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장에는 선배가 있었다. 그리고 내 업무 스코프는 그의 스코프를 제외한 전부, 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것이었다.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그가 휴가를 간 날 콜이라도 있으면 긴장은 됐지만 내심 설렜다. "진짜 일"을 한다는 느낌이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직장에서도 나보다 일찍 들어와서 산전수전 다 겪은 친구가 있었다. 거의 야전 체제로 돌아가는 일터인 만큼 모두가 일당백을 했기에 예전 직장에서와 같은 갈증은 없었지만 어쨌든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친구를 찾았다. 그는 신뢰받고 있었고 내 눈에는 그 또한 그 신뢰를 즐기고 심지어는 독점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러웠다. 

이제는 내가 그 선배와 친구의 자리에 와 있다. 팀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사람, 그래서 "중요한" 일을 믿고 맡기는 사람. 친구가 하던 일은 이제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게도 나보다 늦게 들어온 동료가 생겼다. 나는 예전에 내가 느끼던 감정을 동료가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주머니에 있는 일은 의외로 나눠지지 않는 것일 때가 많았고, 나눌 수 있는 때라도 나는 "맛있는" 부위를 동료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더 잘나고 싶었다. 

새로 동료를 맞으면서 여러가지를 깨닫게 되었지만─내가 내심 시기하고 부러워했던 그 사람들이 참 깔끔하게 일했다는 것, 내게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일을 새로이 보고 설명해주기란 참 귀찮은 일이라는 것─, 그 중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발견이 이거였다. 일이 무슨 치킨도 아니고, 맛있는 부분을 나눠주기 싫은 이런 마음이라니. 나는 내 주머니 속 일을 당연스레 취했다. 아마도 선배와 친구가 그랬듯이.

사실 선배 앞에도 친구 앞에도 전임자는 있었다. 선배가 자기 업무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나도 맡은 지 얼마 안 돼서..."라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분명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그가 나의 일을 하고 있었으리라.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의 일은 전임자의 일을 넘겨받은 것이기도 했고, 신뢰를 쌓아서 얻어낸 것이기도 했다. 그들도 나처럼 전임자를 시샘했을까?

나는 지금 두 번의 직장생활을 거치며 경험한 치졸한 감정의 반대편 얼굴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이 다음에 내게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면, 나는 좀 덜 시샘할 수 있을까? 아예 안 할 수도 있을까? 이 감정은 내게 계속해서 경계해야 하는 대상으로 남아있을까? 2년 차가 저무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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