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들기 전 침대에서 잠시 노트북을 들고 앉았다. 뭔가를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시작을 해야지. 스마트폰을 거실에 두는 건 아무래도 ASMR이 듣고 싶어서 못했지만. 

*나는 중독에 취약한 인간이다. 정말. 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잠시 잊는 거 말고는 아직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딱히 중독을 잊기 위해 다른 중독을 굳이 찾는 건 아니지만, 하나의 중독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좀 벗어난 것 같으면 어김없이 다른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더라. 그래도 나 스스로에게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지점은 중독이 나를 통째로 좀먹게 두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꽤 위태로운 선까지는 갈지 몰라도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전에 나를 관찰하고 스스로를 구렁텅이에서 꺼내기 위한 작은 계획들을 짠다. 스마트폰 중독은 덩치가 거대하고 접근성과 접근 필요성이 너무 높아서 알콜 중독보다도 벗어나기 힘들 것 같지만... 스마트폰 중독 자체를 피할 수 없다면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서비스 중에서 관계적 성격이 강하고 새 글이 자주 올라오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내 일상의 침투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서비스의 사용을 절제하고, 블로그처럼 그나마 호흡이 길고 관계망이 성긴 서비스 이용분을 늘리는 것으로 조율해보려고 한다. 

* 오늘 이직 전 휴가를 즐기는 J를 만났다. J는 왠지 여러 번 반복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이 정돈된 어조로, 오래 고민한 결론과 다짐에 대해 내게 설명해주었다. 정말이지 낡은 클리셰지만, 그에게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는, 내가 그라면 이러할 것이라고 으레 예상하는 모습과 꼭 같이, 존재만으로 당당했고 더욱 다부져져 있었다. 지금 이 선택을 내린 이유는 지난 5년의 시간이 지금 자신 앞에 몇몇 선택지를 열어주었듯 그렇게 해야 5년 후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더 많은, 더 나은 선택지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확고하게 말하는 그는, 존재만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 단단함에는 시간을 쪼개어 했던 깊은 고민과, 여러 사람의 의견을 고루 듣는 시간과, 일단 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노력과, 그렇게 쌓아간 자신에 대한 신뢰가 녹아 있었다. 참 좋은 점심이었다. 나도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런 태도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올해 단기적이나마 그런 태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목표를 세워서 다행이다. 

* 2010년부터 쭉 폰에서 폰으로 백업해가며 쌓아온 모든 데이터를 극적으로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꽤 많이 찾았다. 다행히도 일주일 정도 분의 사진 말고는 모든 사진이 일단 컴퓨터에는 백업되어 있었고, 잃어버리면 치명적이었을 연락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백업이 되어 있었는지 새 폰에 그냥 들어와 있었고 (신이든 엔지니어든 누구든 감사합니다),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다 날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지니 앱은 "자주 들은 음악" 목록에서 전부 구제할 수 있었으며 애플뮤직 앱은 그냥 내가 로그인을 안 해서 안 떴을 뿐이었다. 구입한 앱 목록도 살아 있어서 그대로 다운만 받으면 되었고 팟캐스트도 괜찮은 것들은 다 그냥 기억이 났다. 결국 잃어버린 것은 1) 앨범에 쌓여있던 방대한 양의 사진 (...이게 없어질 줄 알았더라면 256기가 안 사는 건데 말이다...), 2) Notes앱에 기록하던 온갖 자잘한 정보들 (읽고 싶은 책, 가고 싶은 음식점, 주소록, 계좌번호, 기억하고 싶은 표현, 일기 찌끄래기 등), 3)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반 대화방은 주기적으로 비워주기 때문에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거 말고... 필요할 때 검색해서 쓰던 정보들이 잔뜩!), 4) 과거의 문자메시지들 (런던 시절의 문자,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온 긴 문자들, 마라톤 기록 등), 이 정도가 전부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잃은 걸 어쩌겠는가. 모두 없어져서 아쉽긴 하지만, 사실 뻔히 다 알고 있는 내용이면서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다시 열어서 들여다보곤 하느라 시간을 많이 낭비했던 주범들이기도 하다. 이 기회에 좀 더 옛날 같은 방식으로 살아 보려 하고 있다. 정말 의미 있지 않은 사진은 굳이 찍지 않고,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면 좋겠는데 아직 유투브를 하고 있...긴하다... 뭐 한번에 중독이 한번에 고쳐지면 그게 중독이냐며...


* 오늘 넋두리의 배경음악은 아래 세 곡. 

James Bay - Hold Back the River: 뭔가 굉장히 그리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느낌인데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나...? 잘 모르겠네... 어렴-풋이 미카가 생각남. 

Russian Red - The Sun the Trees: 이건 뭔가... Angus & Julia Stone을 연상시키는... 

Death Cab for Cutie - The Ice Is Getting Thinner: 이건 Arco... 'ㅅ' 

소리 중독자처럼 음악을 주구장창 듣기는 하는데 스트리밍 앱으로 듣다보니 제목도 가수도 기억이 안 나고 그랬더니 결국 취향이 확실히 있긴 하면서 그걸 설명할 길을 꾸준히 잃어가는 것 같아서 이젠 좀 생각하면서 들어볼란다. 그럼 이만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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