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녕 6월도 반이 넘어갔단 말인가. 말도 안 돼.
* 6월 2일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창문을 양쪽 다 열어놔도 더운 느낌이 들어서 드디어 "여름 더위"가 시작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걸 일기에 적겠다며 구글 킵에 메모해놨는데 실제로 일기를 쓰려고 앉기까지 보름이 걸렸구만. 그사이 계절은 더욱 무르익어 이젠 시작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완연한 여름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무덥지는 않고, 딱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 먼 도시로 출장을 다니지 않은 지도 벌써 3개월. 이제 정말 정착이란 걸 한 느낌이 든다. 질리도록 생각한다. 매주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건 참 좋구나. 정착의 감각이 몸에 스미고 있다.
* 박정현이 나온다는 이유로 비긴어게인 2를 종종 보는데, 거기서 지나가면서 본 한 토막이 기억에 남는다. 집중해서 본 게 아니라 정확한 맥락은 모르겠지만 아마 헨리가 버스킹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던 것 같고, 거기에 박정현이 던진 코멘트다. "실력이 부족해서 아니고 그냥 다른 장르야." 통번역 일도 마찬가지다. 한영인지 영한인지 방향에 따라 장르가 다르고, 번역인지 순차통역인지 동시통역인지 형식에 따라서도 장르가 다르고, 그 안에서도 보고서인지 논문인지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인지, 대면회의인지 컨콜인지 컨퍼런스인지, 실무급인지 고위급인지 성격에 따라서도 다 다르다!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말하자면 박정현의 코멘트에서 "실력"을 이루는 게 탄탄한 언어 실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고 그게 위에서 말한 각각의 "장르"에 따라 발현되는 건데, 어느 쪽으로 치우쳐서 일을 하다가 다른 쪽의 일이 들어오면 내심 겁이 많이 난다. 그럴 때 저 말을 생각하면 힘이 될 것 같다. 다른 장르니까, 당연히 겁이 나지. 하지만 그렇게 불안해지는 게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실력을 기르자.
* 그리고 이어서, (굳이 시간 맞춰 TV를 켤 만큼) 박정현을 "보는" 게 즐거운 이유는 실력이 탁월해서도 있지만 노래 부를 때 표정이 정말 좋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고등학생일 때,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도 그는 성공한 가수였는데 아직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만큼의 시간 동안 꾸준히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그렇게나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럽고 청량하게 느껴진다.
* 박정현 얘기를 한 가지 더 하자면 가장 최근 화에서는 관객이 뭘 좋아하는지 온도를 재어보는 일이 참 즐겁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통역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거겠지. 좀 더 살을 붙여서 적어봐야겠지만 지금 퍼포먼스랑 연결해서 우다다 메모를 해놓자면... 내 통역을 듣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나의 존재감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지도 빠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내가 최대한 안 보이는 그림자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때도 있고 아닌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통역사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데 내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예를 들어 최근에 들어간 한 순차통역 회의에서는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모두 진짜 내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목소리에 확신을 강하게 실었다. 통역은, 세상 모든 퍼포먼스가 그렇듯, 탁월하고 잘난 통역사 하나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에 가깝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사람이 말하고 사람이 통역하고 사람이 듣는 것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능력과 의도가 반드시 반영된다. 진행되는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든 서로를 돕거나 방해하게 된다. 그 실시간의 관계 한복판에 뛰어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떨리지만 바로 그래서 더욱 짜릿하다. 이건 좀 정리를 해서 나중에 다시 적어보자.
* 필라테스 정말 재밌다. 우연히 내 문의 전화를 받은 선생님과 벌써 거의 반 년 째 쭉 같이 운동하고 있는데 무리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몸을 소위 "예쁘게" 만드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고, 내 몸에 이런저런 근육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조금씩 안 되던 동작이 되게 하는 데 집중하는 게 정말 내게 딱 맞다. 기분이 안 좋거나 몸이 찌뿌드드하면 운동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비싸긴 한데(...) 그래서 필라테스를 계속 하려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
* 지난 주 금요일, 그러니까 6월 15일에, 프리랜서 전향하고 처음으로 하루 두 탕(!) 통역이 있었다. 짜릿해 새로워!!!! 그날은 왠지 성공한 도시여자 뽕에 가득 취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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