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요즘. 내 생활은 연애로 점철되어 있고, 여기에 '언제나와 같이'라는 말을 갖다 붙여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3월이 가까워 오면서 수강신청을 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다 보면 내 가슴을 채우곤 하던 그 설렘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아서, 그래서 겨울이 더 긴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아마 다시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은 설렐 것의 실체가 없어서, 그런 것 뿐이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어쩌면 완전히 새롭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지금 생각으로는 완전히 다를 것만 같은 생활에 대한 불안이 아주 가끔 나를 강타한다. 하지만 그 뿐. 불안하면 어쩔텐가 시간을 멈출텐가 입학을 말텐가. 불안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아주 소소한 불안들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지금 잠시 흐름이 끊긴 참에 내가 뭐라고 나불거려 놓았는지 다시 읽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잘 쓴 글일 리가 없다. 오히려 잘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고칠 필요가 없는데도, 난 또 뭔가 고치려 들겠지. 정말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성질을 못 버려서 결국 이번 방학도 이렇게 흘러간 게 아니냐며. 불안을 다스린다고 해봤자 역시나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던지라, 간밤에 정말 간만에 TED.com에 들어가서 몇몇 강연을 뒤적여 봤다. 메인 화면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익숙한 한국 이름, 눈을 살짝 찌푸리며 읽어보니 김영하였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연기반 사람들을 떠올렸다. 특히 재영씨와 하늘오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라고 무심한 투로 말하는 그의 옆모습이 생각났다. 그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그곳에 왔다. 나는? 나는 첫시간에 내가 수업을 들으러 온 이유를 '매력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나에 대해 반성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영하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짜낸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리는 과정 설명조차, 전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요." 이건 참 힘없는 말인 것 같지만, 꼭 그러지만도 않은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그다지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그곳에 있었다. 수업을 통해 나를 발견했는가, 그건 아니다. 수업을 통해 뭔가 굉장한 소통의 열쇠를 얻었는가. 아니다. 딱히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사실 더 잘할 수 있었고 더 뻔뻔스러울 수 있었고 더 많이 사람들을 놀래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어떤 성장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좀 더 오래 산 사람들을 만나 뭔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들에게서 부모를 대신할 어떤 부분을 보았고 위안을 얻었다. 어쩌면 내가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불안을 묻어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아직 어리고 젊으니 미숙해도 실수해도 괜찮다.
김영하는 작문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 일정 시간 동안 멈춤 없이 미친듯이 써내려가도록 지도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 중에 훌륭한 글을 왕왕 발견한다고 했다. 아 그래서 내가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써 낸 답안지로 좋은 성적을 받고, 초를 다투며 쓴 에세이가 더 나았구나. 그렇다고 이 글이 딱히 좋은 글일 것 같진 않지만 분량 늘어나는 속도에 나 스스로 놀라고 있다. 이 단순한 진리...까지는 아니지만 경향에 대해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잊지 않아야 할텐데. 오리엔테이션날 선배가 했던 조언 중 가장 기억해둘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기도 하다. 과제를 할 때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을 넘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독히 못하는 일이라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못 하는 일, 그러나 완전히 해낼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 어떤 일을 하도록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는 행위는 과하지 않을 때 만족감의 원천이 된다.
이만큼을 써내려오는 데 정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의 연애에 대해 쓰지 않아도 이렇게나 할 말이 많고 아직도 안 한 말이 훨씬 더 많은 지경인데,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의 삶이 연애로 기워져있는 것 같다는 때로는 불쾌하고 때로는 기분 좋은 인상을 받는 것은 내가 자초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연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나 자신에 대한 악취미때문에.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또 생각의 흐름이 이쪽으로 넘어와 버린지라, 악취미를 이쯤에서 발동시켜도 괜찮을 것 같다. 라고 썼는데 생각은 떠오르는데 뭔가 와다다다 달리면서 지껄이는 느낌과 새로 시작하는 연인의 달달함이란 걸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지 스스로도 감이 안 서는 관계로 글로는 못 옮기겠다.
아, 그렇지. 내일 아침 9시 반에 교수학습개발원에 가서 다음주 발표에 대해 의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난 아직도 머리에 아무 구상이 없다. 정말이지 나답다.
...까지 쓰고 모기씨가 등장해서 노트북을 덮었다가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지금 등록하기로 함. 2월 20일 낮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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