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아무튼 뭔가 마시면서 겨우 일기를 쓰는 일이 잦다. 이걸 기호식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 맛을 빌미로 일정 시간을 저당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 음식의 부차적이면서도 주된 가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 메모에 “낯선 그 여자”를 적어 넣은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그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와 만날 때의 행복했던 표정을 반추하면서 그때 그 여자는 참 낯설구나, 생각했던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낯설게 여기고 있다. 지금도 행복한 순간이 왕왕 있지만 그때와는 뭔가 장르가 다르고, 이건 영 같아질 것 같지 않다. 아무튼 나는 그 다른 장르의 행복을 급속도로 잊어가는 중이다. 다만 그 잊혀진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 이런저런 것들로 꼼꼼히 채워 아무도, 심지어 때로 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뿐.
* 위의 메모를 다시 보는데 다른 메모도 눈에 들어왔다. “나불대지 말 것.” 대부분의 시간에 사회적 자아의 가면을 쓰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덕분에 가끔 타인과 대화할 일이 있으면 필요 이상으로 들뜨곤 하는데, 그걸 경계하기 위한 기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들떠서 가끔 필요치 않은 말을 하거나 흘리고 싶지 않은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치명적인 실수는 아직 없지만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특히 일 때문에 만날 때면 늘 생각한다. 나불대지 말자. 무색무취의 재미 없는 사람과 안물안궁의 민폐인은 한끗 차이다. 둘 다 되고 싶지 않지만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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