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 밤부터 부산했다. 지금은 수요일 낮. 금요일 밤에 부산에 내려가 엄마, 민이와 계획하지 않은 양질의 수다 타임을 새벽 5시반까지(...) 보내고, 토요일에는 와인 숙취를 떨치고 나가 페디큐어를 받고 할머니댁에 방문해서 저녁까지 먹은 뒤 면세점 쇼핑을 짧고 굵게 마치고 가족 여행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경연이 결혼식에 갔다가 집에서 짐을 부랴부랴 챙겨 서울행. 조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주말이었다. 그리고 헬게이트가 열렸다. ^^^^ 월요일 낮부터 통역이 잡혀 있었는데 그 자료를 일요일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열어 본 것인데... 아... 너무... 어려웠다... 세상에 이렇게 어려울 수가 ^^^^ 그렇게 어려운 와중에 자료 보는 시스템도 보안 적용이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시간이 배로 걸렸다. 새벽 늦게 눈꺼풀이 절로 내려올 때까지 자료를 보다가 월요일에 초죽음 상태로 가서 통역을 겨우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마시고 그냥 기절해버렸다. 다음 날도 통역이 있는데 말이다. ^^^^ 밤이 무르익었을 때야 눈을 떠서 다음 날 자료를 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전날 내용(에너지 & 자동차)보다는 내가 아는 내용(통신)이어서 좀 나았지만 그래도 워낙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또 늦게서야 잘 수 있었고 다음날 일정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이었다. 간만에 비가 쭐쭐 오는 날,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달려서, 회의실에 가서, 전날보다는 나았던 통역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기절했다. 오늘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것도 안 보고 그냥 쉰다, 다짐하면서. 2시간을 자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운동을 하고 나니 그래도 몸이 훨씬 가뿐해졌다. 그 후에는 집 근처에서 저녁 약속으로 친구를 만나고, 집에 와서 벼러오던 청소를 했다. 바닥을 닦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이제야 집이 사람 사는 집 같아졌다. (금요일에 부산에 가기 전에도 수원에 출장 다녀오고 바로 이어서 컨퍼런스 준비하느라 집이 아주 가관이었음.) 이 과정을 거치면서 어제 느낀 것이, 소리로 일을 하다보니 일로 지치니까 정보값이 있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어지더라는 것이다. 보통 집에서 잡일을 할 때 웬만하면 구독하는 뉴스형 팟캐스트들을 훑고 나서야 음악으로 넘어가고, 일하러 가기 전 아침에 준비할 때는 그걸로 쉐도잉을 하거나 속으로 통역을 해보거나 최소한 귀기울여 듣기라도 하면서 워밍업을 하는 편인데... 일요일부터 어젯밤까지는 도-저히 아-무 말도 듣기가 싫었다. 그렇게 세상 모든 말소리로부터 셧다운하고 싶어지는 때가 아주 간혹 찾아오는데 요며칠이 그랬다. 그래도 어제 좀 쉬고 잠도 충분히 푹 잤더니 오늘 아침부터는 다시 조금씩 뉴스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휴.

*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을 때면 퇴근하고 싶다고 수십 번 생각하지만 통역 없는 날 9시에 일어나 단호박 쪄먹으면서 이메일 정리하고 다음날 통역 공부를 슬슬 하려고 시동 거는 순간에는... 참 행복하다. 퇴근이 없어 때로 괴롭지만 출근이 없어 행복해요!

* 이제 공부를 해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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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내가 딱 그러고 있다. 최근에 라면이 너-무 당겨서 먹을 때면, 끓일 때부터 군침이 도는 동시에 뭔가 물린다. 그리고 몇 입 먹고 나면 정말 맛있는데도 이걸 내가 왜 먹고 있나 싶고, 다 먹고 몇 시간이 지나도 속이 불편한 느낌이 가실 줄을 모른다. 나의 정신은 라면을 무척 좋아하는데도 소화기가 라면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특정 메뉴를 생각하면 자연히 어울리는 술이 생각나고, 큰 일을 완료하고 나면 그 기분에 어울리는 술이 당기고, 한 모금 마시기 시작하면 바로 이거라며 흥이 차오르지만 술 깰 때 두통이 너무 심해졌다! 오 마이 간! 그리고 몸에서 안 받는다는 느낌이 예전보다 선명하다. 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 술과 관련해서, 최근에 예전 일기를 휘릭휘릭 넘겨보다가 발견한 건데, 그때는 일에서 술을 안/덜 마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실 일이 그런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다음날 아침 9시가 되어도 몸에서 술의 영향을 불쾌하게 느낄 만큼 술을 마시고 싶지가 않다. 

* 요즘 내가 일하는 걸 보면 뭐랄까, '프리랜서로 전향하겠습니다!' 라는 선언이 마치 '언제 팝퀴즈를 낼지 모르는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하겠습니다! 퀴즈는 꼭 A를 받을 거고요!' 라는 선언과 같았던 거 같다. 팝퀴즈가 언제 잡힐지 모르고 일단 잡히면 전날 똥줄 타며 공부하는 뭐 그런 건데 팝퀴즈가 생각보다 좀 잦은 느낌...^^? ㅋㅋㅋㅋ 감사한 일이긴 한데 맘 편히 영화관에 간 게 벌써 한 달 전이라니 호락호락하지 않구만. (물론 영화관도 못 갈 정도로 바빴다기 보단 내가 게으름뱅이 쫄보였던 것도 있지만.) 내공이 좀 더 쌓이면 스케줄 관리를 좀 효율적으로 해서 영화관도 가고 A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 최근 세 번 연속으로 통역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었다. 내용은 별 거 없고 그냥 뭐 잘했다 그런 건데, 나의 기분(과 내가 생각하는 그날의 퍼포먼스)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 게 스스로 웃겨서 적어놓는다. 첫 번째 어떤 독일인 클라이언트. 당시 나는 왜 이렇게 통역을 못 하나 우울&쭈구리 모드였던 데다, 회의도 처음 보는 내용에 자료 양도 만만치 않아서 썩 만족스러운 통역이 아니었다. 아 이렇게 의자와 한몸이 되어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클라이언트가 굉장히 좋은 통역이었다고 말해줬는데... 고맙다고 웃으며 응대하면서도 내 속은 타들어갔다. ㅋㅋㅋ 아... 정말 거지같은 통역이라 불쌍하니 칭찬이라도 해주려는 건가보다, 라고 생각했음. 진심. 쭈구리 모드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저 생각이 한 일주일 갔는데 지금 멘탈을 붙잡고 생각해보면 설마 그랬겠냐며. 하하. 두 번째는 컨텐츠 회사 클라이언트였는데 어쩜 이렇게 통역을 잘 하시냐고 본부장이 한마디하자 옆에서 실무가 명함 받아놨다고 너스레를 떠는 뭐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 눈 앞에서 펼쳐졌는데 그냥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래도 말만이라도 참 감사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뭐 그런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일본인 클라이언트. 이날은 왠지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던지라 와우, 통역 정말 잘하시네여! 이런 느낌의 칭찬을 들으며... 별 감흥이 없었다! 가장 멘탈에 이상적인 건 마지막 상태가 아닐까? 긍정적 피드백에 흔들리지 않는 상태 말이다. 이걸 적어두는 이유는, 1번처럼 생각하는 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3번처럼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이상! 이제 팝퀴즈 공부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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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녕 6월도 반이 넘어갔단 말인가. 말도 안 돼. 

* 6월 2일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창문을 양쪽 다 열어놔도 더운 느낌이 들어서 드디어 "여름 더위"가 시작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걸 일기에 적겠다며 구글 킵에 메모해놨는데 실제로 일기를 쓰려고 앉기까지 보름이 걸렸구만. 그사이 계절은 더욱 무르익어 이젠 시작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완연한 여름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무덥지는 않고, 딱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 먼 도시로 출장을 다니지 않은 지도 벌써 3개월. 이제 정말 정착이란 걸 한 느낌이 든다. 질리도록 생각한다. 매주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건 참 좋구나. 정착의 감각이 몸에 스미고 있다.

* 박정현이 나온다는 이유로 비긴어게인 2를 종종 보는데, 거기서 지나가면서 본 한 토막이 기억에 남는다. 집중해서 본 게 아니라 정확한 맥락은 모르겠지만 아마 헨리가 버스킹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던 것 같고, 거기에 박정현이 던진 코멘트다. "실력이 부족해서 아니고 그냥 다른 장르야." 통번역 일도 마찬가지다. 한영인지 영한인지 방향에 따라 장르가 다르고, 번역인지 순차통역인지 동시통역인지 형식에 따라서도 장르가 다르고, 그 안에서도 보고서인지 논문인지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인지, 대면회의인지 컨콜인지 컨퍼런스인지, 실무급인지 고위급인지 성격에 따라서도 다 다르다!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말하자면 박정현의 코멘트에서 "실력"을 이루는 게 탄탄한 언어 실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고 그게 위에서 말한 각각의 "장르"에 따라 발현되는 건데, 어느 쪽으로 치우쳐서 일을 하다가 다른 쪽의 일이 들어오면 내심 겁이 많이 난다. 그럴 때 저 말을 생각하면 힘이 될 것 같다. 다른 장르니까, 당연히 겁이 나지. 하지만 그렇게 불안해지는 게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실력을 기르자.

* 그리고 이어서, (굳이 시간 맞춰 TV를 켤 만큼) 박정현을 "보는" 게 즐거운 이유는 실력이 탁월해서도 있지만 노래 부를 때 표정이 정말 좋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고등학생일 때,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도 그는 성공한 가수였는데 아직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만큼의 시간 동안 꾸준히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그렇게나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럽고 청량하게 느껴진다. 

* 박정현 얘기를 한 가지 더 하자면 가장 최근 화에서는 관객이 뭘 좋아하는지 온도를 재어보는 일이 참 즐겁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통역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거겠지. 좀 더 살을 붙여서 적어봐야겠지만 지금 퍼포먼스랑 연결해서 우다다 메모를 해놓자면... 내 통역을 듣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나의 존재감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지도 빠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내가 최대한 안 보이는 그림자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때도 있고 아닌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통역사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데 내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예를 들어 최근에 들어간 한 순차통역 회의에서는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모두 진짜 내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목소리에 확신을 강하게 실었다. 통역은, 세상 모든 퍼포먼스가 그렇듯, 탁월하고 잘난 통역사 하나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에 가깝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사람이 말하고 사람이 통역하고 사람이 듣는 것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능력과 의도가 반드시 반영된다. 진행되는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든 서로를 돕거나 방해하게 된다. 그 실시간의 관계 한복판에 뛰어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떨리지만 바로 그래서 더욱 짜릿하다. 이건 좀 정리를 해서 나중에 다시 적어보자. 

* 필라테스 정말 재밌다. 우연히 내 문의 전화를 받은 선생님과 벌써 거의 반 년 째 쭉 같이 운동하고 있는데 무리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몸을 소위 "예쁘게" 만드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고, 내 몸에 이런저런 근육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조금씩 안 되던 동작이 되게 하는 데 집중하는 게 정말 내게 딱 맞다. 기분이 안 좋거나 몸이 찌뿌드드하면 운동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비싸긴 한데(...) 그래서 필라테스를 계속 하려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 

* 지난 주 금요일, 그러니까 6월 15일에, 프리랜서 전향하고 처음으로 하루 두 탕(!) 통역이 있었다. 짜릿해 새로워!!!! 그날은 왠지 성공한 도시여자 뽕에 가득 취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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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도 오늘도 간만에 꽤 한가롭다. 밀린 빨래를 하고(빨래를 미뤄두는 사람은 전혀 아닌데, 따로 빨아야 하는 각종 빨랫감이 각각 소량씩 마음의 짐처럼 밀려있었다는 뜻이다), 간만에 밥을 곁들이지 않은 식사를 하고(한식은 제대로 해먹으려면 손이 정말 많이 가지만 적당히 먹고자 하면 또 그만큼 편한 게 없다. 밥만 해놓으면 뭐라도 휘딱 볶아서 때우기 편하기 때문. 하지만 제대로 해먹지 않으면 한 끼에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높아지는 것 같다... 몸이 무거워... 그렇다고 밥을 오래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한 번 하면 어쩔 수없이 먹어야 하고, 그러다보니 한식에 맞는 재료를 더 구비하고, 그게 남으니 밥을 또 하고, 악순환. 그래서 금요일까진 밥을 안 하고 가볍게 식사를 하려고 한다), 여름맞이 옷장 정리를 했다. 여름옷이 과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또 턱없이 부족한 것도 같고 말이지... 아무튼 속이 시원하다. 근데 아무리 정리를 해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내 집에 온전히 살기 시작한 2월에 느껴졌던 상쾌한 느낌이 안 난다. 그만큼 집에 짐이 많아진 걸까. 하긴 한 달에 카드를 그만큼씩 써 젖히는데 뭐가 늘어도 늘겠지(...) ^^ ㅎ ㅏ ㅎ ㅏ

* 이틀 연속 일이 없는데 제발 그냥 이틀 다 채우게 오늘 아무 일도 없기를 빌고 있다. 빈 시간에 오하시 트리오 앨범을 들으면서 "애주가의 대모험"과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를 읽고 있다. 일을 안 하니까 커피도 안 당겨서 차를 마시고 있고. 한숨도 안 쉬고 속으로 욕지거리도 안 한다! 지난 달이 너무 바빴는데 (어디까지나 느슨한 내 기준이다만), 그 덕분에 지금을 매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우선 그렇게 바쁠 때가 또 올 수 있으니 쉴 수 있을 때 푹 쉬고 체력을 회복해야 된다는 실용적 측면, 바쁠 때는 못 즐길 것 지금 즐겨두자는 정신적 측면, 마지막으로 지난 달에 좀 벌어뒀으니 이번 달은 혹시나 미끄러져도 안심이라는 금전적 측면. 내가 프리랜서의 불안을 초월한 현인이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기에, 이 셋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 번째다. 세 번째가 있어서 앞의 두 가지도 가능한 거겠지. 정신적 안온함은 안정적 삶의 기반에서 나온다. 바쁠 때 아쉬움 없이 바쁘고, 쉴 때도 아쉬움 없이 쉬고 싶다.

* 미리 잡아놓은 약속 때문에, 또는 사람을 만나느라고 연락 온 걸 늦게 봐서 놓친 일이 요즘 들어 몇 개 된다. 돈을 계산해보면 아쉽기도 한데... 이런 일은 애초에 내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연락오는 모든 일을 내가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 원래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놓친' 것도 아니고. 사람은 돈만 가지고 사는 게 아니니까.

* 같이 얘기하면 즐거웠던 사람, 절묘하게 위안이 되었던 사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넘쳤던 사람, 사람들. 이런 이들과 소원해지면 당연히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 많다. 관계는 때로, 누구의 소관도 아닌 곳에서 소멸하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쉬움이 덜어진다. 어차피 다 이고 지고 살지도 못하는 걸. 

* 한 주에 두 번 필라테스 하는 걸 목표로 쭉 지켜오고 있는데, 한 발로 중심잡고 서기가 참 잘 안 된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는데, 성공에는 많은 요소가 같이 작용하는 거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발목의 힘이다. 어제 M&M's 처럼 생긴 발판 위에서 중심 잡기를 연습했는데 그걸로 "발목을 강화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발목도 강화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거든. 여러모로 균형있게 강화하고 싶다. 온 몸을, 온 생활을, 온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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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아무튼 뭔가 마시면서 겨우 일기를 쓰는 일이 잦다. 이걸 기호식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 맛을 빌미로 일정 시간을 저당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 음식의 부차적이면서도 주된 가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 메모에 “낯선 그 여자”를 적어 넣은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그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와 만날 때의 행복했던 표정을 반추하면서 그때 그 여자는 참 낯설구나, 생각했던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낯설게 여기고 있다. 지금도 행복한 순간이 왕왕 있지만 그때와는 뭔가 장르가 다르고, 이건 영 같아질 것 같지 않다. 아무튼 나는 그 다른 장르의 행복을 급속도로 잊어가는 중이다. 다만 그 잊혀진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 이런저런 것들로 꼼꼼히 채워 아무도, 심지어 때로 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뿐.

* 위의 메모를 다시 보는데 다른 메모도 눈에 들어왔다. “나불대지 말 것.” 대부분의 시간에 사회적 자아의 가면을 쓰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덕분에 가끔 타인과 대화할 일이 있으면 필요 이상으로 들뜨곤 하는데, 그걸 경계하기 위한 기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들떠서 가끔 필요치 않은 말을 하거나 흘리고 싶지 않은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치명적인 실수는 아직 없지만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특히 일 때문에 만날 때면 늘 생각한다. 나불대지 말자. 무색무취의 재미 없는 사람과 안물안궁의 민폐인은 한끗 차이다. 둘 다 되고 싶지 않지만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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