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결과가 나왔다. 예상한 결과. 만약에 다른 결과였다면, 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끔찍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뭔가에 실패했다는 것 때문인지 왠지 싱숭생숭하다.
싱숭생숭해서 바닥을 닦는데
시험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일기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아마 저녁 먹으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봐서 그런지도.
나는 속도위반 베이비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꽤 됐지만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들은 건 아주 최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직접 듣기 전부터 종종 친구들에게 내가 속도위반 베이비라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런데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속도위반이라는 게 그렇게 행복한 일만은 아니었다.
임신 사실을 감추려고 후다닥 치른 결혼식. 친구들도 제대로 초대 못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차라리 틀렸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으면서, 짐짓 놀라는 척 하면서
나는 속으로 아주 많이 후회했다.
내가 장난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던,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출생의 비밀은
사실은 엄마에겐 인생의 일부였다는 걸. 그것도 당사자가 스무살이 넘어서야 얘기해줄 정도로 감추고 싶은 일부였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앞으로는 가족의 이야기라도 함부로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질문은 혼자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아주 많이, 글자로 찍어내든 말로 날려버리든 하고 싶었는데 계속 삼켜왔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이곳에는 방문자가 거의 없으리라는 핑계에 기대 조금 묻고 싶다.
엄마.
왜 아빠의 외도 사실을 시간이 지난 뒤에 제게 알리셨어요?
니 핸드폰 수많은 남자가 한 글자만 바꾼 여자라느니 뭐 그딴 가사가 전적으로 헛소리는 아니란 거 왜 알게 했어요?
왜 아빠의 마음을 돌린 게 당신이 아니고 결정적으로 나와 내 동생이었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두 분이 싸우시는 걸 난 살면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왜 내가 집에 없을 때 동생 앞에서는 물건까지 집어던지면서 싸웠다고 말해줬어요?
괴로웠겠죠? 왜 그때 말해주지 않았어요?
왜 모든 일이 다 지나간 후에 말해줬어요?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해요?
동생에게 그때 기억을 캐물어야 해요?
아빠의 입장을 듣기 위해 아빠에게 물어봐야 해요?
그때가 대체 언젠지, 난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그때 집안 분위기가 어땠는지 난 정말 하나도 모르는데
그래서 아빠를 변호하는 방향으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데
이야기도 엄마한테서만 들으면
나는 그냥 엄마편, 그렇게 해야 해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엄마는 아주 담담하게 얘기해줬었고.
심지어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채워줬다니 고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며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런 거구나,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들을 당시에는 참 우리 엄마답다고 생각하며 들었지만.
종종 이렇게 질문이 소용돌이치면서 화가 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