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B가 고백을 해 왔다.

목요일, B가 그저 보고 싶어서 온 것이라며 안암에 왔다. 

토요일, B가 내가 먹고 싶다는 말에 "폰데링"을 사들고 안암에 왔다.


나는 M이 보고 싶었다. 이런 저런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M이 많이 보고 싶었다. M은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도 지하철에서 외국인만 보면 참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돈을 많이 모으고 싶었다. 언제라도 그를 보러 갈 수 있을만큼 많이 모으고 싶었다. 때로는 지하층이 있는 이층집에서 M과 사는 상상을 했다. 나는 내 서재에서 이 세상에 나 혼자인 양 번역이나 공부를 하고, 그가 그동안 무엇을 하는지는 관심도 없는 그런 일상의 순간을 꿈꿨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얼굴을 마주하고 수다를 떨어야지. 뭔가 사러 나갈 때는 그가 차를 운전하고,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냥 그렇게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올 겨울 M을 만나러 가면 그의 옆자리에 앉아 가족들을 보러 다니고, 중간 중간에 어딘가 들러 추억을 잔뜩 만들어야겠다. 이방인이 아닌 너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언젠가 헤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고 만나게 되었을 때, 너는 내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내가 만든 이 세계는 어떤 고민보다도 견고해서,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화요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균열이 생긴 세계 속에서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지라, 전과 같은 고민이 이제는 그 세계보다 더 견고한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때로는 지하층이 있는 이층집에 M과 사는 상상을 했다. 나는 내 서재에서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그가 그동안 무엇을 하는지는 관심도 없다, 뭐라도 하고 있겠지. 밤이 찾아왔지만 열정은 식어버렸고 수녀같이 담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에서는 뭐라도 살라치면 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 친구들을 만나지만,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친구들일 뿐이다. 나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내가 미국인과 결혼했을 때 친구들은 나의 '모험'을 주목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그 모험이 내가 사랑하고 익숙한 것들을 뒤로 하고 선택할만큼 모험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매일같이 깨닫는다. 아니면 너무 모험적인 것이었거나.


그가 떠나던 때, 나는 '이번에는 해낼 수 있길' 하고 주문을 외었다. 사랑이 대체 뭔데. 옆에 있을 때는 비교적 간단했던 것이 옆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너무 복잡해지는 꼴을 두어번 경험하고 난 사람의 주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떠어떠한 것은 사랑이라고 믿자. 그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오래 이 계약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사랑이라 하자. 그리고 이번에는 사랑을 "해낼 수 있길."


이제 밤이면 바람이 꽤나 추워져서,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이불을 깔면서 M과 몇번이나 이 위에서 사랑을 나누었던가 생각했다. 두 사람만이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순간들이 내 위에 쌓여간다. 오늘밤에는 그 무게를 느끼며 잠을 청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말하는 것이 

그래서 무게를 더 늘리지 않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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