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계약서에서 사인을 했다. 며칠 동안 목이 빠져라 화도 내고 답답해하기도 하면서 기다렸던 계약서가 도착한 순간 나는 JY짱과 밥을 먹고 있었고 고맙게도 지메일은 내게 알림을 보내주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그쪽 서명도 된 버전을 보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기 위해 용기를 그러모아야 했는데 상대방의 반응은 대체 그런 소리는 왜 하냐는 듯 너무도 당연하게 보내주려고 해서 완전한 초짜가 된 (사실 내가 정확히 그런 상태인 게 맞지만) 기분이 되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매번 물어봐도 좋은 것과 안 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릴 때면 내 무지가 지긋지긋해진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통역이 많은 일일 것, 대면해서 통역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외국인이 섞여 있는—가능하면 더 많은—근무 환경일 것, 급여수준이 지금과 비슷하거나 높을 것. 한 직장에서 이 모든 걸 바란 건 아니었고 한 가지 정도 충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넷 모두를 만족하는 기회가 왔다.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서울에서 잠시 떨어져서 지내고 싶다는 욕망에까지 부합하는 일자리라니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차 계약 기간은 못마땅할 정도로 짧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침 지금 일자리에서 일 년 계약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잃는 것도 많지 않다.
사측에서 삼 개월 연장 방안을 선심쓰듯 제시했을 때 나는 여기에 순응해야 할지, 기분 나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급여 협상을 해야 할지, 심지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오래 이 일자리를 떠나고 싶어했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빠지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다녔음에도 삼 개월 간 더 익숙한 자리에서 익숙하고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을 처리하면서 앉아있는 것이 아주 수동적이나마 매력적인 일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는 아직도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일이란 걸 시작한 첫 해를 채우기까지도 열흘이 넘게 남았고 (심지어 이 일 면접을 본 지 일 년 되는 날—내 생일—까지도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이직은 정말이지 처음 해보니까. 하지만 처음이라고 마냥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때로 운이 좋아서, 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 같은 다양한 이유로 처음을 어수룩하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때도 있지 않을까. 소위 “능력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런 다양한 요소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언제나 능숙하고 싶었다. 미숙한 모습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고, 나 자신도 발견하고 싶지 않았다. 줏대 있게 행동하는 것, 내 다음 행동의 기준을 세우는 것,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무엇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에 반발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런 것들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 기분을 온갖 논리로 싸워내느라 진을 빼곤 했다. 하지만 논리만으로 풀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하게 엉켜 있어서 그 엉킨 틈새를 들여다보기 위해 실 하나를 당기는 것마저도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하는 시간이 한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에 뒤덮여 있는 것은 조금도 안락하지 않았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편하지 않은 질문을 겨우 던지고 평정을 가장하며 답을 듣는 것도 그 답을 기억하는 것도 지쳤다. 내가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몇몇 남자와 잤다고 한다면 기만이겠지만 그 결정에 이런 상태가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계약서에 사인은 했지만 고용주의 얼굴은 물론이고 에이전시 측 사람 얼굴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내가 어떤 통역을 하는 사람인지도 선보인 적이 없는 채로 일 년 전의 평판만 가지고 얻은 일자리란 과하게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프로”라는 허울만을 가지고 이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에 더욱, 부담을 느끼는 인간적인 면모를 최선을 다해 숨겨야 한다. 인터뷰란 부담되는 일이므로 그 부담을 피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결국은 나는 그만큼 나의 퍼포먼스에 따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부담을 등에 업고서 지금부터 꼬박 한 주를 홀로 견뎌야 할 테다. 상황적으로 어렵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마치 인터뷰에 홀로 들어가듯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괴로움을 끌어안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테다. 아마 첫 두 주 정도도 비슷한 상태로 지낼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고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