늘한 옆날로 남을 것임에 안도하게 된다. 


Nov 4

회사에서 들어온 업무 하나가 정말 오지게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고 하염없이 미루다 결국 집까지 들고 와서 지금까지 미뤘다. (나 뭐하는 짓이니.) 이제 드디어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러고보니 이렇게 집에서 각 잡고 앉은 게 얼마만인가 싶다. (근데 나 이럼 언제 자니.) / 번역 의뢰가 하나 들어왔는데 졸업 전에 하던 요율이 너무 앵벌이 수준이었어서 두 배를 불러봤다. 안 되면 그만이라는 마음이었는데 덥썩 무니까 왠지 후회가 밀려온다... 세 배 부를 걸... (?) 사실 두 배를 해도 돈은 별로 안 된다마는 요즘 회사일은 재미가 없어 죽겠고 사람도 만나기 싫어서 여기서 재미를 찾아볼 수 있을까 희망을 거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욕하면서 생기를 좀 찾고 싶다. (변탠가.)


Nov 4

사랑을 거짓으로 꾸며내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찬란한가.


Nov 3

간만에 콧김에 술 냄새가 나지 않는 상태이자 공복으로, 얼굴에는 벼르던 마스크팩을 한 뒤 밤까지 꾸덕하게 바르고 발에도 한참만에 크림을 꼼꼼히 발라준 뒤 수면양말을 신고 침대에 홀로 누웠다. 불을 끄고 음악도 끄고 깔아야지 생각만 하던 이불 두 겹을 겹쳐 덮고,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사소하지만 벼르던 집안일을 몇 가지 해냈고 군것질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도 몇 번이나 이긴 밤. 부족한 게 많지만 혼자 잠드는 것이 만족스러운 밤이다.


Nov 1

이틀을 꼬박 함께 있던 친구가 떠나고 간만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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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데이&인스타  |  2016. 3. 12. 22:27




Oct 28

옆 부서에 여자 직원 또는 인턴을 새로 여럿 채용한 건지 요즘 화장실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나 정말 소위 "여대생 말투" 안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 분위기도. 보고만 있어도 짜증이 나다니 성격이 더 까칠해지고 있는 탓인지 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선배가 너무 싸늘해서 괴로웠는데 이제는 저렇게 친해질 바에는 싸늘한 사람이랑 일하는 게 낫단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깨어있는 시간의 반을 보내는 곳에서 인간적 교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숨막혔지만, 사람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이런 식으로 숨막히는 게 낫다. 갈수록 까탈스러워지는 나를 견디느라 내가 고생이 많다. 말투와 목소리는 그 사람을 무엇보다 빠르고 가감없이 드러낸다. 또는 그 사람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를.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Oct 27

번역 지원 요청이 들어와서 잠시 지하2층 서고에 다녀왔다. 끔찍했다. 5층에서 주변 빌딩들에 가려 조막만해진 하늘만 보며 일하는 게 갑갑하다 생각했는데 지하의 갑갑함은 차원이 달랐다. 그곳에는 공기도 정체되어 있는 듯했다. 입사원서 쓰던 시절 미군기지 이전사업단은 들어가면 사무실이 지하라는 소문을 듣고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는데 오, 절대.

 

Oct 26

진짜가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 진심이 아니면 펜을 들고 싶지 않고, 내가 충분히 마음을 쏟을 수 없다면 차라리 몰랐다고 하고 싶다. 무심코 말을 던지느니 말을 하지 않는다. 마음에 없는 말을 던질 때 가장 괴롭고 마음을 짜낼 때 가장 지친다. / 불편한 사람들을 연속으로 만나고 소개팅까지 했더니 끔찍하게 사람이 보기 싫어져서 취소할 수 있는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그리고 한숨 돌리면서 인턴을 보러 갔다. 어제 본 키 큰 세 여자도 그렇고, 나이듦과 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을 연속으로 봤다. 영화는 특정 캐릭터에게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잘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충분히 웃겼고 로버트 드 니로의 표정들은 무척 사랑스러웠다. 스무살에 아내를 만나 47년을 함께 했다는 대사에 눈물이 났다. 요즘은 오랜 시간 함께한다, 는 구상에 크게 마음이 움직이는 시절이다. 출입문이 높디높은 빌딩,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 그 안에서 필요한 과중한 업무와 약간의 자아도취, 빠른 페이스를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업무 환경 같은 것들을 보면서 반쯤은 동경하는 마음과 반쯤은 경멸하는 마음이 들었고, 또 반쯤은 그런 삶을 사는 나를 그려보고 또 반쯤은 내가 일흔 살 노인보다도 설렘을 갈구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설렘을 갈구하지 않는 마음에는, 그런 식의 설렘을 얻기 위해 평온한 나의 일상을 희생해야 한다면 나는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는 마음과, 설렘에 수반되는 불안정함이나 설렘 특유의 부주의함과 어설픔이 못 견디게 부끄럽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진심만을 원하는 사람의 함정은 진심이 아닌 것 앞에서는 조금의 행동조차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키 큰 세 여자의 세 사람, 26세와 52, 92세의 여자 A의 대사를 들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우선 흐려져가는 기억이었다. 이십대의 나레이션을 듣고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대답하는 오십대의 그녀와는 달리 구십대의 그녀는 그런 일이 있었던가, 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라는 대답을 자주 했다. 언젠가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기억도 못할 지금의 슬픔과 고통에 그렇게 깊이 빠져들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홀가분한 구석도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그 미래를 살아낸 사람의 여유를 한 무대에서 보는 것도 아주 큰 울림이 있는 경험이었다. 이십대의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를 궁금해하는 얼굴에 대고 "허리가 똑 부러진단다!"라며, "암 그렇고말고" 라며 수줍게 호호 웃으며 공모하는 오십대와 구십대의 그녀는 이십대의 그녀에게는 얼마나 낯선 타인인가 말이다. 하지만 두 여자에게 허리가 부러지는 사고는 이미 벌어진 일. 때로 웃지 않으면, 아무리 괴롭더라도 받아들이고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일. 살기로 결정한 이상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손 쓸 수 없는 과거의 일. 그 여유로운 웃음을, 오십대의 나로부터 (구십대는 사실 아직 감이 잘 안 온다.) 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이미 꽤 많은 시간을 살아낸 것 같고 앞으로 새로운 일은 없을 것만 같은데 사실 나는 너무 어리고 고작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고 세 나이 중 가장 공감할 수 없었던 26세의 그녀에 가장 가까운 나이고-사실 딱 그 나이고- 내가 그녀에게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의 일부는 내게 그녀의 모습이 너무 많이 있어서일 거라는 잔인한 현실이 내 가슴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Oct 24

친구 결혼식 외국인 하객 (namely 신랑측 가족) 챙기러 아침 일찍 길 나서는 중인데 이게 뭐라고 내가 다 떨리냐... 하 결혼이라니이이이 결혼식이라니이이이이 이런큰일에내가도움을주러가고있다니이이이이이 전혀 알지 못하는 가족을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만나는 것도 처음 있는 일...

 

Oct 24

떠나온 것은 나인데 어째서 늘 떠나보낸 기분이 드는지

 

Oct 21

문득 오늘 날짜를 보니 월급날이었다. 0원이 찍힌 통장 때문에 동동거리며 입금을 기다리던 시절과는, 첫 월급이 벌써 들어왔으려나 설레며 출근 전에 잔액을 조회해보던 시절과도, 퍽 다른 느낌의 날이다. 지난 번 월급이 들어온 게 뉴욕으로 떠나던 날이었는데 그 사이에 하도 폭풍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한참 전인 것처럼 느껴진다. 살면서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은 돈을 쓴 한 달인 듯도 하고. 그런데도 월급날이 되었는지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수중에 돈이 있다는 감각이 낯설지조차 않은 게 낯설다. 감각은 강력하고 지배적이지만 속이기 쉽고 변덕이 심하니 기록해야 한다. 감각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감각을 적지 않으면 삶의 이유가 뭔지, 삶이 뭔지 불분명해진다. 요즘 일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처음부터 그랬다고 착각할 뻔했다. 피드를 죽 읽어내려가다가 처음의 마음을 읽었다. 처음 출근할 때, 처음 면접 볼 때, 처음 요율 협의를 할 때, 처음 외부 번역을 맡을 때, 처음 돈을 받고 통역할 때, 처음 알바 출근할 때, 그런 처음의 마음들. 나는 이 일을 좋아했다. 무엇이 변했는지 짚어내야 한다.

 

Oct 21

어제 모종의 이유로 웬 처음 만난 남자와 맨오브라만차를 봤는데 나는 공연에 몰입해있는 순간을 빼놓고는 온통 그를 생각할 뿐이었다. Sleep No More 같이 배우랑 온 건물을 뛰어다니는 몰입형 공연 말고 얌전히 앉아서 보는 뮤지컬이나 연극도 같이 하나 볼 걸. 그가 옆에 앉아있는 세 시간은 어땠을까, 그와 시시덕거리는 인터미션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만 한참 했다. 다시 집 앞 펍으로 귀가하고 독주를 주문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그와 다시 이별하는 중임을 알았다. 이별이 나쁜 것은 아니고 이별의 과정을 모두 밟는 것은 중요하다. 치열하게 그리워하기만 해서는 긴 시간을 버틸 수 없으므로.

우붐_부움 어제 마신 건 잭다니엘, 우드포드 리저브 (버번), 비스뀌 (꼬냑) 였는데 아 뭔가 묘하게 속이 좋다...

vecaholic 내가 듣는 팟캐스트에 나오는 사람 가훈이 '주식 하지 말자, 섞어 먹지 말자' ......

@vecaholic 역시 섞어마신 것이 패착... 그 팟캐스트는 무엇입니까

vecaholic @ouboum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 나오는 '김도인'

 

Oct 12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빡치는 번역은 멍청한 애가 쓴 글을 번역하는 것이다. 어려운 글은 좌절스럽지 이렇게 빡치진 않아... 아 진짜 너 제발 좀.

pink lotus 없는 문맥이나 논리를 정리하는 페이는 따로 두 배로 줘야해요...

@pink_lotus 네 고통이 어마어마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요..._

 

Oct 8

많이 좋아해서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던 책이 있는데 이번에 또 선물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주문하려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나는 이 책이 한 5만원 정도로 꽤 비싸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딱 그 반값이었다. 예전 내 씀씀이는 지금과 달랐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Oct 5

I feel fucked up enough today so don't mess with me.

 

Oct 2

뉴욕 갔다 와서 뭔가 허한지 뭔가 자꾸 산다 ~_~) 안 먹던 디저트를 먹고 연극표와 영화표를 여러 장 끊었다. 어차피 다시 볼 날 기약도 없는데 그만 보고 싶어 해야지. 이제 그만하자, 그만.

 

Oct 1

그와의 마지막 섹스는 6분이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택시 예약 시간에 맞춰 설정해놓은 타이머를 발견하고 한동안 이 흔적은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Sep 25

당신이 그리워지는 새벽 5시반, .

 

Sep 20

I smoke to impress.

 

Sep 19

낮술 먹으면서 고연전(...) 편파중계 시청했다. 아무 걱정 없이 낮술 하니 좋아서 돌 것 같다. 내가 죽기 전에 술을 싫어하게 되는 순간이 오긴 할까?

 

Sep 19

(지금 얼마나 중증이냐면...) 어제 친구를 만나서 뉴욕 갈 때 기내수화물만 가져갈 예정이라며 어차피 캐리어도 작은 것밖에 없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자기 걸 빌려주겠노라 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사실 수화물 찾을 시간도 아깝다고 털어놓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너를 만나고 싶어

 

Sep 14

그만 설레고 싶다. 너무 간질간질해서 괴로워. 이렇게까지 감상적이어지고 싶진 않았는데 멈출 수가 있어야지. 그가 선물했던 옷을 꺼냈다. 한번도 입은 모습을 직접 보여준 적이 없는데도 이미 낡아버린 옷을. 어제는 편지함을 벌컥 열어서 그의 편지를 찾았다. 다른 편지들과 섞이지 않게 따로 담아둔 뭉치를 집어들자마자 그 두께에 헉 소리가 났다. 가장 앞의 편지는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 받은 것이었다. 그 편지를 읽다가, 처음 읽을 때도 남기지 않은 눈물 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이제 일주일.

 

Sep 14

금요일에 퇴근 직전에 상무님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하 통역사, 미안한데 거지떨거지는 영어로 뭐라고 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덕분에 한 30분은 웃은 듯... 주말이라 회사 기억 셧다운 하고 있었는데 출근하니 다시 기억나네ㅋㅋㅋ

 

Sep 13

지금 나의 마음의 이미지는,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소녀의 드레스자락. 보고 싶은 마음이 새어나가지 않게 드레스자락이 펄럭여버리지 않게 꽁꽁 붙들고서 둥둥 떠 있다.

 

Sep 10

미친 번역을 드디어 마쳤고 이제 선배가 번역한 분량과 용어 통일하고 양식 맞추는 일만 남았다. 하 오늘 나한테 일 많이 주는 팀장님도 휴가니 오늘 파이어 해서 마무리해버려야지. 너 때문에 요즘 내가 힘이 없어 망할 번역아.

 

Sep 9

지금 사흘 째 회사 와서 (통역 없고) 번역만 하고 있는데 정말 이 번역을 집앞 카페에서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Sep 8

아침에 알람 세 개를 연이어 끄고 이것만 다 듣고 일어나야지 하며 White Flag를 듣다가 중간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옛 다이어리들을 뒤졌다. 그 해 여름 나는 너를 만난 적이 정말 없었을까? 그리고 나는 널 며칠이나 "만났을까"? 그 해 여름 나는 정말 너를 만나지 않았고, 너와 보낸 여름날은 고작 24일이었다. 4년 전 일이다.

모아레 뭐죠 이건 뭔가 영화의 도입분데!

우붐_부움 ㅎㅎ 영화를 찍고 돌아오지요! :D

모아레 @ouboum 2주후! 개봉임박!

 

Sep 8

페북에 "또 다른 '바바리맨'(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64)"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어떤 아는 사람이 공감의 댓글을 단 게 떴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을까. 자신도 며칠 전 한 남자에게 같은 짓을 했다는 걸. 그녀가 그 남자의 몸에 대해 지적질을 해대는 방식을 보고 나는 구역질마저 났다는 걸.

 

Sep 7

2주 뒤 이 시간이면 뉴욕행 비행기에 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제 맥주를 마시면서, 마음의 속도를 손이 따라잡지 못해 글씨가 마구 엉켜버린 편지를 썼다. 그리고 오늘 네게 부쳤다. 그 편지는 2-3주면 도착한다고 했다. 너는 언제 그 편지를 받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네가 너무 보고 싶어진다. 2주 뒤에, 만나요.

 

Sep 1

회사 다니면서 운동을 싸그리 접어서 이제 운동 쉰 지 어언 5개월. 몸에 반응이 온다. 요즘 자주 기절하듯 쓰러져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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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데이&인스타  |  2015. 11. 28. 20:50




Aug 27

내 안의 노래가 죽은 것 같은 하루였다. 바른 생활은 건강하지만 진이 빠진다. 평온하지만 피곤하다.

 

Aug 25           

제발 좀 한국어를 해라. 아니 인간의 말을 하라고. 제발 좀. 통역사로 근무하면서 돈을 받고 있지만 내 월급의 8할은 멍청함을 견디는 대가로 받는 것 같다.

 

Aug 23

누구도 끊어내지 않는다. 누구와도 언제라도 끝난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누구와도 새삼스레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다.

 

Aug 20

이번 주에 술을 하나도 안 마시고 있다. (돈이 없어서.) 디톡스가 따로 없구만. 안 마시니 또 살 만하네.

 

Aug 19

스케줄러 정리하는데 주말마다 일정이 빡빡하다. 이번주는 동생이 서울 올라와서 사촌동생이랑 셋이 볼 거고, 다음주는 세종시, 그 다음 부산, 그 다음 진주, 한 주 쉬고나서 뉴욕(!), 또 한 주 겨우 쉬고 다낭으로... 소개팅 제안이 가끔 들어오는데 전애인을 잘 정리했느냐, 새 사람 만날 준비가 되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심 시간이 없고 나 사는 게 재밌어 죽겠어서 만나볼 생각이 안 든다.

 

Aug 18

그 문제의 게이 친구 오늘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는데 집에 와 보니 일전에 나한테 줄까 물어봤던 그림 뒷면에 커다랗게 편지를 써서 우리집 우편함 위에 두고 갔다. 어떻게 이렇게 깜찍한 짓을 할 생각을 다 한 거니 너. 잘 가. 또 만나.

 

Aug 18

최근에 읽은 책을 선물하고 있다.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친구에게는 The Sense of an Ending(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밀롱가 DJ 데뷔하는 친구에게는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단골 술집에는 골리앗, 너 좋아한 적 없어, 그녀의 완벽한 하루, 수상한 연립주택, Bright-Sided(긍정의 배신), 미움받을 용기, 한 달 후 일 년 후를 갖다줬다.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이고지고 있어 뭐하나 싶어서 눈 질끈 감고 주기 시작하니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그은 밑줄을 반가워하는 말 한 마디, 이렇게 좋은 책을 줘도 되냐는 인사 한 마디가 무척 기쁘다. 그리고 덕분에 책을 읽을 동기가 더 생긴 느낌.

 

Aug 17

같은 부서 선배 통역사를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로 취급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때때로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러는 나도 오늘 인턴한테 인사 안 하고 나왔다는 거.

 

Aug 13

아주 높은 곳에서 부들부들 떨며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는 꿈은 그리 낯선 꿈은 아니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함과 동시에 나는 괜찮아, 떨어지지 않을 거야 라는 확신을 느낀다. 그런데 어젯밤 꿈에서는 그렇게 몇 차례 옮겨다니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저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하 뭐 별 수 없지 라고 1초 정도 생각했다가,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 걸 몰라 난 누구에게도 구조요청을 할 수 없어 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면서 소리를 한번 크게 지른 뒤 누구에게도 내 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란 절망감에 번쩍 눈을 떴다.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귀엽게 그려내준 인사이드 아웃에 매우 감사한 밤이었다.

 

Aug 13

오늘 내일 선배 휴가라서 선배가 들어갈 콜을 대신 들어갔는데 내가 발언(통역)하니까 상대쪽에서 선배의 이름을 불렀다. 물론 몇 개월 째 같은 시간에 콜 하는 멤버고 얼굴도 두어 번 본 사람이 있으니 그렇겠지만 거기에 선배 이름이 영어라는 점도 (미국 국적임) 한몫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이름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지라 영어로 얘기할 때면 늘 ''이라는 이름을 써왔는데 사실 이게 완전 영어 이름은 아닌지라 생경해하는 사람이 많다. ... 나도 영어 이름을 하나 만들면 대면 통역 아니라 콜에서도 이름을 불릴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예전에 추천 받은 이름으로는 Erin이 있다.

 

Aug 13

2008년에 수업 들을 때만 해도 2015년에 교수님과 우연히 같은 술집 단골이 되어 헤어질 때 비주를 하는 사이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Aug 10

워낙 얘는 게이니까 레이더에서 제외!의 마음으로 오래 봐서 그런가 잠을 잔 뒤에도 콩닥콩닥한 마음 같은 건 생기지 않는데 이 친구 자체보다도 그의 태도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여체를 처음 접한 그 눈빛. 경탄과 찬미로 가득한. 다리가 너무 부드러워 라든지 가슴이 너무 아름다워, 같이 순수한 감동에서 터져나오는 단순한 말들이 가끔 마음에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Aug 8

저도 시류(?)에 편승하여 만들어봤어요, 성격페이지 :) http://char.guessing.me/26605 우붐을 설명하는 10가지 성격 골라주세요! XD

 

Aug 7

기묘한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3년 된 게이 친구랑 잔다든지... 그런 눈빛으로 "여자의 가슴골이 예뻐보이는 건 처음이야"라니...

 

Aug 7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아니 뭐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 사실 뭐 그래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Aug 5

격하게 할 일 없는 날 오늘로 사흘째...

 

Aug 4

어젯밤 단골 술집에서 벌어진 땅고판. 나는 마치 그 사건이 내게 "닥쳐온"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전말은 이렇다. 할 일 없이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룹이고 한국이고 온통 휴가라 아무도 일을 안 해서 통번역할 일도 없는 단비같은 시기임) 단골 술집에서 사진전을 열 것이며 오프닝에서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홍보글을 봤다. 그런데 작가 소개에 작가가 땅고를 춘다고 되어 있다. 그러고보니 이름이 낯이 익다? - 며칠 전에 친구의 페북에 태그된 사람이구나 정말 세상 좁네. 흥미가 생겨서 보러 갈 생각을 한다. 퇴근 후 방을 청소하고 샤워를 한다. 회사에서 화장이 무너져서 그대로 나가긴 싫으니까. 다시 화장을 할까 하다가 그건 너무 힘준 것 같아 싫다. 늘 동네 슈퍼 나가는 복장으로 가던 곳인데 이상하잖아. 혹시나 춤을 춰도 썩 불편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평소처럼 마실 나온 것 같은, 하지만 평범하지는 않은 옷을 골라입는다. 세탁소에 맡길 옷 바구니를 들고 길을 나서는데 평소에 늘 신고 가던 크록스를 신지 않는다. 샌들 정도면 땅고를 추려면 출 수도 있지만 크록스는 정말 거의 불가능이니까. 그렇게 집을 나서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단골 술집 문을 연다. 한참 혼자 앉아서 프로젝터로 띄운 사진을 본다. 들려오는 대화로 작가가 누군지 짚어낸다. 여러 번 같은 사진이 돌 때까지 앉아서 사진을 감상하다가, 맥주가 두 잔째로 넘어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엽서와 방명록을 보러 간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사진이 엽서로도 있는 걸 보고 잠시 흡족해한 뒤 방명록을 뒤적인다. (이건 우연이지만) 몇 장을 한번에 넘겼는데 작가와 며칠 전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린 내 친구가 남긴 메시지가 바로 나온다. 에 설마했는데 여기까지 왔다갈 만큼 친한 사이였던 거야? 신기해하며 훑어본 뒤, 친구에게 연락하며 쿡쿡거린다. 사장이 묻는다 무슨 재밌는 일 있냐고. , 나 친구가 작가분이랑 아는지 왔다 갔나봐. 어떻게 아는 친군데? 땅고 친구. 그러고보니 너도 땅고 춘다 그랬지, 이 작가분도 땅고 춰. 알고 왔지만 놀란 티를 낸다. 작가와 인사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사진에 대해 얘기한다. 한 차례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자리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방금 대화에서 작가의 땅고 선생님이 방문할 예정임을 알게 되었다. 책 읽고 사장이랑 종종 대화도 하면서 맥주를 마신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그들이 왔다. 그리고 또 계속 책, 대화, 맥주. 시간이 늦어지자 다른 테이블이 하나둘 비고 사장은 입간판을 정리한다. . 그러다 갑자기 땅고 음악이 들린다. ?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사장이 저분들이 요청하셨어 바로 설명해준다. 그리고 작가가 내쪽을 보면서 혹시 땅고 추시는 걸 얘기해도 될까요 묻는다. 물론이죠. 사실 저기 계신 분도 땅고를 추신대요. 얼마나 되셨어요? 1년 정도요. 그런데 최근에 네 달쯤 쉬었어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먼 시야 속에 사장이 테이블을 미는 모습이 보인다. -. 그 땅고 선생님이라는 분이 다가온다. 한 곡 춰도 될까요. 세상에 내가 일부러 샌들을 신고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오랜만에 내 앞에 내민 손을 잡고, 다른 손을 뻗어 테이블에 안경을 올려두고, 그 손을 등에 올린다. 함께 무게 중심을 이동하면서, 첫발을 내딛는다. 아 오랜만이구나 생각하면서 춤을 췄다. 그리고 작가와, 또 다른 남자와도 춤을. 춤을 추고 나니 나는 어느새 그쪽 테이블에 앉아 있고 샴페인은 터지고 몇 시간 뒤에 한국을 떠날, 처음 만난 작가의 환송회가 무르익어갔다. 기묘한 밤이었다. 기묘한 밤이지만 이 밤은 내게 그저 닥쳐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훨씬 쉬운 설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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