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첫 주 싱가폴 행에서 시작해서 지난 주까지 장장 10주에 걸쳐 이어진 여름 여행 퍼레이드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소명언니의 결혼식이 있었던 싱가폴, 가족과 함께한 원주-평창-강릉, 폭차와 함께한 부산, 운돌투어로 간 발리, 운도리랑 민이랑 같이 또 한 번 찾은 강릉, 엄마와 할머니의 생신 축하를 위한 부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시현 언니들과 재회한 홍콩까지. 정말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모든 여행이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차 있는데 딱히 무엇이 그리 행복했는지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든다. 다만 가장 행복했던 점은 이렇게 며칠을 한 공간에서 잠들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잔뜩 있구나 하는 발견이었다. 

* 요즘 내게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는 건 앞으로 기억하거나 대화의 소재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순간 마음을 고요하게 하거나 흥이 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발생하는 변수들에 관대한 것 같다. 여행 중에 뭔가를 꼭 해야겠다는 열망은 앞으로 이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남들에게 오래 자랑하고, 훗날 그 추억을 되밟아 그 자리에 돌아오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러면 특정 행위나 장소가 목표, 즉 기준점이 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쉽게 마이너스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게 기준점이 되면 뭘 해도 쉽게 플러스가 된다. 유별나게 고생을 하거나 특별히 맛없는 음식을 먹지만 않는다면. 쉽사리 마이너스가 되지 않고, 손쉽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로 많은 여행을 다녀오고 일상을 살고 있다. 

* 여행의 끝과 딱 맞물려 3주 간 풀타임으로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오늘로 5일째, 첫 주의 마지막날인데 매일 9시에서 6시까지 사무실에 있는 건 그 자체로 힘들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매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봐야 늘 하고 있는 일이니 이해를 못 하겠지만 반년 넘게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나는 이제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떠서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 흑... 체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잠자리에 들 때 내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다는 게 정신적으로 지친다. 7시에 알람을 맞추면서 이때 눈을 뜨지 못하면 큰일이야! 라고 매일 생각하는 건 정말이지... 흑흑... (그러고보니 이렇게 매일 아침 기상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혼자 져야 하는 상황은 꽤나 간만이기도 하다. 거제에 있을 때는 호텔 프론트에 모닝콜을 부탁했기 때문에 내 알람 소리를 못 들어도 믿을 구석이 있었달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2년반만이고.) 빨리 9월이 지나서 프로젝트가 끝났으면 좋겠구만. 아, 그래도 역시나 같은 곳에서 연속성 있게 일하는 게 정신적으로 덜 지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내가 큰 문제 없이 일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주고 난 뒤에 생기는 신뢰에 올라타고 일할 수 있고, 내용도 점점 익숙해지니 확실히 준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덜하다. 일이 많은 날이든 적은 날이든 오늘 하루치로 얼마만큼의 돈이 배정되어 있다는 게 안심되기도 하고. 8월에 너무 밖으로 나돌아서 감이 떨어진 것 같아 걱정이 됐는데 적당한 버퍼를 딛고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게 다행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고루 보면서,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일하는 중에는 퇴근이 간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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